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콘사 찬양
나에게는 뜨개질로 보낸 뜨거운 한 철이 있었다. 두 아이를 낳고, 체중이 결혼할 때 57kg이었다가 86kg까지 치솓아 백화점에서 더이상 옷을 살 수 없고, 전속력으로 달려도 관절이 풀어져 달릴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를 구원해준 것은 내가 낳은 두 아이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었다. 이 한 덩어리의 콘사였다.
공장에서 옷을 만들다 남은 실이 감겨 있는 콘사를 만지면 나는 언제든 즐거운 상상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이걸로는 초록색 파우치를 만들거야. 초록색 네트백이나 동전지갑도 좋겠지. 이렇게 보드랍고 털실 끝을 태워봤는데 종이 타는 냄새가 난다면 분명히 '면사'일테니 옷을 떠서 입어도 좋겠는 걸. 양이 많지 않으니 이 양에서 완성할 수 있는 도안을 찾아보자.
책꼿이로 가서 적합한 굵기의 털실로 만든 마음에 드는 도안을 찾는 일은 얼마나 하늘의 별따기인지. 그게 불가능하다면 그 때부터는 또 도안을 상상해서 늘리거나 줄여야한다. 그 변수를 감수하며 하나씩 코를 이어 떠내려가며 설레기도 불안하기도 하다.
'어라, 점점 이상해지는데. 이 실은 탄성이 떨어져서 옷은 안 되겠는데. 그렇다면 가방으로...'
이런 식으로 떴다 풀었다하다가 그대로 쌓인 한 무더기의 털실과 바늘이 섞인 천봉지들. 그렇게 틈틈이 우는 아이를 재우고 달래고, 아이가 자는 옆 얼굴을 보며 손을 움직였다. 콘사는 나의 눈물과 한탄, 분노, 억울함, 비탄의 단어를 하나 하나 곱게 한 코씩 이어서 작품으로 만들어 줬다. 그 한 코가 아이의 모자가 되고 아이의 조끼가 되고 때론 시리던 내 발의 양말이 되고, 스웨터가 되었다.
살아가며 나는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했다. 부모님은 내가 뜨개질을 배우기 전부터 뜨개질 자체를 반대하셨지만, 나는 돌아가신 친할머니에게 겉뜨기를 배웠고, 아이를 낳고나서는 책과 유투브, 인터넷을 뒤져 독학했다. 이제는 산처럼 털실을 쌓아놓고 당당히 뜨개질을 하고 있다. 누구도 이제는 나의 뜨개질을 말리지 않는다. 어른이 그래서 좋은 것이다. 그 콘사의 산에서 뒹구며 나는 춤을 추듯 뜨개질을 하고 행복해한다. 물론 가끔 남편이 옆에서 콘사 좀 그만 사라고 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를 위해 나는 약속한 나만의 공간에만 콘사들을 두고 있다.
'그것', 콘사는 내겐 단순히 물건이 아니다. 한 시절, 우울을 이겨낸 동지며 친구며, 나의 살이다.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콘사. 푸릇푸릇 색이 고운 이 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