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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가연 Apr 29. 2022

햇빛이 알려줍니다.

'에세이를 부탁해' 4월 모임 주제 - 지하철

 요즘은 웬만하면 지하철을 타지 않게 되었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햇빛이 없는 지하철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싫어졌기 때문이다. 햇살을 받으며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거리의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면, 목적지로 향하는 시간도 충분히 즐거워진다. 반면 지하철에서 창백한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늘 어색해서 핸드폰을 보게된다. ‘지하철’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그 여정의 온도가 무척 싸늘해진다. 그래서 늘 요즘에는 돌아가더라도 버스를 택하게 된다.  

    

햇빛이 내리쬐는 오후 4시가 되면, 느슨한 기분이 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1층 주택에 살고 있다. 집안에서 글 쓰거나 요즘 그림책 작업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보안 때문에 창문이 작은 편이라 집안 안쪽 마당으로 열린 방문들을 열어두고 있다. 그 마당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비스듬이 작업하는 내 방으로 기운다. 햇살이 방문으로 길게 드러누운다. 나는 그 햇살을 이용해서 때때로 기록하고 싶은 책이나 친구에게 받은 선물들을 찍어 고마움을 표현한다. 그 때 찍은 사진들은 포근하고 따끈한 빛깔이다.     


빛에 대한 몰입과 애착이 이토록 깊어진 것은, 오래도록 쌓인 내 마음의 어둠 때문일지도 모른다. 20대까지는 햇빛이 없어도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아니면 햇빛이 사라진 곳에서 있을 때 마음이 어두워진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대학생 내내 통학을 하는 동안 지하철을 많이 탔었다. 다녀야할 곳도 가고 싶은 곳도 너무 많았지만 주머니는 가벼웠기에 누구보다 지하철을 이용했다.     


 어느 날인가 지하철을 탔는데 그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시루떡처럼 차오른 사람들이 겨울 점퍼를 입고 더운 숨을 뱉었다. 그 안에서 두툼한 외투를 들고, 대학 교재를 맨 백팩을 바닥에 내려두고 한참 숨을 쉬려고 해보았지만 점점 소용이 없었다. 지금 내리면 분명히 지각할 것이다. 버텨보려고도 해봤다. 지하철 승강장마다 문이 몇 번 문이 열리고 닫히고를 반복했다. 참아보려고 했지만 지하철 안에서는 도저히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지하철에서 내렸다.     


이제 나는 지각할 것이다. 손목시계를 보며 한숨과 날숨을 같이 내보내며 헐떡였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지하철에서 갑갑하게 숨을 쉬지 못했던 기억은 지하철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내게 뭔가를 묻는 것 같다.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거냐고. 물론 지하철은 너무나 편하고 저렴하고 정확하게 목적지에 나를 데려다준다. 그러나 그 목적지에 가는 나의 여정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도 소중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강북문화정보도서관 독서동아리 - 에세이를 부탁해 모임 4월 주제 '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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