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x인간관계
어제 우리 집에는 첫째 아들 평화의 친구가 놀러 왔다. 태권도를 하원 하면서 만난 친구로 같이 미술학원 수업을 들으면서 친해졌다. 평화는 동네 친구가 많이 없어서, 친밀해지게 된 은찬이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은찬이는 평화보다 키는 작지만 씩씩하고 다부져서 그네 봉을 올라가 개구리처럼 착 하고 매달리는 등 운동신경이 좋다. 그런 은찬이를 평화도 꽤 좋아해서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자주 지켜보았다.
두 아이가 놀다 보면, 둘 사이의 우열이 결정되고 한 친구가 다른 친구를 자연히 따르게 되고 따라 하는 현상이 생긴다. 평화의 경우는 느린 편이라 대체로 다른 친구들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우마다 나는 가슴이 좀 답답했고 아이가 기죽는 성격을 가진 것이 내 탓인 것만 같아서 속이 상했다. 그렇지만 절대로 내색하지 않고 최대한 아이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칭찬을 짜내어보거나, 다른 친구들이 도를 넘는 요구를 하는 경우에는 적당한 선에서 거절하도록 태도와 방법을 알려주려고 했다.
대인관계에 대한 습관적인 저자세는 아이에게 깊게 배어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나를 거울처럼 비친 것 같아서 괴롭기도 하다. 아이에게 조언을 할 때마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지 아이에게 하는 것인지 구분이 안 갈 지경이었다.
어제 놀러 온 평화의 친구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으로 여름에는 함께 수영장을 만들어 물놀이를 하고 갔다. 이제는 어린이집이 달라졌지만, 미술학원의 인연으로 다시 만나서 베이블레이드 팽이 시합을 벌이기로 되어있었다. 문제는 베이블레이드 팽이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종류가 많아서 누가 무엇을 가졌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평화도 가방 한 가득, 은찬이도 가방 한 가득 든 팽이가 있었다. 은찬이가 우리 집에서 가방을 쏟기 전에 이미 팽이의 모습을 찍어두었지만... 이 두 친구들이 서로의 우정을 증명하기 위해 팽이를 교환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심각해졌다.
남편과 나는 우리 집에 놀러 온 손님이자 평화의 소중한 친구랑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최대한 관여를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집에 갈 때가 되니 그 비율이 말도 안 되게 기울기 시작했다. 은찬이가 평화에게 달라고 요구하는 팽이는 하나같이 평화가 며칠 전에 산 새 팽이들이었다. 커다랗고 비싼 팽이를 은찬이가 달라고 하면 평화는 주저 없이 자기 팽이들을 내주었고, 은찬이가 답례로 평화에게 선뜻 내민 팽이들은 놀만큼 놀아서 흥미가 떨어진 낡은 팽이였다. 나의 경우는 평화의 팽이들을 전부 이해하지 못해서 긴가민가했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이 결국 ' 잠깐만!'이라고 외치면서 중재를 시작했다.
이미 우리 집에서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 중 다수를 은찬이가 계속 평화에게 달라고 하고, 어차피 가지고 놀지 않고 질렸던 장난감들을 우리도 평화에게 줘도 된다고 했지만. 너무도 많은 양이 되어버린 것이다.
"은찬아, 며칠 전에 평화가 새로 산 팽이는 미안하지만 안 되겠어."라고 남편이 말했다.
그때부터 평화는 자기 것을 주기로 한 결정이 무산되자, 자존심이 상하고 민망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평화의 울음 속에서 일종의 비겁함. 자신의 표현을 부모에게 맡기는 비겁함을 엿보았다. 사실은 은찬이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남편과 내가 대신 거절해주며 악역을 맡아 처리해준 것이 아닌가. 아이가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아이는 계속 은찬이를 앞에 두고 납득할 수 없는 울음을 그치지 못했고. 남편과 나는 은찬이와 우리 집에 놀러 와줘서 기쁘지만 이 팽이만큼은 줄 수 없겠다고 잘랐다. 은찬이도 조금 서운하지만 덤덤하게 알겠다고 했다.
"은찬아, 이 팽이는 우리가 평화에게 사준 것이니 우리가 결정할게. 이 팽이는 안 되겠어. 미안"
"네..."
"엄마! 엄마!"
평화는 팔뚝에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으며 이 상황을 어떻게든 저항하려고 했지만, 울기만 했지 정말로 주고 싶은 것 같지는 않았다. 평화는 요즘 베이블레이드가 좋아서 손에 쥐고 잠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면 다시 팽이를 돌리고 집에 오자마자 팽이를 돌린다. 그렇게 좋아하는 팽이조차도 친구가 주장하는대로 유리한 결정에 끌려가는 것인지 내심 한심스럽기도 했다.
