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재료를 버리는 사람들

당근 마켓 일기

by 심가연

얼마 전 두 번의 나눔을 받았다. 외국 유학파 분이신지, 이색적인 물감들로 가득 찬 화구와 그림도구를 통째로 나눔 했다. 그렇게 나눔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전체 사진을 찍지 않고 박스째 가져가라고 한다.


나는 두 번의 나눔으로 먼지가 쌓인 이 사람들의 물건을 보며 이 사람들이 썼던 색과 그리고 싶은 그림, 이들이 버린 물건들이 버려지게 된 과정을 상상해본다.


너무나 비싸고도 아름다웠던 꿈이었다. 이 사람들이 버린 물감은 내가 한 번도 돈을 주고 사보지 못했던 물감이었다. 이들이 그래서 너무 고마웠다. 아마도 더 좋은 디지털 작업을 위해 아날로그 도구를 정리했거나, 완전히 그림으로부터 떠나기 위해 그 사람들은 이런 비움을 선택한 것이다.

완전히 비워낸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어떤 물건과의 인연도 쉽게 보내지 못하고 애잔하게 그것을 바라본다. 함께한 시간들이 내가 원하던 욕망이 여전히 그 물건과 자리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어제 나눔을 했던 사람의 동네에 차를 타고 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딸이 화구를 버리는 것이 화가 난 것인지, 공짜로 나눔을 받으러 온 염치없는 나 때문인지 화가 나 보였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힘껏 웃으며 감사하다고 했다. 거대한 비닐봉지에 겹겹이 든 물감들을 건네받았다. 트렁크에 구겨 들어가며 얼마나 부스럭부스럭하던지.


그녀는 내게 파렛트를 씻어주지 못해서 미안해했다. 나는 연신 고맙다고만 했다. 오늘 아침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고 나서야 열어보았다.


그녀가 버린 물건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 사람은 이 물건을 버리고 나를 잊었겠지만 나는 왠지 자꾸 그녀가 생각날 것 같다. 때때로 사용하며 나는 이들에게 다시 연락을 하기도 한다.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이 물건이 무엇인지. 고맙다고도 하고 차를 마시고 싶다고도 해본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그렸던 사람들을 좋아하나 보다. 당근 마켓을 통해 동네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서 일상에서 문득 즐거운 일들이 이렇게 종종 있다.


나에게 선물을 준 그녀의 행복을 빌어본다.


혹시라도 그림을 완성해서 말을 걸어보면 놀래겠지. 상상만 하며 오글오글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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