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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머니를 감염시키다

by 심가연


연말부터 긴 휴가를 받고, 남편은 집에 있었다. 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숙박비에 외식비, 집 나가면 돈 들일 투성인지라. 우리는 집 근처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행사와 각종 박물관, 과학관, 썰매장을 다녔다. 겨울만 되면 집에 칩거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여기저기 다녀야만 직성에 풀리는 사람이라, 나는 그가 운전하는 차에 실려 여기저기 다녔다. 첫 번째 타자로 독감에 걸려 내가 눕고, 자면서 영화를 보며 기침을 했던가 다음날부터는 영화가, 둘째를 이비인후과에 데려간 남편이 그다음으로 앓아누웠다.


도파민중독에 절어 사는 그는, 잘 때도 이어폰을 켜고 꺼지지 않는 손전등처럼 핸드폰을 켜놓고 잔다. 그런 그가 정말로 아픈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불을 꼭 끌어안고 잔다.


마침내, 내가 그까지 감염시키고 만 것이다. 기침을 하면서 왠지 불안하더라니 독감인줄 알았다면 마스크라도 쓰고 있을 걸. 사람을 물어 감염시키는 좀비처럼, 돌아가며 기침을 하고 다음 감염자를 찾아 나선다. 마지막까지 독감에 걸리지 않은 첫째가 궁금해한다.


‘엄마 나는 독감일까? 검사해보고 싶어.’

독감검사도 하려면 비싸. 우리 집은 다 독감이니 굳이 검사해 볼 필요 없어. 그렇게 말은 했지만 속으로 궁금하기는 했다. 평화도 결국 감염이 되었을까? 잘 모르겠다. 코로나 때부터 우리는 가족끼리는 어차피 한 명이 걸리면 다 아프고 말자며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다. 그때도 평화가 가장 마지막에 걸려서 오히려 늦게까지 아프고 몇 주동안 약을 달고 살았다. 그럼에도 조심하지 않는 이유는, 아무리 주의해도 생활하는 공간이 비슷하니까 물리적으로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식구 (食 밥 식 口 입 구)라, 항상 밥을 같이 먹어야 하니까. 문득 우리는 서로에게 얼마나 영향을 주고받으며 붙어 사는지 실감하게 된다. 식구끼리 병만 감염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그리고 또 무엇을 받았을까.


‘우리는 한 주머니야.’

결혼 전 엄마가 늘 우리에게 용돈을 주면서 당부하던 말이 뇌리를 스친다. 우리는 같은 운명의 공동체로 돈을 함께 아끼고 열심히 생활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하나의 주머니 안에서 살아가는 가족들. 우리는 매일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생각을 좁히며 앞으로 계획을 세우고 살아간다. 어른은 아이를 가르치고, 아이는 어른의 말을 따르려고 애쓰며 살아간다. 같은 주머니에 담긴 음식과 병을 나누고, 서로에게 의지하고 사랑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싸우고 미워하다가도 또 같이 슬퍼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독감에 걸렸다. 누군가 우리를 선명하게 독감이라는 병명으로 진단을 내려주면 안정감이 든다.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바로 그 병이 나아지지도 않겠지만. 그 병을 알고 약을 사서 낫기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다. 마치 아플 자격을 얻은 것처럼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다. 보드랍고 폭신한 이불을 꼭 끌어안고, 뜨끈한 방바닥 아래에 들어가 다시 몸을 지지며 데울 시간이다. 지금 우리는 아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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