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수다X뜨개와글쓰기의상관관계X푸르시오를배우다.
뜨개질을 배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떴던 코를 다시 푸는 일이었다. 뜨개질을 시작했던 초기에는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완성했다는 자체에 만족감이 커서 다시 풀어버리기가 아까웠다.
뜨개질 3년 차부터는 점점 집안에 망작들이 쌓여갔다. 결국 싸구려 털실로 뜬 모티브 담요와 스웨터를 쓰레기봉투에 가득 우겨넣어 버렸다. 밤새며 열심히 뜬 내 시간과 털실을 산 돈이 쓰레기봉투로 직행 했을 때 참 속이 쓰렸다.
니터들은 뜨개질한 작품을 다시 푸는 것을 '푸르시오'라고 부른다. 이 '푸르시오'는 고수만이 할 수 있다. 뜬 것을 버리거나, 비싼 털실이라면 다시 풀면서 그전에 떴던 작업을 없애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과정이 귀찮고 고통스러웠다. 때론 절대 받아들일 수 없어서, 스스로를 속이기도 했다.
'이 정도면 예쁜 거 아니야?'
거울 속에 기장이 맞지 않고 뒤틀린 스웨터를 입은 채로 한참을 서성이곤 했다. 도무지 쪽팔려서 입고 나갈 수 없는 모양새였다. 이 인정이 빠르면 빠를수록 어떻게 보면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었을 텐데 지나고 나면 아쉽다. 잘 뜨는 니터일수록 좋은 실로, 여러 번 풀었다 다시 뜨는 한이 있어도 만족하는 작품을 뜨기 위해 실에 보풀이 일고 끊어지는 한이 있어도 다시 뜨기를 반복한다.
뜨개질의 매력은 이런 수정이 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풀면 다른 것이 될 수 있다는 것. 70년대 옷이 귀할 때는 떴던 스웨터를 한 올 한 올 다시 풀어서 엄마가 아이의 장갑이나 모자를 만들어주기도 했었다. 그런 털실이 가진 유연함 때문에 뜨개질을 할 때에는 좀더 실수에 대한 긴장감을 내려놓고 느긋해졌다. 잘못 뜨면 어쨌든 풀면 되니까.
푸르시오는 글쓰기로 말하면 수정하는 일이다. 작가교육원 수업에서 만난 선생님은 다섯번 수정할 때부터 좋은 것이 나온다고 하셨다. 생각해보면 나는 아직도 5고 이상 수정해 본 작품이 없다. 상상만 해도 그런 작업은 재미보다는 노동에 가까운 일일 것 같다. 5고 이상 수정이란, 기존의 작품에서 고치는 것이 아니라, 백지에서 같은 주제와 방향으로 새롭게 다시 쓰는 것을 말한다. 자기 작품을 냉정하게 보고 다시 쓰지 않고서는 5번의 수정을 가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것이다.
뜨개질 잘하는 사람 중에는 보풀이 날 때까지 좋은 실을 사서 풀고 뜨며 최고의 도안과 실의 궁합을 찾아가는 사람들도 꽤 있다. 그 중 내가 소개하고 싶은 사람은 뜨개질 작가 어쭈구리 (https://m.blog.naver.com/iamarebel) 님으로 주로 장갑과 양말, 스웨터를 떴고, 올해는 <사계절 손뜨개 양말> 책을 냈는데, 출간하기 전 도안을 창작하시는 기나긴 과정을 블로그 이웃으로 지켜보았다. 뜨개에 임하는 어쭈구리님의 태도는 5고 이상의 수정고를 쓰는 작가와 닮아 있었다. 작업을 하다 털실을 풀기 전에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며, 왜 이 작업을 풀어야하는지 어떤 부분이 아쉬운지를 적어두셨다. 과정을 디테일하게 기록해두는 것이다. 블로그에 어쭈구리 뜨개 작가의 작업과정을 보며 창작에 대한 좋은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남몰래 좋아요를 눌렀다.
뜨개질과 글은 비슷한 점이 꽤 많다. 좋은 소재를 고르는 안목부터, 그것을 구현해낼 플롯과 설정을 익혀야 한다. 털실과 도안을 정하고도 시간을 들여 일정 기간을 고스란히 바쳐야만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때론 즐겁지 않은 그 인내의 과정을 거쳐야만 결과물을 만질 수 있다. 애써 노력했지만 완성하지 못할 때도 많다. 창작자는 시종일관 그런 두려움과 싸울 수밖에 없다. 과연 내가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지. 과연 작가는 될 수 있을지. 그런 막연한 두려움이 종종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런 창작의 두려움에 대해 뜨개 디자이너 '나무' 작가는 (https://m.blog.naver.com/ehtory ) 인스타 라이브 방송에서 어떤 사람이 저도 이 스웨터를 뜰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보자 이렇게 대답했다. 장담할 수 없다고. 스스로 해봐야 안다고.
