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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긴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무뎌지는 것이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그의 목소리도 존재도 잊힌다. 한 사람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그가 먹고 마시고 울고 달리고 경험한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먼지처럼 흩어진다. 장례식을 하면 화장까지 삼일, 너무 빠르고 쉽게 죽음은 우리를 먼지로 만들어버린다.
한 겨울이 지나서 얼었던 강물이 녹아 흐르기 시작할 때, 봄비가 쏟아졌다. 2007년 3월 30일, 쏟아지던 장대비에 물이 불어났다. 나는 스무한 살 대림역 근처에 살았다. 높은 고가에 위치한 대림역 다리를 건너면서, 도림천에 흐르던 수상한 물줄기를 보았다. 물은 빠르게 밀려가며 개천 주변부의 흙을 휩쓸며 흘러갔다. 천진한 봄의 시작이라고 하기에는 물살의 세어 주변이 산만하고 그 소리가 섬뜩했다. 당시 나는 친했던 여자 선배와 술 한 잔을 기울이면서 놀고 있었다. 학과도 동아리도 달랐지만 그 선배도 나도 왠지 서로 눈도장을 찍은 상태였다. 문득 모임을 하며 눈을 마주치면 꽤 서로가 편하고 좋았던 것이다. 그 선배는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세상 모든 것을 감탄하면서 기록했다. 그 선배와 친해지고 싶었고, 그 삶의 비결을 알고 싶어서 만나서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범한 날이었다. 얼큰하게 취한 얼굴로 태평하게 1호선 지하철을 기다리며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는 5초인가, 10초 동안 말이 없더니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학과 동기는 내게 말했다.
‘’a가 죽었어, 그리고 b도, 그리고… c선배도.’‘
나는 한동안 가만히 멈춰서 같은 과 동기가 하는 말을 곱씹었다. 3일 전에 mt를 간다고 전화했던 a가 갔다니. 대학교 2학년이 된 a는 전보다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동기 여자애들보다 이제는 신입생 여자애들과 사귈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남자사람 친구인 a의 연애를 잔잔하게 응원하는 마음으로 나는 대답했다.
‘’오올, 잘 다녀와.‘’
’ 오이‘
전화를 끝을 때마다 a는 내게 그렇게 대답했다. 같은 과 동기 남자 중 a보다 친한 아이는 없었다.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의 첫 남자사람친구. 마른 얼굴에, 곤충상이라고 놀리던. 가느다란 눈에 조금은 수줍은 듯한 a가 나는 참 편안하고 좋았다. 그런데 그 아이가 죽었다는 것이다. 어째서? 도대체 왜? 이게 말이 돼?
비보를 들었을 때, 처음으로 겪은 친구의 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느 드라마에서 보았듯이 그를 위해 끝없이 울어주는 일이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울고 또 울고, 그뿐이었다. 보다 보다 엄마랑 할머니가 우는 나를 말렸다. 그렇지만 쉽게 울음이 그쳐지지 않았다. 너무도 젊어서 청춘이라는 말도 부족했던 우리, 왜 a는 채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저버려야 했을까. 그것이 가슴이 아파서 한참을 울었다. 왜 네가 그렇게 가야 해? 같이 갔던 사람들은 다 멀쩡하게 돌아왔는데 말이야! 한탄강에서 했던 우리 학과 mt에 2학년이 된 나는 당연히 참석하지 않았다. 우리 과에는 남학생들이 압도적으로 적어서 남학생들은 반강제로 학생회에 소속되어서 일을 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소극적이고 착했던 a는 거절하지 못하니 그런 일들을 도맡아 하다가, 그 강에도 가서 변을 당한 것이리라.
물에 빠진 학과 동기들의 영상과 사진은, 이상하게도 그 현장에서 사고를 목격한 사람들이 찍어서 무분별하게 온라인 사이트에 퍼져 있었다. 엽기 사이트, 각종 뉴스에 무작위로 모자이크도 없이 그대로 보도되었고, 실시간으로 사망자 이름인 뉴스 헤드라인 아래 올랐다. 나는 내 친구의 이름은 뉴스 자막으로 볼 수 있었다. 놀라웠고 역겨웠다. 자극적인 온라인뉴스들은 달콤한 사탕이라도 되는 것처럼 혀로 할짝거리면서 망자의 사진을 올려 이리저리 훑어 찍어 먹는 꼴이었다. 왜 이런 모습까지 내가 봐야 하는 거지. 구경거리처럼 전시된 친구의 모습을 보는 것이 사고를 당한 가족들이나, 지인의 가슴을 후벼 판다는 것을 알까. 그것은 명백한 인터넷레커들의 돈놀이였고, 무심한 미디어들의 2차 가해였다. 친구가 떠난 이후에 나도 한동안 죽은 친구의 잔상이 나를 괴롭혔다. 외상 후스트레스증후군처럼 한동안 어떤 공포증세에 시달려야 했다. 그때부터 나는 사고현장에서 별다른 목적 없이 구경하거나 핸드폰을 켜는 이들의 호기심을 역하게 느낀다.
재밌냐? 악마들!
