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배우는 콩알탄 밀당법
여름밤 산책도 할 겸 찾은 공원 놀이터에서 7살 평화가 나를 시험에 드는 일이 벌어졌다.
평화는 누나들과 놀기를 참 좋아하는데, 그날 놀이터에 있던 누나들은 유독 평화에게 관심이 없었다. 평화가 같이 놀자고 물어도 답도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매번 있는 일이라 나는 평화가 놀이터에 있는 친구를 사귀는 동안 주변을 배회하며 천천히 기다렸다.
평화는 잠시 고민하더니 나에게 달려와서 챙겨 온 콩알탄을 달라고 했다. 가방에서 콩알탄을 꺼내 주자 서둘러 누나들 앞에 달려가 콩알탄을 탁탁 던지면서 주의를 끌었다. 그러자 누나들과 놀던 한 남자아이가 왔고, 평화와 같이 콩알탄을 던지기 시작했다. 금세 콩알탄 두 박스가 떨어졌고 평화는 그 친구의 호의를 얻기 위해서 나에게 와서 콩알탄을 더 줄 수 없냐고 물었다.
나는 다시 박스 하나를 꺼내 주었다. 그러자 평화에게는 관심이 없던 누나들까지 왔고, 평화는 그 누나들 모두에게 콩알탄을 주고 싶어 했다. 나는 봉지를 열어 콩알탄이 담긴 상자를 바닥에 놓으며 알아서 놀라고 늘어놓았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평화를 쫓아왔던 남자아이가 갑자기 콩알탄 박스를 들고 누나들에게 나누어 주려는 게 아닌가. 나는 그 아이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건 우리 것이니까 네가 주는 건 아니지.”
그러자, 아이는 금방 알아듣고 콩알탄 박스들을 내려놓았다. 평화가 나누어주자, 누나들과 콩알을 던지면서 잠시 즐겁게 노는 것 같았다. 헌데 누나들은 콩알탄이 떨어지자 평화를 두고 옆 놀이터로 아무 말도 없이 떠나는 것이 아닌가. 적어도 같이 저쪽으로 가서 놀자고는 할 줄 알았다.
나의 예상이 빗나갔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다른 아이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그냥 가 버리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아이들은 솔직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콩알탄을 열심히 던지고 사라지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당황했다. 평화는 그런 누나들과 놀고 싶어서, 타던 자전거도 나에게 맡기고 다 터트린 콩알탄을 치우지도 않고 정신없이 쫓아갔다. 서둘러 콩알탄 부스러기를 줍고, 자전거를 밀면서 평화를 쫓아가던 나는 슬슬 현타(현실 타격의 줄임말)가 왔다.
'이럴 땐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누나들은 평화를 피해 계속 도망가고, 평화는 그런 누나를 쫓아가서 옆에 서서 말을 걸고, 뻘쭘하게 놀아달라고 계속 옆에서 얼쩡거렸다. 그 모습을 삼십 분이 넘게 보고 있자. 점점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왜 이렇게 답답하게 구는 거야. 그쪽에서 거절하면 말아야지.'
내 성격을 닮은 평화가 답답하면서도 나 역시 같은 성격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아무런 해결책도 떠오르지 않았다. 평화를 놀이터에서 억지로 데리고 나왔다.
‘싫다고 하면 그만 쫓아다녀!’라고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렀지만 참을수록 부아가 났다. 계속 쫓아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평화의 손목을 잡고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아까 콩알탄이 재밌었던지 남자아이가 다시 와서 콩알탄이 더 없는지. 그 재밌는 콩알탄은 도대체 어디에서 사는지 계속 물어보았다.
“이제 없으니 가렴.”
하고 보내고서는 답답하고 분한 마음을 못 이기고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평화가 이렇게 누나들에게 놀아달라고 하며 끌려다니는 모습이 보기 싫다. 나는 도대체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하고 놀아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러자 남편의 대답했다.
“바보짓도 해봐야 알지. 내버려 둬. 아니면 네가 주도해서 다 같이 놀아주던가. 콩알탄은 그렇게 주면 안 돼. 하나씩 손에 쥐어주면서 다 같이 놀아야지.”
“아, 그렇구나.”
나는 놀라움에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이렇게 쉬운 해결책을 왜 이렇게 몰랐던 걸까. 혹시 내 글을 읽으면서 이미 해답을 알고 있는 분들이 있으셨는지.
나는 이렇게 관계를 맺으며 주고받는 것. 적당히 주고 같이 노는 것에 대한 센스가 부족한 것 같다. 내가 못하는 것을 똑같이 못하는 아이랑 있을때 가끔 벽을 만난 것처럼 막막해진다. 그 땐 나와 상반된 성격을 가진 남편에게 물어본다. 그래서 사람은 서로 보완하며 살라고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끌리나 보다.
아이가 바보짓을 할 때,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가. 얼마나 기다리기 어려운가. 참견하거나 평가하고 혼을 내고. 얼른 답을 내리며 이쪽으로 가라고 외치고 싶은가. 어릴 때 나 역시 바보짓을 했었다. (지금도 자주 한다.) 그 때마다 부모님이 알려준 정답이 얼마나 싫었는지. 누나에게 거절 당하면서도 같이 놀고 싶은 평화가 충분히 매달려보며 자기 감정대로 하는 것은 평화의 자유이고 선택이다. 나는 그 선택을 무시한 것이다.
스스로 이게 답이 아닌지 느낄 기회를 뺏지 않아야 한다. 지름길을 알려주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스스로 납득하고 안 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바보가 되어봐야 한다. 그것이 어떻게 보면 제대로 된 도움일지도 모른다. 다시 콩알탄을 사서 놀이터에 가봐야겠다. 대신 평화야. 이번에는 조금 천천히 친구들하고 같이 노는 거야. 아니 콩알탄의 도움 없이도 넌 충분히 멋져서 친구들이 놀자고 할 거야.
거울처럼 나를 똑 닮은 평화에게서 나의 바보스러움을 발견할 때마다, 누군가 내 옆구리를 콕콕 찌르는 것 같다. 아직도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아이가 내 안에서 삐질삐질 땀을 흘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