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에게
우리는 나이가 들지 않을 줄 알았어. 06년에 만나서 25년 햇수로 벌써 19년이 지났네. 믿기지 않는 시간이야. 우리는 19년을 보내는 동안 함께 거창하게 논 적은 없었어. 단지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귀여운 마스킹 테이프나, 색연필, 종종 만나던 남자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지. 그 남자들을 사랑했고 미워했고 헤어졌거나 혹은 같이 여전히 살고 있기도 해.
우리는 때때로 시시껄렁한 걸로 싸우지 않았니. FTA 같은 정치문제 이기도 했고, 사소하게 지나가는 말들 때문이었어. 지나고 보면 어떤 순간에도 너는 나는 기다려줬고, 나는 네가 꾸준히 그리워졌어. 어떤 때는 너무 잘 맞아서 네가 날 일방적으로 배려해 주는 게 아닐까 싶어서 걱정이 되기도 했지. 여러 번 물어보면서 확인해 보니 그 생각의 반은 맞고 반은 틀렸던 것 같아. 실제로 너는 나를 배려해주기도 했고 우리는 원래부터 잘 맞기도 해.
자주 찌찌뽕 같은 상황이 벌어져. 가방에서 똑같이 생긴 이케아 지퍼백에 가득 담은 젤리 봉지를 가진 것처럼, 식성이나 좋아하는 물건들이 비슷했거든. 옷을 사러 가기보다 자주 문방구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는 것도. 물론 비슷하다는 거지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 내게, 너는 자신과 비슷하게 살거나 행동하기를 강요하거나 판단하지 않았어. 난 그게 참 좋았어. 우연히 지나가는 말이 그 사람의 생각을 보여주잖아. 너는 나를 좋아해 주었고 나도 너를 좋아하지. 그래서 내가 아주 아주 작아졌을 때도 너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보아줬어. 수 없이 많은 시련을 겪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며 19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냈던 것 같아.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우리가 보낸 시간만큼 더 선명한 건 없어. 우리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웃은 시간만큼 더 확실한 행복도 없겠지. 너와 만날 수 있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언제든 19년 전으로 종종 돌아가. 너도 그렇지? 우리 또 만나자. 스무 살이었던, 그리고 서른 아홉이 되어버린 새치머리 아줌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