은찬이 엄마가 돌아간 뒤에, 나는 평화에게 물었다.
"왜 울어?"
평화는 내가 팽이를 주지 않아서라고 했다. 나는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진정할 때까지 잠자코 평화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이는 나와 눈을 마주치면서 점점 숨을 고르고 진정되었다. 남편은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고 진정이 안되자. 도무지 어떻게 자긴 이 상황을 설명해줘야 할지 모르겠다며 방에서 나가 있었다. 나는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두 공룡을 집어 들었다.
"공룡 1과 공룡 2가 친구야. 1 친구가 2 친구에게 계속 팽이를 달라고 해. 근데 2 친구는 팽이가 주고 싶을까? 주고 싶지 않은데 계속 자기가 아끼는 팽이를 친구 1가 달라고 하면 줘야 할까? 팽이를 계속 줘야 친구 1이 자기랑 놀 수 있다고 하면 처음에는 팽이를 줄 수도 있겠지. 그러면 이 친구랑 놀려면 계속 팽이를 줘야 하는 거야? 언제까지? 그러면 그 친구가 고마워할까? 아니. 그 친구는 당연하게 생각할 거야. 그 친구가 너무나 쉽게 자기 팽이를 줬거든 그 친구 2한테는 소중한 팽이지만. 친구 1에게는 쉽게 얻은 그 팽이를 아마도 전혀 고마워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아무리 친구 1이 좋아도 쉽게 니 팽이를 주면 안 돼. 줄 때는 꼭 생색을 내줘. 이건 내가 아끼는 팽이라고. 자 말해봐."
공룡을 들고 설명하자, 평화는 차츰 두 공룡을 쳐다보며 이야기에 몰입했다.
"이건 내가 아끼는 팽이인데 너를 주는 거야."
그렇게 몇 번의 리허설을 걸치고 나서, 나는 평화에게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친구 2는 팽이를 다른 친구에게 주지 않아도 충분히 멋있는 사람이야. 누구한테 팽이를 주면서까지 놀아달라고 할 필요가 없어. 충분히 멋있는 사람이란 말이야. 그리고 나에게 소중한 것은 누가 달라고 해도 절대 절대 주면 안 돼. 거절하는 게 당연하단 말이야."
평화가 울먹이며 다시 답했다.
"그렇지만 은찬이가 가지고 싶다고 했단 말이야."
내가 다시 응수했다.
"그건 걔 감정이지. 네 것을 걔가 가지고 싶어 하는 걸 네가 거절하는 게 당연하다니까. 걔가 그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거절해서 그 친구가 널 싫어하는 거 그게 무서운 거야?"
그렇게 묻자, 평화는 갑자기 고개를 파묻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참 우는 평화를 쳐다보았다. 다시 또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평화야, 네가 소중한 건 주는 게 아니야. 거절해야 돼. 너는 팽이를 주지 않아도 충분히 멋있는 사람이야. 네가 그 친구랑 놀아주는 거야. 우리가 이 집에 친구를 초대해준 것이고. 그 친구가 우리 집에 와서 놀다가 가니까 고마워해야 하는 거고. 네가 그 친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고. 알겠니?"
"엄마..."
평화가 나를 부르면서 지친 듯이 말했다.
"알겠어요. 이제 그만 말해요."
"그래... 너에게 소중한 건 주지 않기"
"네"
그렇게 한 차례 실랑이를 하며 계속 울음과 설득의 과정이 지나가고 나서, 나는 탈수기에 탈탈 정신이 털린 기분이었다. 아이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지켜보았다. 나는 유독 사람에게 저자세이고, 타인의 시선과 마음이 상하지 않게 신경 쓰는 평화의 착한 심성이 좋으면서도 그런 마음 때문에 앞으로 겪을 일들을 생각하면 걱정스럽다. 차라리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사람들과 많이 부딪히며 알아가길 바란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편보다 내가 이런 방면의 고민이 깊었기에 해줄 말이 많다. 과연 나의 설명을 통해 평화가 이런 실수들을 피해 갈 수는 없겠지만. 시간이 지나 나의 잔소리들이 어떻게든 평화의 경험과 녹아들어서... '아! 엄마가 이런 말이었구나.' 하면서 무릎을 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때때로 사람 때문에 힘든 평화를 질책하기보다는 응원해주고 이해해주자고 다짐해본다. 평화야. 네 잘못이 아니야. 그냥 우리는 엄마 개복치와 아기 개복치란다. 좀 더 찔긴 개복치가 되도록 바다에 나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