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X뜨개질수다X신세한탄
서른살에는 내가 뭐라도 되어있을 줄 알았지만. 애 낳고 집에 있었다. 그 때는 매일 뜨개질이 완성되면 찍어 블로그에 올리며 하루의 일과를 적어두는 것이 유일한 소일거리였다. 지인들 중에는 내 뜨개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없었지만 랜선으로 만난 이웃들은 서로의 작품이 너무나 재밌었다. 그 스트레스를 조용히 바늘을 움직이며 푸는 여자들끼리는 조용히 뭉치기 시작했다.
인기 있는 블로거는 온라인 함뜨를 열어서 한 가지 도안으로 정해진 기한까지 한 작품을 완성하는 목표를 세운다. 함뜨는 함께뜨기의 줄임말로, 잘 뜨는 뜨개질 선배는 다른 후배들에게 온라인으로 뜨개질 팁을 주고 완성을 독려한다. 카톡에 모여서 이 도안에서 어떤 실이 찰떡인지, 어느 사이트에서 바늘이 특가로 떴는지를 공유하며 지름신을 함께 맞기도 했다. 해외로 이주해서 향수병에 걸린 이들도 있었고, 아이의 스웨터를 떠주려는 엄마들도 있었다. 그저 내가 좋아서 내 옷을 뜨겠다는 이들도. 삼삼오오 사연은 달랐지만 우리의 공통점은 딱 하나 뜨개질에 빠져있다는 것이었다.
카톡에 모여서 한달정도의 시간동안 틈틈히 수다를 떨고 서로 완성되어가는 편물 사진을 구경하다보면 얼마나 각약각색으로 재밌는지. 바늘에 실이 걸려 있는 그림 자체가 내게는 힐링이자 완벽한 평화였다. 기분도 풀고, 아이들을 위한 스웨터를 떠서 입힐 수 있으니 돈(?)도 아끼고. 얼마나 일석이조인가. 그런데 본격적으로 시작된 뜨개질을 점점 멈출 수가 없었다. 뜨개질에 중독되어버린 것이다.
태교 핑계로 시작된 내 뜨개질을 쫓는 모험은 점점 멈출 줄을 몰랐다. 실을 사들이고, 바늘을 사들이고, 더 싸고 양 많은 실을 사고 또 사고, 뜨개책 도안까지 모으면서 점점 짐들이 괴물처럼 몸을 불렸다. 아이 둘을 다 키우고 정신을 차려보니 집안에 있는 세 방 중 두 방이 털실로 가득 차서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없는 곳이 되어 있었다. 망한 털실 공장에서 4-50만원씩 사들인 실들은 무시무시한 양이 되어 트럭을 타고 우리 집으로 실려왔다. 어마어마한 비닐푸대에 담긴 타래실을 내려놓고간 트럭기사는, 분명 내가 부업을 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 털실을 하나씩 안고 들어와 소중하게 비닐포장을 했다. 옆방에서 보행기에 매달린 아이가 나를 불러도 털실을 끌어안고 있었다. 새벽이면 아이가 잠든 밤, 싸구려 털실을 감으면서 행복했다. 왜 그토록 그 털실에 매달렸을까?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다. 만족스럽지 않았던 이십대의 실패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부모님으로부터 , 시댁으로부터, 열악했던 집안 살림으로부터, 회사에서 당한 화를 주체 못하는 남편으로부터. 그렇게 잠깐씩 도망으로 버티며 두 아이를 낳고 길러냈다. 그 시간을 블로그에 아이가 웃는 사진과 뜨개질 완성한 사진을 올리며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작년 더운 여름날, 그때 산 털실들은 다시 중고나라에 하나씩 팔았다. 박스에 담아 팔아치운 박스가 족히 100박스는 넘을 것이다. 한 시절 나를 통과한 털실들은 내 안에 그림이 되어 남아있다.
p.s. '뜨개질로 보낸 한철'은 '지옥에서 보낸 한철'을 패러디해서 지었다. 나는 한 때 내 마음의 지옥을 뜨개질로 이겨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