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행복에 대해서

에세이를 부탁해 5월 주제 ’위로‘

by 심가연

어린 시절에 나는 거울을 쳐다보며 얼굴을 관찰했다. 햇빛을 통해 갈색 눈동자가 되는 동공을 바라보며 스스로의 모습에 취했던 것도 같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의 우리는 누구나 다 아름다웠다. 거울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사랑하고 또 누군가가 나만큼 나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왔었던 것 같다.


햇빛이 드는 창가에서 부모님은 공부를 잘했으면 하셨는지 책상을 놔주셨다. 늘 거기에 앉아 햇빛이 45도로 떨어지는 곳에서 나는 손을 모아서 빨간 머리앤처럼 기도를 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저를 사랑하게 해 주세요."

나의 아름다움을 누군가 발견하게 해 주세요. 그런 속삭임을, 입가에 맴도는 말처럼 반복했다.

그리고 드디어 스물한 살에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그와 스물여덟 살에 결혼했다.


삼십 후반이 된 지금, 그 시절 창가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소녀를 본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실연 당한 내게 아버지는 그렇게 좋아하면 그 사람을 잡으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조언은 결국 아버지가 걸어온 삶과 결이 닮아 있었다. 나 역시 그렇게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였다.


사랑은 나를 구원하였지만.. 나를 구해주었다고 생각한 그 사람을... 결혼 이후에는 나 역시 구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2013년부터 2023년. 십 년의 결혼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각자의 거리를 좁히지 않기로 했다. 서로의 삶을 열심히 살고 서로의 선을 넘지 않는다. 그리고 각자가 행복한 일을 하며 아이들을 키운다. 수 없이 많은 싸움의 이유들은 그를 내 선 안으로 끌어 들여오기 위한 욕심과 아집이었다. 그 사람은 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산산이 부서진 채 깨달았다.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것. 그 적당한 거리 사이에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족이자, 관계였던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은 사랑의 구원을 믿는 소녀가 매일 '꽃이 되자'와 같은 로맨스 만화책을 읽으면서 바느질과 그림을 그리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그 아이는 그대로 자라 문학소녀가 되었고, 나이가 먹어도 여전히 실을 만지작 거리고, 물감을 종이에 칠하고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지어내면서 혼자 즐거워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좋아하는 일로 최선의 돈을 벌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철'이 들면서 바뀐 점이다.


나는 취미가 많은 편이라 다양한 물건들을 쓰다듬으며 스스로를 행복한 상태로 만드는데 타고난 편이다. 명품백 한 개보다 싸구려 털실 콘사 한 트럭이 더 좋다. 다소 맥시멀 한 행복을 가진 내 옆에는, '목적'을 위한 삶을 살아온 남자가 있다. 내가 놀 때도, 내가 애를 낳고 키우는 동안에도 회사에 시계처럼 나가서 상사에게 옷을 찢기면서 돈을 벌어왔던. 그러면서 성질이 점점 괴팍하고 고약해진 사람.


그가 점점 배터리가 떨어지는 것을 나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떨어진 배터리를 술로 채웠다. 한 병, 두 병, 그것은 일종의 마약과 같은 힘으로 잠시 엄청난 힘을 내게 하고. 슬퍼서 죽어버릴 것 같은 힘을 잊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사람이 매일 중얼거리는, 자신을 사랑하고 찬양하고 존경해 달라는 말을 해줄 수가 없었다. 그는 나에게 무척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행복하기 위해서 그를 찬양하고 존경해 줄 수 있는... 대상을 찾기로 했다. 어린 시절에 행복했던 일을 하면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한 세바시 강연을 듣고 남편에게 다시 교회로 가자고 했다. 남편은 모태신앙이고 어린 시절 장사를 하는 부모님 대신 교회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선생님들과 어울리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때 받은 사랑을 늘 보답해야 한다면서 대학생 때는 나와 함께 유치부 봉사를 하며 행복해했었다.


처음에는 첫째 아이를 맡기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정도였지만, 교회 아이들과 놀아주는 남편을 보더니 전도사님이 남편에게 손짓을 했다.

"봉사할 생각 없냐고."

그는 덥석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의 논리는 어린 시절에 만난 그분들처럼 자신도 받은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가 교회로 나가면 다시 소주를 먹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 그렇게 일요일마다 친정에 내려가던 하루를 빼고 매주 교회로 향했다.


1년이 지나고 남편을 돌아보면, 그에게는 일요일마다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은유적으로 그의 마음이 샤워를 받고 오는 것 같다. 전혀 신앙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아이들과 놀아주며 눈 맞추고 아이들이 크게 웃어주면 그렇게 좋은 것 같다. 집에 와서도 한참 아이들과 놀았던 이야기를 신나게 한다. 본인이 엄청나게 아이들에게 웃겼다는 것이다. 애들에게 그 다음주 일요일에도 사랑과 존경과 찬양을 듣기 위해 그는 매일 다이소에 가서 풍선을 한 바가지씩 사서 교회 가방에 넣어둔다. 그 풍선을 부풀리고 터트리면서 아이들과 웃는 것이 그의 어린 시절 행복이었나 보다.


아이들을 재우고 일어나서, 혼자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남편의 마음속에 있던 어린아이를 생각해 보았다. 내년에는 교회를 가지 말자 귀찮다고 말하자 잠시 입을 내밀고 시무룩해했던 남편의 얼굴을 떠올렸다. 부러 그를 자극해 보았던 것이다. 교회를 가면서도 여전히 소주를 마시는 그를 독촉하기 위해서.


나는 나를 위해서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 선을 넘지 않고 그가 그 스스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가 무너졌을 때 나를 구원해 주기 위해 나와 결혼해 준 것처럼. 그가 무너졌을 때 나는 그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제 글을 쓰면서 나의 소녀에게 내가 할 말이 떠오른 것 같다. 햇빛 아래에서 사랑을 받기만을 바라며 기다리던 소녀에게. 어떤 사람을 만나든. 너는 그 사랑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의 내가 그렇게 해내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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