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평을 통한 메타인지

by 심가연

요즘 메타인지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를 알아야, 무언가를 배우고 실행할 때 명확하게 계획하고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이는 글쓰기에도 비슷한 것 같다. 다만 글을 쓰고 읽는 행위만으로는 어떻게 보면 메타인지를 기르지 못한다. 글을 쓰는 것은 자기 혼자만의 독백이라 혼자 주절거리는 경우가 많고, 읽는 것도 자기가 읽는 책만 읽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생각을 계속 쓰고 읽으며 강화하는 자기 확신만 강해진다.



타인을 만난다 해도, 타인들은 보통 신랄한 이야기는 뒤로 감추기 때문에, 진정한 나 자신의 3자의 평가는 절대 제대로 알 수 없다. 또한 만난다 해도 그들은 나와 비슷한 처지의 비슷한 상황인 사람들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조차도 서로의 틀린 생각을 맞다고 해주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는 스스로를 그나마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던 기회가 교육원 합평 때였다. 작품을 써보면 30명 정도의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의견을 듣는 일이었다. 그 합평의 방식이 절대 객관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독히 주관적이었기 때문에 도움이 되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 식으로 읽은 내 작품을 평하는 것을 한편으로는 견디기 힘들지만, 곱씹어 봐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말들이 있었다.



기억나는 말들은


내 글에 -프로파간다 - 정치적 의도와 주제의식이 세다.


여주인공이 수동적이다. 이야기는 있는데 스토리는 없다. 잔잔하고, 극적 요소가 부족하다. 노잼. 구성이 약하다 등등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평가했을 때. 그것을 무조건 동의할 수 없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다시 의심해봐야 한다.



내가 쓰는 인물과 이야기가 침울하거나, 우울하거나, 늘 억울해하거나, 찌질할 때. 그들이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합평을 하며 듣던 가장 큰 타격감이 있었던 말은 '왜 이렇게 화가 나 있어?'였다. 그 합평 이후, 나는 나의 삶의 태도를 수정하기로 했다.



작가의 메타인지가 부족해, 독자를 공감시키지 못한다면 이는 치명적인 문제다. 어떤 상황에 있는 주인공을 보여주며 독자(세상 사람)들을 이 이야기를 읽도록 설득하려면,


작가는 주인공에게 어떤 상황과 고난을 줄지 명확한 선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하는 주인공의 선택도 독자들이 어느 정도는 예측이 되면서도, 궁금해야 한다.



어떤 선택을 하며 나아가야 할까.



이 질문은 결국 내 삶에도 해당이 되는 말이었다. 내 삶을 어떻게 타인에게 공감시키고 설득할지... 이런 태도를 합평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교육원에서 배운 것 같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어떤 인물을 그려서 타인에게 나의 가치관과 삶을 이해시키고 싶은가. 그것이 요즘 나의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