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마켓 헤비유저의 기록
아이들을 키우면서 본격적으로 중고거래를 하는 일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중고나라를 이용했다면 그곳에 처분하기 애매한 것들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여 세금 감면 혜택을 받았다. 필요 없는 옷과 아이들 장난감을 기부하고 얼마 간의 세제로 연말정산을 해서 돈을 돌려받을 때는 제대로 아꼈다는 느낌에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요즘은 당근 마켓을 통해 동네에서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처분하는 미술용품을 사고, 만년필을 수집하며 그 사람이 사는 곳을 직접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며 운동을 하기도 했다. 일종의 당근 산책인데, 인스타를 구경하다 가수 요조 님도 당근 거래를 하면서 동네 산책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괜스레 반갑기도 했다.
'아, 나도 산책하는데,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하는 기분이 들면, 반갑고 안심이 된다.
내가 대학생 때부터 서서히 활성화되던 중고거래로 나는 우쿨렐레를 장만했다. 10만 원짜리 우쿨렐레를 쓰다 10만 원에 팔고 더 돈을 모아 15만 원짜리 우쿨렐레로, 그다음은 24만 원짜리로 그렇게 조금씩 업버전의 악기를 사면서 같은 취향을 사람들을 만나보는 일이 참 즐거웠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은 하나 같이 내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순한 눈을 하고, 악기를 소중하게 건넸다. 만나서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악기를 튕기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핀이 맞아 커피를 마시거나, 자신이 혼자 제작한 잡지를 선물로 주는 이도 있었다. 작은 메모와 함께 사탕을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충분히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팔면서 그렇게까지 친절한 사람들은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거래한 사람들의 얼굴은 그 사람의 우쿨렐레를 가지고 연주를 하면서 한번씩 다시 궁금해졌다. 이 사람은 이 악기를 어떻게 가지고 있었을까. 어디서 샀을까 하고 상상하면서.
내가 중고 거래를 하면서 느낀 점을 말하자면, 내가 거래한 100명의 사람 중 99명이 99.5명이 다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세상은 따뜻하다.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 나는 중고거래를 통해 그것을 실감했다. 돈을 먼저 붙이고 물건을 보내주던 예전 '중고 세상'에 모여있던 사람들에게 나는 한 번도 사기를 당한 적이 없다. 내가 사는 물건이 뜨개질이나 콘사나, 뜨개바늘이나, 책과 같은 상대적으로 비싼 물건이 아니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최근 첫째 아이를 위한 키높이 의자를 사려고 했다. 키높이 의자 중 엄마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기종은 17만 원 선의 '시디즈 링고'다. 초등학생 때만 사용할 수 있고, 40킬로그램의 무게 제한도 있어서 가격 대비 사용기간이 짧다. 동네 매장이 있어서 평화가 이왕이면 공부를 할 때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새 제품을 구매하려고 했다. 친언니에게 물어보니, 굳이 새 제품을 사지 말고 당근 마켓에 검색해보라는 것이다. 언니도 두 아이들 의자를 당근 마켓에서 5만 원 선이면 상태 좋은 것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검색해보니, 언니의 말대로 '시디즈 링고'제품이 쏟아졌다. 내친김에 바로 구매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왕이면 내가 가서 구매하면 좋았겠지만, 장롱면허인 나 대신 남편이 거래를 하러 갔다. 쏟아지는 빗길을 따라 차를 끌고 의자를 사러 간 남편이 의자를 들고 들어왔는데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야기인즉슨, 도착해서 연락하니 자신의 집 앞으로 오라고 통보하였고, 그 사람의 집 문 앞에서 돈을 붙이고 의자를 들고 왔다는 것이다.
"내가 거지도 아니고, 주워 오는 것도 아니고 돈 주고 사는데... 기분이 영..."
나는 남편에게 자괴감이 드는 거래를 하도록 시킨 것이 미안해졌다. 문고리 거래였다면 미리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앞으로는 문고리 거래라고 하면 하지 않을게. 미안해."
미안해하는 내게, 남편은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예전에도 문고리 거래를 하고 돌아와서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이렇게 돈을 못 버는 것도 아니고, 이런 건 사지 말자."
맞다. 저렴한 물건을 사는 것은 사실은 돈을 아끼는 일도 아니다. 나는 가성비 있게 사는 삶을 위해서 오히려 바보 같은 선택을 하고, 남편에게 문고리 거래와 같은 기분 나쁜 일은 미루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를 재우고 있다는 이유를 대며 물건을 문 앞에 두고 알아서 가져가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아파트 앞에서 한참 동안 경비실 호출을 누르고, 그 사람에게 당근 앱으로 연신 전화를 걸거야 했다. 그 사람은 전화를 한동안 받지 않아서 내내 그 앞에서 서서 기다리는데 점점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이 들었다.
'돈을 아끼려고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할까?'
어떤 사람들과의 거래는 기묘한 뒷맛이 남는다. 한 번뿐인 만남이라고 생각하는지?
우리는 돌고 돌아 계속 만난다. 나는 오래전 나에게 좋은 독서대를 나눔 해준 사람에게 다시 미술도구를 사러 간 적이 있었다. 독서대를 나눔 받고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스타벅스 커피 쿠폰을 나눔 했었다. 그녀는 나를 다시 만나 자신이 앞으로 쓰지 않을 미술용품을 좀 더 주었고, 나는 그녀가 더 이상 쓰지 않을 미술용품을 내가 필요한 것보다 좀 더 넉넉하게 샀다. 그녀에게 나눔을 받아 마음의 빚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 안에서 '코로나'라는 이유가 사라진 요즘도, 문고리 거래를 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물건을 사러 와준 이들에 대한 감사합니다. 작은 미소는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단 한 번의 만남도 분명 잊지 않는 사람들이 나는 나 이외에도 많이 있다고 생각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