익사를 해서 죽은 친구들의 뉴스 댓글에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무렇게나 지껄인 키보드워리어들의 말들이 장식되었다. 술 먹고 장난치다가 죽었다느니 하는 말들. 쉽게 그 사건을 단정지었다. 하지만 사고가 벌어진 것은 낮이었다. 나는 현장에 있지 않았지만 현장에 있었던 아이들이 증언했듯 술을 먹지 않았다. 그날 미친 듯이 빠르던 물살이 그 정도 일 줄은, 한탄강 아래에서 그토록 무서운 힘으로 빨아들일 줄을 몰랐던 것이다. 현장에 있던 다른 동기들도 무사히 빠져나와 살았을 뿐 더 많은 이들이 그 물에 휩쓸려 죽을 뻔했다.
서로를 구하다가 피치 못했던 이들… 우리 학과 동기 2명 학생회장 1명, 그렇게 익사사고로 앞길이 창창했던 청년들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다. 염을 할 때 들어갔던 여자동기는 울먹이며 말했다. A가 너무 멀쩡한 얼굴로 자고 있었다고. 결국 그 동기는 울다 울다 코피를 흘리고 응급실에 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한쪽 구석에 모여 담배를 뻑뻑 피면서 울부짖었고, 친구를 살리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에 머리를 바닥에 찧는 이도 있었다.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정말 네가 사라진 거야?
’ 이렇게, 너무 쉽게 사람이 죽는구나 ‘
나는 뉴스에서 거르지않고 그대로 보도되는 친구의 심폐소생술 장면을 보면서 면도칼에 심장을 지나가듯 이 사실을 몸에 새겼다. 우리 인생에 다음이 없다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현장에서 체감했다. 그때 다짐했다. 나는 오늘만 살 거야. 하고 싶은 일은 지금 당장 할 거야.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절대로 내일로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 않을 거야.
그렇게 떠나버린 a의 존재는 거꾸로 내게 더 선명한 생을 느끼게 해 주었다. 너는 떠났고 나는 살아있구나. 내가 이렇게 숨을 쉬고 여전히 청춘이구나. 네가 보내지 못하게 된 이 시간을 나는 누리고 있어. 너도 이 시간을 누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함께 글을 쓰면서 꿈을 키우던 너는, 조금 슬픈 편이었지. 언제나 모자라는 시를 보면 엄마와 아들을 떠올리며, 혼자 자길 키워준 엄마를 애달파했지. 아버지 없이 큰 너는 그늘 아래 서 있는 것처럼 서늘한 마음이었던 것 같아서 마음이 쓰였지만, 사실 나는 그런 너의 그늘이 조금 두렵기도 했어. 내가 그걸 품어줄 자신이 없었거든. 그 당시 너는 아버지가 없어서, 어머니와 자라면서 힘들고 지쳐서 자주 한탄하고 비관하는 중이었지. 우린 그 때 너무 어렸고 가진 것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이제 서른아홉이 되니 알겠어. 네가 누군가와 깊은 사랑을 하고 군대에 다녀오고 어른이 되었다면 분명 멋있는 남자가 되었을 것을. 내가 그런 너를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그렇게 a를 보내고, 매년 3월 30일이 되면 잠시라도 그 친구에게 마음속으로 편지를 쓴다. 친구야 나는 네가 가고 결혼도 했고 애를 둘이나 낳았어. 이제는 너를 만났던 나이보다 거의 두 배의 나이를 먹었어. 이렇게 긴 시간이 지났지만 왠지 네가 살아있었다면 너와는 여전히 친구로 지낼 수 있었을 텐데. 너만큼 섬세하고 여린 사람을 본 적이 없거든.
그 차가운 강. 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이미 다 지나간 일인데 이런 말 쓸데없겠지. 그렇지만 나는 지금도 가끔 헛된 후회를 해본다. 네가 간 후에 너의 엄마를 챙겨 드렸어야 하는데. 그날 이후 바보처럼 그저 영화에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슬퍼만 했지 너를 위해 제대로 한 것이 없는 것 같아. 그때 나보다 더 성숙했던 남자선배는 너의 어머니를 찾아뵌다고 했었어. 괜찮으신지 얼마나 상심하셨는지 걱정되어서 안부를 자주 여쭙는다고 하셨지. 나는 감히 네 엄마의 슬픔을 짐작할 수도 없고, 너무나 송구해서 어떤 말도 해본 적 없고, 제대로 뵌 적도 없어. 미안해. 그저 바보같이 슬펐던 내 감정에만 압도되었던 것 같아. 참 억울하지 않니. 그때는 너무 어렸던 너였는데 철없던 우리가 그 사고를 피해 갔다면 아무 일없이 취직을 하고 돈 벌어서 부모님에게 효도도 하고 가끔 만나서 맛있는 맥주나 나눠 마실 수도 있었을텐데.. 괜히 헛헛한 마음에 이런 저런 상상을 해봐. 내가 너를 위해 할수 있는 거라곤 그저 널 한 번씩 떠올리는 것 뿐이야. 18년이 지났어. 3월 30일이 다가오네. 안녕. 매년 너를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