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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가연 May 16. 2022

새 바지를 사다.

다이어트 일기 1일차

나에겐 체중관리를 하기 위한 고집이 있었다. 살이 찌면 청바지에 맞춰서 다시 굶으면서 살을 빼는 것이다. 물론 점차로 늘어나는 뱃살에 맞춰서 눈을 질끈 감고 사이즈를 올리기도 했지만... 절대 남편 허리 사이즈만큼은 넘기지 말자는 최소한의 자존심이 있었다. 남편보다는 아담한 여자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심리적인 마지노선을 지키려고 아등바등 했었는데 요즘 일 욕심에 무리를 하면서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는 날이 늘어가자 허리둘레에 급속도로 살이 붙기 시작했다.


 헌데 요즘 유행하는 배바지, 하이웨스트 팬츠는 뱃살이 오르자 아예 입기가 불가능했다. 보통 잠그는 버튼이 아래 있으면 뱃살을 그 위로 슬쩍 꺼내서 숨통을 틔울 수 있는데 하이웨스트 팬츠는 그야말로 에누리가 없었다. 나의 원칙을 위해? 기묘하게도 집에서 지퍼를 푸르고 있는 날이 늘어갔다. 분명히 다시 살이 빠져줄 거라고 믿으면서. 그러나 내 식욕은 내 의지보다 강했던 것 같다.


봄날의 벚꽃 때문일까 초여름의 아카시아 때문일까 돋아난 식욕 때문에 나도 모르게 한 수저 한 수저, 그렇게 살이 포동 하게 오른 채,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며 하이웨이스트 팬츠를 우걱우걱 입었다. 점차 다리가 아프고 걷기 힘들고 허리가 아플 때까지.


어느 공식적인 모임이 있었던 날, 멋을 부리기 위해 하이웨스트 팬츠를 입고 나가기 건 후다닥 컵라면 한 그릇을 훌떡 먹고 나갔다. 모임을 마칠 때쯤 두통이 시작됐다. 약도 먹고 산책도 하고 트림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바지를 벗고 나서야 이 고통이 멈췄다.


오늘은 이마트에 가서 XL 사이즈 바지를 집어 들었다.

"깔 별로 두 장 주세요."

피팅룸에 가서 둘째 딸인 영화랑 입어보며

 "연신 편하다! 너무 편해!" 외쳤다.

직원은 이렇게 그 바지를 예찬하는 사람을 아마도 처음 봤을 것이다. 전에 입던 바지를 벗어버리고 가위를 달라고 해서 택을 자르고 나갔다. 뱃살을 풀며 크게 숨을 쉬었다. 마음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살이 찐 게 아니라, 건조기 때문에 옷이 줄어든 걸 거야. 이 바지도 줄어들면 또 못 입는 거 아냐?'

'그게 아니라 그냥 살찐 거잖아.'

'맞아'

'내일은 조금만 덜 먹자. 내일부터.'

그날 저녁 또 라면 끓여 먹었다. 바지는 이제 그만... 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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