''뜨개질이란 라면 끓이는 것과 같아요.''
나무 작가의 이 말이 인상적이었다. 라면을 끓이듯 뜨개질을 하는 니터들은 그날의 기분과 털실, 바늘을 잡는 장력에 따라 편물이 바뀐다. 장력이란 실과 바늘을 쥐고 코를 뜨는 손의 힘을 말한다. 또 하나의 변수는, 어려운 도안을 이해하고 몰입하며 계속 떠나가는 집중력이겠다. 이런 요소들이 이 뜨개질 라면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어려운 도안이지만 쉽게 이해하고 진도를 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나 같은 보통 사람도 있다. 내가 이 스웨터를 뜰 수 있는지 없는지는 선생님이 알 수 없다. 한 작품씩 도전해보며 스스로 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현실과 이상의 편차를 줄여나가는 것만이 좋은 창작자가 되는 법이 아닐까?
창작에는 여러가진 난관이 있지만, 수정하는 것, 창작의 두려움을 이기는 것도 있지만 내가 시작한 작품을 끝내는 것도 중요한 덕목이다. 돌아보면 나는 시작이 10이라면 그중에 2 정도를 완성하는 사람이었다. 욕심과 의욕은 앞서는데 집중하며 밀고 나가기보다는 잡생각이 들어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현상은 나에게만 벌어지진 않는 것 같다. 니터들은 가끔 한탄한다. 문어발 중인데 언제 그 문어발이 줄어들지 모르겠다고. 그런 문어발에 대해 내게 잊히지 않는 말을 해준 뜨개 작가가 있었다. 재작년 니트캐슬을 운영하는 뜨개마녀( https://m.blog.naver.com/knitcastle)님의 함뜨에 참여했다. 함뜨는 함께뜨기의 줄임말이다. 함뜨를 시작하기 전에 카톡으로 뜨개마녀 작가는 참여하는 모두에게 이렇게 말했다.
함뜨를 약속한 기간 안에 완성하지 못하면, 결국 완성하지 못할 거에요.
그 말이 맞았다. 언젠가 해야지는 그 언젠가는 오지 않는다. 쌓아둔 프로젝트 바구니를 다시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바구니 안에 도안을 넣어두지 않았다면 무슨 도안으로 뜨기 시작했는지부터 찾아야 하니, 더더욱 손이 가질 않았다.
2020년이 끝나는 어느 겨울, 뜨개 프로젝트 바구니를 하나씩 열어서 섹션별로 정리했다. 뜨다만 털실에 걸려있던 바늘을 빼거나, 분실된 도안을 찾고 짝이 맞는 털실을 정리해 시중에 파는 뜨개 키트처럼 정리했다. 이제는 한 프로젝트가 끝나야만 그곳에 가서 다른 바구니를 꺼낼 것이다. 완성하지 않고는 다른 실을 만지지 않도록 정한 나만의 규칙이다.
아무리 해탈했다고 해도 여전히 어려운 푸르시오지만 고생하며 터득한 한가지 푸르시오 방법을 소개한다. 푸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면 풀고나서 하루 이틀의 애도하는 시간을 가진다. 내가 한 작업을 제로로 만든 허탈감을 날려보낸 후, 눈에 띄는 장소에 완성하고 싶은 털실을 다시 올려둔다. 그 실이 굴러서 내 발에 채이고, 다시 줍기를 반복하다보면 다시 뜰 용기가 문득 솓아오른다. 사실은 떠서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마음 안에 있던 말처럼 털실은 그렇게 나를 계속 건드려왔다. 이 상황이 싫다. 속상하다. 답답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아프다는 생각이 들면 드는대로 손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떠내려가며 여기까지 온 것 같다. 그 아픔을 바라보며 이 상황이 어쩔수 없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묻고 또 물어보았다. 결국 내 인생인데... 글쓰기도, 뜨개질도. 마음에 안 들면 어쩌겠는가. 받아들이는 수밖에. 지금부터 다시 풀고 잘 해보는 수밖에! 푸르시오. 다시 뜨시오. 그렇게 나는 뜨개질과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