어둔 새벽, 목이 말라서 물을 한 잔 떠먹으려고 일어났다. 알 수 없는 시선으로 싸한 기분이 들 때 뒤를 돌아보면, 더듬이를 세운 그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바로 바 선생.
다음 스텝은 내가 그들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가만히 있으면서 눈으로 그들을 잡을 도구를 스캔하는 것이다. 허나 바선생도 이미 내가 자신의 존재를 눈치챘다는 것을 인지한 것 같다. 여유롭고 천진하던 더듬이가 서서히 팽팽해졌다.
바 선생과 나 사이, 정적과 긴장감이 흘렀다. 그 사이 싱크대 아래 있던 걸레를 집어 들어서 그 녀석을 움켜쥐고 얼른 비닐 안에 묶어 봉해버렸다.
내가 하고 있는 살충 행위에 대한, 정서적 거리감을 유지하고 최소한의 숨만 코로 내쉬며 얼른 희생당한 바 선생을 문 밖에 쓰레기봉투와 함께 내보낸다.
‘잘 가라. 다시 오지 마라.(이렇게 말해도 오겠지만).’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존재, 질긴 생존력으로 살아남은 바 선생은 하잘 것 없는 인간보다도 오래되고 고귀한 존버(?)의 상징이다. 내가 이토록 능숙하게 그 녀석들을 처리하게 된 것은, 남편과 함께 강북구의 오래된 주택에 이사 오면서부터다. 물론 친정 집에서도 바 선생은 있었지만, ‘주부’의 포지션이 된다는 것은 모든 생활 전반을 총괄하는 집안의 관리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안 잡으면 책임지고 잡으려는 사람이 없다는 거!
신혼 때에는 바 선생을 발견하면 남편을 깨웠다.
“오빠, 오빠!”
그러면 남편이 일어나서 재빨리 몸을 날렸지만, 이미 부산스럽기 짝이 없게 일어났기 때문에, 바 선생은 자신을 잡을 것인지 눈치를 채고 재빨리 자신이 생각하기에 한없이 안전하고 거인들이 파고들 수 없는 냉장고 밑이나 싱크대 뒤로 숨어들었다. 타이밍을 놓친 우리는 애먼 에프킬라를 집안에 뿌려댔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바 선생을 놓친 남편을 닦달하며, 싸우기를 여러 번이었다. 그 논리에는 이 집에 살게 된 것은 ‘당신 때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기인한 것이었다. 더 좋은 집에 살았다면 이렇게 내가 고통받을 일을 없었을 텐데. 사실은 나는 그렇게 남편을 탓했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이 옳지 않고 떳떳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누구에게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결혼 초, 바 선생을 잡는 것은 남편만의 일인 것처럼 행동했던 나 자신이 지금 와 생각하면 참 어렸고, 나약했다. 그 태도를 바꾸기까지 8년이 필요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내가 걸레를 집어 들게 되었다.
이제는 심지어 그에게 나의 실력을 자랑한다.
“오빠가 더 못 잡아. 나는 그 녀석들 발소리만 들어도 알 거든. 장판에 닿는 그 녀석들의 발자국 소리가 이제 들려."
이 일은 사실 누구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 바 선생은 본 사람이 잡는 것이 진리라는 것이다. 도무지 이 녀석들 왜 이렇게 죽지도 않고 매년 나타나는지 검색창에 알아봤다. 그들의 생애주기는 1년, 봄에 태어나 겨울에 죽는다. 야행성으로 새벽시간이 그들의 주 활동시간. 그러니 새벽이나 밤에 주로 뭘 끄적이는 내가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더욱 웃긴 일은 바 선생에 대한 트라우마, 거부감, 분노마저 있던 나와 달리 첫째 아들은 장수풍뎅이를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다.
곤충박물관에 가서 사랑스럽게 그 녀석의 등을 쓰다듬고, 고오급 젤리를 먹이며 바스락 거리는 녀석을 들여다보는 아이를 보면서. 벌레의 인생도 빈부격차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바 선생은 죽여도 죽여도 사라지지 않은 존재라면 장수풍뎅이는 고오급진 뿔을 가지고 마트에서 만원에 팔리는 귀한 몸이시다. 게다가 장수풍뎅이 역시 야행성이라 낮에는 주무시고, 밤에는 바스락 거리며 일어나 자신이 왜 플라스틱 통에 갇혀 있는지 받아들이지 못하고 문을 두드린다. 그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어찌나 바 선생과 흡사한지.
바 선생이 풍뎅이 집을 들여다보고 그 고오급 젤리를 보면 얼마나 부러울까. 점차로 나는 그 장수풍뎅이를 관찰하면서 ‘혐오’했던 바 선생에게도 기묘한 연민마저 가지게 되었다.
도대체 내가 바 선생만을 미워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렇게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역시 동고동락을 불가능하다. 내 구역에 들어오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사소하고도 지저분한 일에 대한 살림 노하우가 쌓여갈수록, 아무도 모르게 나는 스스로가 대견하다. 당황하기 않고 일처리를 마친 나, 이 정도면 어른이 된 건 아닐까. 왜 사람들이 그 녀석들을 바 선생이라고 부르는지 알겠다. 그들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우리의 집에 숨어들면서 늘 어떤 집, 어떤 사람이 되도록 알려주기 때문이다. 바 선생이 나에게 알려준 것은, 걸레를 들고 내가 잡지 않는다면 누구도 대신 잡아 줄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