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너를 기억해

강북문화정보도서관 에세이를 부탁해 동아리 8월 '나의 친한 친구'

by 심가연

마흔이 다가오고 있다. 대학 때 만난 친구는 어느새 이십 년이 넘게 보았다. 오랫동안 세월을 견디며 만난 친구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이제 우리가 꽤 나이가 들었다고 느낀다. 긴 시간 친구로 만나다 보니 친구를 지금의 얼굴로 보지 않는 것 같다. 처음 만났을 때 그 친구의 이미지.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상으로 그 사람을 보는 것 같다.


친구는 나에게 여전히 이십 대 풋풋했던 대학생 모습으로 기억된다. 만날 때마다 다이어트를 해서 어떨 때는 살을 빼고 나타나고, 다시 일하느라 힘들어서 먹은 음식 때문에 살이 쪄있을 때도 있지만. 나는 여전히 내 기억 속의 이미지로 친구를 본다.


내 친구 신소는 성실하고 꾸준히 자신의 일을 하는 편이다. 언제나 약속 시간에 늦는 법도 없고, 대학 때도 숙제가 있다면 적어도 일주일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는 편이었다. 나는 신소의 그런 면에 늘 신뢰가 갔다. 이십 년 동안 친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는 계속 보고 알아왔다. 그래서 늘 신소가 어떤 결정을 할 때, 그 선택을 믿고 응원해 왔다. 신소는 그런 나에게 조금은 힘을 얻는다고 말해주었다.


나와 친구는 서로를 좋아하지만 다른 면이 있다. 친구는 결혼을 아직 하지 않았고, 나는 일찌감치 이십 대 후반에 결혼해서 두 아이를 낳았다. 삼십 대 내내 내가 아이를 키우는 동안 친구는 해외에 나가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호주 대학에서 간호사 공부를 하다가 돌아와서 영어 선생님을 하고 있다. 한국에 올 때마다 우리는 만나서 다시 함께 시간을 보내었다. 늘 그 자리에서 맴돌며 머물러 있던 나는 친구가 돌아와서도 여전히 나를 찾아주고, 서로 같은 고민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렇게 이십 년이 흘러보니 그건 친구의 꾸준한 노력과 나를 향한 애정 때문이었다.


가끔 나에게 남아준 친구를 보며 궁금해진다. 어떻게 우리는 친구로 합격해서 이십 년 동안 남을 수 있었을까. 그 이유가 궁금해서 묻기도 한다. 나를 계속 만나기 위해서 네가 와주었고, 시간약속도 잡아주고 징글징글한 내 하소연도 다 들어주었는데... 그렇게 노력을 해준 것이 고맙다고 내가 말하면. 친구는 자기가 내게 노력하고 맞춘 것이 없고 원래 우리가 잘 맞는 거라고 한다. 그럴까? 내가 누군가 만났을 때 편하다면 상대방이 나를 위해서 애써준 거라던데.


나에게 남은 친구가 있다면, 물론 서서히 멀어진 관계도 많다. 생각도, 환경도, 각자의 상황도 점점 달라져서 더 이상 서로가 툭툭 나오는 말들이 가시처럼 느껴지거나 오해가 되는 순간이 많아졌을 때. 슬그머니 더 이상 통화버튼을 누르지 않게 되었다. 연락처를 지우지는 않았지만 사라져 버린 친구의 존재가 커다란 구멍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괜찮아졌다. 그 친구가 먼 자리에서 잘 살고 있으리라고. 나와 이야기 나눈 꿈을 위해 애쓰며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잔잔하게 응원한다. 어느 시절 그 친구도 나를 위해 마음을 쓰고 맞춰 주었을 것이다. 나는 그 마음도 알고 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꿈을 응원해 주고 같이 슬픈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남은 친구와 떠난 친구 사이에서 나는 가끔 고개를 비스듬히 젖히고 두 친구를 떠올린다. 정말 사랑했다. 나는 한 시절, 연인을 떠올리듯,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친구들. 그 시절 우리가 걸었던 길을 혼자 걸으며 여전히 젊은 채로 기억되는 아름다운 친구의 모습을 이제는 따뜻하고 고맙게 기억하기로 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도봉여성센터 나만의 펜화 2026 달력 수업 개강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