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내가 미친 듯이 사랑했던 털실
사람들마다 힘들 때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이 있다. 나의 경우는 좋아하고 집착하는 물건을 사는 버릇이 있다. 그것의 실제적인 필요와는 무관하게 나의 장래희망과 관련된 물건일 경우가 많다.
요즘에는 고급 만년필을 상대적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 당근 마켓을 통해 구입하거나, 꽤나 고가의 샤프를 하나씩 야금야금 구입하면서 스스로에게 선물하고 있다. 누구나 시발 비용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실제로 좋은 필기구를 가지면 그것들을 만지기 위해 뭐라도 계속 끄적이게 된다. 그렇게 한자 적을 때마다, 손가락에 힘을 줘서 잉크가 종이에 흐르면서 미끄러지는 펜촉의 탄성을 느낄 때 그 어느 때보다 설렌다.
행복하면 된 거 아니겠어?
지금이야 이렇게 작고 눈에 띄지 않는 물건을 남몰래 쓰다듬고 있지만, 아이들을 더 어릴 때는 이 수집벽이 털실이 되면서 일이 터졌다. 털실의 경우는 처음에는 한 팩 정도로 시작되었지만, 검색하면 할수록 콘사, 타래실 등 저가에 거대한 포대처럼 살 수 있는 곳을 알게 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정말이지 저비용 고만족의 마약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 어떤 만족보다 집 앞으로 배송되는 한 포대의 털실이 나를 행복하고 배부르게 해 줬다. 뭐랄까. 털실이 나를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남편이 매일 야근할 때, 어린 두 아이들이 나를 보면서 울며 보채다가 겨우 잠들면, 나는 지친 몸을 끌고 일어나 물레에 앉았다. 한 타래를 물레에 돌리며 뜨개질을 할 수 있게 감고, 그 털실에서 날린 먼지를 청소하기 위해 바닥을 닦고 새벽 4-5시에 잠이 들었다. 한여름 열대야가 심했을 때는 일주일 내내 집에서 아이들과만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특가처럼 뜨는 콘사와 타래실들을 구입하는 일이 나에게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이 실은 내 정신병원 값이야.
실제로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문제를 외면했다. 뜨개질을 쓰다듬고 바라보면서 한올씩 떠서 뜨개 인형을 만들어 주고, 아이 조끼를 만들어 옷을 입혀주면서 경제적 도움도 나름 되고 있다고 합리화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털실에 쓰는 돈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중독은 점점 사면 살수록 도가 넘어서 나중에는 더 많이 더 싸게 사야만 만족이 되었다.
급기야, 털실 가게 사장님과 친해져서 어느 겨울에 커피를 사들고 찾아갔더니. 겨울 타래실 재고 전체를 35만 원 정도에 나에게 넘기겠다고 하셨다.
나는 공방을 하는 사람도 아닌데.
그 당시의 나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이성이 마비된 사람이었다. 트럭에서 30 포대가 넘는 털실이 우리 집 한쪽 방을 다 채웠을 때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그럼에도 더. 더 큰 자극이 나는 필요한지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시에는 살림을 하는 주부들 사이에서 물건들을 줄이고 단순한 삶을 살자는 '미니멀리즘'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내 문제를 알고 있으니 고민하면서 미니멀라이프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하나 버리기 챌린지를 하는 사람들도 따라 해 보았고, 언젠간 쓰겠지 싶어 가지고 있던 물건도 열심히 처분했다.
나도 사실은 단순하게 살고 싶었다. 우리 집은 총 25 평수의 주택으로 중간에 마당과 보일러실 등을 제외하고 실 평수가 넓지 않음에도, 나중에 넓은 집에 가라고 사주신 부모님의 혼수와 지금껏 힐링하려고 지른 털실이 온 집안을 가득 채워서 네 식구가 살기에는 숨이 턱턱 막히는 공간이 되었다. 그러니 집이 좁고 싫다는 말이 노래처럼 나왔다. 청소가 안 된 집이니 늘 집안일이 많았고 육아 스트레스도 높아져 싸움도 잦았다.
미니멀리즘 책에서는 물건을 모으는 사람들이 느끼는 마음의 불안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왜 그들이 물건을 모아야만 하는지. 물건에 마음을 기대고 살아야만 안심할 수 있는지. 그 물건들이 정말 그 사람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것인지를 물었다. 나는 절실하게 미니멀리즘 책을 약처럼 한 권씩 읽었고, 잊을만하면 다시 꺼내 읽으며 내 스스로에게 물었다.
정말 필요해?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이 너무 많았다. 정말이지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볼품없고 값싼 물건들 뿐이었다. 하나씩 중고나라에 올려서 팔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터져서 온 세계가 멈추기 시작한 2020년 여름부터 6개월간 나는 팔을 걷어붙이고 마지막으로 내게 남겨진 미련이었던 털실을 90퍼센트 이상 팔아치웠다.
사랑하고 나를 안아주던 털실은 우리 집 두 방을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집안이 넓어졌고, 점차 싸움은 줄어들었다. 내가 집을 치우자 남편은 덩달아 집을 꾸미는데 열을 올려주었다. 집 공사를 하고 바닥마루를 다시 깔아주었고, 벽에 페인트칠도 남편과 돌아가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한 벽씩 아이들의 낙서를 지우며 페인트칠을 새로 했다.
부모님이 사주신 혼수도 필요하지 않는 것은 가차 없이 정리했다. 우리가 이 집에서 편하게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말 필요한지를 물으면서 줄여나갔고 지금은 털실을 어느 정도 판 뒤, 책과 추억의 물건과 메모리 파일을 정리하고 있다.
살다보면 늘 당면한 문제들이 있다. 그때마다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이 문제를 긍정적으로 이끄는지를 의심해보아야한다. 그 당시 내가 슬퍼서 사들였던 털실은 나를 더 힘들게 했을 뿐이다. 좋은 털실로 멋진 옷을 뜰만한 힘이 그때의 나는 없는 상태였다. 그 힘보다 털실을 사고 싶은 마음만 컸다. 조화롭지 못한 상태였다. 늘 내가 바로 서 있지 못한다는 증거가 바로 털실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알았다. 털실이든 그 무엇이든 너무 사랑하더라도 그 감정에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예전에는 지하철에 서서도 뜨개질을 하고, 숨 쉬듯이 손목에서 뼈소리가 나도 코바늘을 멈추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게 기분이 나아졌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한 뜨개질로 손목힘을 어느 정도 잃었다. 그렇게 털실을 열렬히 사랑했던 한 철을 보냈다. 이젠 아련하게 손목을 쥐고 털실을 옛 연인처럼 쳐다볼 뿐이다. 어깨도 손목도 더이상 뜨개질이 즐겁지 않아졌다.
사실 아직도 고백하자면 장래희망을 위한 수집은 여전히 멈출 수 없다. 필기구는 분명 내가 기분 좋게 글 쓰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나를 긍정적으로 이끌고 끌려가지 않을 정도만 사랑할 것이다. 어떤 물건에도 꿈에도 끌려가지 않고 서 있기 위해서는 계속 물어야 한다. 이게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