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광고회사를 다닌다. 팀원들과 같은 주제로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가 많다. 아이디어를 말할 때마다 상사는 매력적인 아이디어가 뭔지 평가하며, 그 아이디어를 다시 다 같이 발전시켜서, 실제 광고로 집행하게 된다. 고로, 살아남은 아이디어는 호불호는 있지만 중요한 광고주의 요구나 보편적인 광고적 흐름을 지킨 메시지인 경우가 많다. 남편이 광고 일을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배운 것은, 반드시 좋은 아이디어라고 해서 그것이 모두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좋은 아이디어란 소재가 참신할 수도 있고, 소재는 평범하지만 그것을 새롭게 재해석하거나, 풀어낸 사람의 카피라이팅 능력이 뛰어나서 완성도가 높은 것일 수도 있다. 이 모든 조건이 다 맞아도 그냥 광고주가 싫으면 땡이다.
그럼에도 자기 아이디어를 팔지 못한 날이면 남편은 집에 와서 술 한 잔을 하며, 자기 아이디어가 얼마나 좋았는지 나에게 재차 설명하며 스스로의 생각을 강화한다. 이런 태도는 나와는 반대인데, 나의 경우는 누군가에게 거절당한 아이디어는 내가 틀렸다고 생각해왔다. 한데 남편의 경우는 상사가 나의 아이디어를 고르지 않은 것이지 여러 번 생각해도 나의 아이디어가 스스로에게 쪽팔리지 않았다면, 그가 안목이 없는 것이라고 결정한다. 때로는 독선적으로 보일 수 있는 그의 이런 태도를 보며, 건강하게 자신을 지킬 줄 아는 모습을 배웠다. 대신 그는 이렇게 자기 확신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쪽팔리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아이디어를 고민한다. 노력하지 않은 채 무조건 내가 잘했고, 나를 고르지 않은 상대가 틀렸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안일하게 위로할 뿐이고, 정신승리에 지나지 않으니까.
독서교실 강사로 일하던 나에게, 요즘 새로운 일이 생겼다. 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예술교육프로그램에서 강사로 일하게 된 것이다. 연극, 문학, 시각예술 등 다양한 장르에서 강사로 일 해왔던 분 중 나는 연극 강사분과 팀이 되어서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다. 스토리텔링을 꾸준히 공부하고 창작을 해왔지만 이번 예술교육 강사 양성 프로그램은 뭔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무언가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예술적 순간들을 대상에게 주기 위해 집중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연극 선생님과 짝이 되어서 하다 보니, 혼자 작업하는데 익숙하던 나에게는 서로의 생각 차이를 맞추는 끝없는 회의가 다소 소모적이고 피곤한 느낌도 있었다. 연극선생님과 나의 성향이 달랐기 때문에 서로를 맞추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예술 교육 안에서 나와는 전혀 다른 ‘연극적’인 예술교육에 관한 아이디어를 들어볼 수 있었고, 신체 활동과 몸짓 등 비언어적 표현법에 능한 연극 선생님으로부터 연극적 언어를 배우고 느껴볼 수 있었다. 분명, 그 안에 내가 좋아하던 즐거움도 있었다. 표현방법이 다를 뿐이었다.
다만 회의를 하면서 때때로 생기는 어떤 기싸움은 피할 길이 없었다. 결정을 한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선택되어야 하는 것인데, 누군가의 아이디어는 버려지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로 내년 사업에도 함께 할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한다. 그 과정에서 내 아이디어를 인정해주었던 멘토 선생님의 말씀이 확실히 힘이 되긴 했다. 반면 내가 선택되었을 때 상대는 분명 좋을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동료이자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는 분에게 잘하는 현장수업에 들어가면 빛을 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극선생님은 현장 경험이 많고 기획서 경험은 적은 분이었으니까. 각자가 잘하는 것으로 팀에 도움이 되면 된다. 그 이상의 경쟁은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나는 상대방의 인정을 받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것에 너무 좌지우지 되고 싶지 않다. 이런 저항감은, 거칠게 말하자면 그런 모습이 멋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팀작업을 통해 계속 여러 이해관계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고민해볼 수 있었다.
예술교육을 통해 내가 수업 참여자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삶에서 놓치고 있었던 예술적 시선을 나누는 것이다. 그것은 제외한 이 일을 통한 어떤 단체의 인정은 어떻게 보면 부차적인 것이다. 사건에서 거리를 두고 질문을 하는 것은 글을 쓰면서 내가 주인공을 어디로 어떻게 데려갈지 고민하다 보니 생긴 습관이다.
“이 주인공의 목표와 장애물은 무엇이고, 주인공이라면 지금 어떻게 하고 싶어 할까?”
계속 질문을 던지며, 주인공을 다음 상황으로 몰아가며 이야기를 만들다보니 내 삶도 나를 주인공으로 점차 그렇게 바라보게된다. 물론, 경쟁사회에서 나 역시 상대를 이기고 어떤 자리를 차지하면서 나아가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오징어 게임이다. 못하면 낙오자.
낙오는 죽음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오로지 돈이나 인정, 경쟁사회에서 생존하는 것만 중요할까?
다른 명분은 가치가 없는 것일까.
단순히 상대를 배재하고 내가 선택되기 위해서만 살아간다면, 재미있었던 일조차 금세 고역이 될 것이다.
나는 실제로 자유롭지 않더라도.
우리가 언제든지 무엇이 될 수 있다는 상상력 만큼은 뺏기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상상을 믿는 결정은 본인이 하는 것이다.
세상과 타인의 잣대를 벗어나는 이 자유로운 감각을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게 돕고 싶다. 나 역시 잊지 않기 위해.
어쩌면 그게 바로 내가 예술교육에서 전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수업을 마치고나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이야기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