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차 엄마의 기묘한 힐링법
지금까지 혼자 자본 적이 거의 없다. 결혼 전에는 작은 방에서 할머니와 언니를 양 옆에 두고 나란히 누워 잤다. 잘 때는 늘 할머니의 불룩한 배에 다리를 올리거나 살을 붙였다. 옆자리의 언니는 체질적으로 열이 많아서, 내가 한 번씩 다리를 올릴 때마다 툭 하고 차며 거부했다. 언니가 시집가기 전까지 25년쯤 함께 자며 다리를 올리고 걷어차이길 반복했다.
같이 잠들던 시간이 쌓여서일까 언니와 나는 둘만이 아는 아주 사소한 단어들이 많다. 그래서 작은 말 한마디만 해도 어떤 말인지 찰떡같이 알아듣고 웃음을 터트리게 된다. 아주 작고 사소한 기억들을 함께 기억하는 언니가 있어서 든든하다. 사실 언니와는 참 많이도 다투었는데, 지나고 보면 가장 많이 싸우던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지금은 남편이 내게 그런 존재가 되었다.
결혼 이후에는 첫째 평화가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평화가 깨지 않는지 유심히 지켜보는 버릇이 생겼다. 평화가 자는 동안만 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자는 모습을 관찰해보니 깊이 잠들면 숨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쉰다. 숨을 고르게 쉬고 있을 때는 제법 시끄러워도 잘 들리지 않는지 잘 잔다. 그런데 한두 시간 정도 낮잠을 자고 일어날 때쯤이 되면 들숨날숨이 얕아진다. 그럴 때는 절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 안 된다. 작은 소리에도 민감해지고 금세 깨어나기 때문이다.
아이의 잠에 대해서,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는 ‘파도’와 같다고 말했다. 천천히 밀려왔다가 천천히 빠지는 물살이 아이의 눈꺼풀에서 흔들린다. 아이가 잠이 들고 싶어서 뒤척일 때마다 나는 파도를 상상하며 기다렸다.
겨우 뒤척이다 아이가 잠이 들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나름 작은 성취였던 것이다. 그렇게 아이가 자는 모습을 남편에게 찍어서 보내거나, 재밌는 포즈는 사진으로 남기는 습관이 생겼다.
아이들이 말을 잘하게 되고 나서는 잠들기 전까지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불 끈 방에 아이들과 나란히 누워서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려본다. 어린이집에서 친구와 싸웠던 일. 엄마랑 놀러갔던 놀이터에서 만난 재밌는 형을 또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 너무 맛있어서 또 먹고 싶은 쿠키를 내일도 사달라고 약속하기도 한다. 수다의 끝에 평화가 내게 물었다.
"엄마는 무슨 꿈 꾸고 싶어요?"
평화는 어느 날부터 늘 내가 했던 질문을 나에게 물었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는 꿈을 꾸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평화는 어떤 꿈을 꾸고 싶어?"
라고 묻자, 평화는 내게 꿈에서 엄마와 만나서 재밌게 놀고 싶다고 했다. 나는 나의 꿈과 목표만을 쫓는 답을 했다면, 평화는 나를 사랑한다고 답한 것이다. 그런 평화에게 미안해서 꼭 안아주었다. 고백하자면 아이를 재울 때마다 나는 아이가 자면 새벽에 쓸 글에 대해 떠올리거나, 그저 아이가 빨리 자주기만을 기다려왔다.
"엄마도 꿈에서 평화랑 만나서 놀고 싶어."
내 말에 평화는 기쁜지 웃는다. 불이 꺼진 방안에서도 아이의 웃는 얼굴이 느껴졌다. 잠이 든 이후에도 네 식구가 잠든 이부자리는 소란스럽다. 종종 어린이집에서 속상한 일이 있는지 한 번씩 자다가 엉엉 울거나, 끙끙 앓기도 했다. 이불에 누운 아빠도 회사에서 힘든 일로 이를 땅땅 갈고, 옆에 누운 아이도 아빠를 닮아 이를 땅땅 갈았다. 두 부자의 턱을 잡아주며 이를 갈지 말라고 말해도, 그때뿐이다.
요즘에는 새벽마다 에어컨 바람이 추워서 깨게 된다. 일어나 에어컨을 끄고 문을 연다. 이제 한여름은 지나간 것 같다. 잠시 잠든 식구들을 천천히 바라본다. 자는 모습이 참 제각각이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건강하게 존재하고 있구나'
이 모습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오래도록 보며 눈에 담는다. 새벽 시간의 속도가 아주 천천히 느리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