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의 상자에는 양이 들어있을까?

by 심가연


어린왕자는 양을 그려달라고 하고, 비행사는 양을 그리기가 점점 귀찮아서 상자를 그리고 그 안에 양이 있다고 한다. 아이는 그 말을 믿는다. 어른의 언어는 아이에게 세계관을 잡아준다. 이야기 초반부의 설정처럼 아이에게 어른은 신과 같다.


언어가 가진 힘은 그래서 무섭고도 위대하다. 종종 갑갑한 일이 있을 때 나는 어린왕자의 상자를 상상했다. 그 상자 안에 꽁꽁 다 접어 넣고 상자를 저만치 치워 두었다. 그렇게 종종 생각을 관두고 싶었다. 어떤 사람은 그런 생각을 상자가 아닌 바람이 통하는 창문에 두도록 상상하면 나아진다던데 말장난일 뿐이었다.


현실의 문제들은 그대로 인데.

A는 힘든 일이 있을 때 상사의 폭언을 하느님이 주신 시련으로 여기면서 사건과 자신을 분리 시켰다고 한다. B는 심한 말을 하는 시어머니의 말에 일일이 대꾸하지 않고서 외면하려다가 그 말 자체를 잊어버려서 머리 검사를 받아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상자라는 건 현 상황에 대한 '외면'이란 행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의식의 도구 같다. 외면하고 애써 잊으려고하면 한동안은 그 문제와 분리되어 살아 남을 수 있다. 어린 시절에 받은 폭력의 장면은 지금은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랬었다는 사실만 어렴풋이 남아있다. 왜 기억나지 않을까. 이렇게까지 잊어버릴 수 있을까? 아마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서 잊어버린 것 같다. 그런데 그 일은 여전히 지금의 나를 힘들게 할까? 그런 질문의 꼬리가 생긴다.


그 끝에는 쌓여있던 상자들이 있었다. 버리기 직전에 먼지가 풀풀 날리는 상자들이다. 그 상자는 내 심장을 누르며 활활 타오고 내 속의 어린양들이 그 불구덩이에서 뛰쳐 나오고 싶어 발광한다. 나는 이제 그 양들을 내보내고 싶지만 용기가 나질 않는다. 그러나 알고 있다. 내보내고 나면 분명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문숙 배우님이 나오는 유투브에서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을 보게 되었다.

가난하고 막막했던 어린 시절,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기를 바라면서 한 없이 언덕에 앉아 있던 때가 아직도 떠오른다고. 아직도 그 어린 아이는 그 자리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문숙은 어른이 되어서 자신의 마을을 찾아 그 언덕을 갔다. 그리고 거기서 아직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 어린 시절의 자신과 만나 마침내 화해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에게도 어린 나와 마주보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드라마 단막 대본을 습작하며 쓰다가 대본의 마지막 문장이나 장면에 다다르면 마라톤을 한 것처럼 열띤 상태가 되어있다. 그 때 쓴 그 마지막 문장은 아무리 졸작이라도 나에게 어떤 쾌감을 준다. 그 이야기를 꿰뚫으며 하는 나의 마지막 말이기 때문에 강력한 기억으로 남았다.

내가 쓰던 대본에서 부모에게 학대 당했던 여자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사실은 엄마도 아팠던 거예요."


그것은 내가 예상치 못했던 말이었다. 내가 쓴 대사에 대해 나이 지긋하신 분이 합평시간에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 말은, 아이가 할 법한 말이 아니라고. 나는 엄마에게 학대를 당했나? 그렇지 않았다. 기억나는 체벌이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데 왜 그런 말을 썼을까. 그 말이 나는 여전히 잊혀지지 않을까. 물음표가 여전히 남아있다.


내면의 문제는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가 지금까지 나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아마 다시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 때문이다. 예로 오뎅을 먹고 나서, 식중독에 걸렸다면 더이상 오뎅은 싫어졌다는 한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어린왕자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나는 문득 이 이야기를 실제로 작가가 겪었을 법한 장면으로 상상해본다. 생택쥐베리는 실제 사막에 혼자 비행기를 타다가 고립된 적이 있었다. 그런 생택쥐베리의 경험이 어린왕자 이야기가 되었다. 여기서 비행사와 양을 그려달라는 어린 아이는 사실 작가 한 사람에게서 나온 두 인물이다. 그 둘이 사막에서 두려워하며 2인극을 벌이며 실랑이를 한 것이 어린왕자 이야기가 된 것이다. 어린왕자는 결국 사막에 갇혀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죽음을 두려워하던 한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어린 아이가 그려 달라고 했던 상자 속은 텅 비어 있다. 그 어둠 속엔 우리가 담고 있는 내면의 문제들이 숨어있다. 갑자기 어떤 순간에 튀어나와서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는 분노나 두려움, 혹은 회피하게 되는 행동으로 나타날 뿐이다.


육아를 통해서 나는 내 안에 자라지 못한 아이를 마주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내 눈동자를 닮은 아이 때문이다. 예전에 나는 거인 같은 엄마에게 보호를 받으면서도 자유를 갈망했고, 반항하고 싶으면서도 엄마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자신을 탓했다.


아이를 통해서도 여전히 자신을 떠올린다는 게 스스로도 놀랍다. 인간은 자식을 통해 자신을 볼 정도로 이기적이구나 싶다. 나는 내가 이기적인 것을 인정하고, 내 속에 든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아이를 통해 보았던 내 어린시절의 기억들을 적어보기로 했다. 그 상자에 무엇이 있을까? 사실 아직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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