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ㅡ 어른의 태도와 아이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겠다는 다짐.
강이랑 작가님은 내가 지인과 글쓰기 수업을 통해 줌으로 만난 그림책 선생님이었다. 그림책 한 권을 2시간 동안 함께 나누며 각자가 좋았던 장면과 이야기 속의 숨은 의미들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생전 처음으로 그림책을 다시 읽는 법을 배운 것 같다.
강이랑 작가님은 그림책 이야기 수업 과정을 오묘한 '여행'에 비유하였다. 수업시간에는 서로의 별명으로 부르며 우리는 자유롭게 이야기는 나누게 되었다. 온라인과 줌으로 만났지만 그 거리감이 회차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신간 출간 소식을 알리며 강이랑 작가님의 정성스러운 책 선물을 해주셨을 때, 참 감격스러웠다. 선생님께서 직접 사인한 책을 선물로 주실 거라는 기대를 하지 못해서 더욱 기뻤다. 개인적으로 사드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창작자에게는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수정과정이 필요했을지. 나는 잠시 그 노고를 그리며 받은 책을 안아보았다.
급하게 읽지 않고 천천히 음미하며, 한 장씩 한 장씩 읽어 내려갔다. 분명 쓰신 분의 성격이라면 그렇게 쓰셨을 것 같아서... 그림책을 읽으며 나누었던 선생님 마음의 흔적도 느낄 수 있었다. 어른이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책과 이야기를 통해 만나면... 그 자체로 순수해질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해진다.
나는 언제나 그래서... 책과 이야기를 통해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내 안에 기록해두고 싶은 강이랑 작가의 문장을 적어둔다.
p.45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이 시작됐다. 미래를 상상하고, 동화와 그림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매진했으나 앞길은 여전히 막막했다. 남들에 비해 잘하는 일도 없는 것 같고, 안갯속에 갇힌 듯 마음이 흐려지고 불안감에 짓눌렸다.
p.51 처음 그림책 강좌를 기획할 때만 해도 이런 모임이 생기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아는 것에 만족한 채 현실에 안주하고 어떤 시작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울림을 주고받는 지금의 동료들을 만나지 못했으리라.
p.63
이 더미북 두 권은 나에게 골인 찬스를 줄 공이다. 무척 크고 탱글탱글하다. 혼자 힘으로 만들어 낸 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좋다. 협업으로 얻어 낸 이 공이 자랑스럽다. 이제 골대를 조준하고 던진다. 단번에 튕겨져 나오지만 괜찮다. 공은 끄떡없으니까. 천 번 만 번 던져도 바람은 빠지지 않는다. 나는 다시 한번 내 손으로 쥔 공을 본다. 멋지다. 이 공이 들어갈 곳은 오직 골대다.
p.74
어른으로 산다는 게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하지 못한다. 다만 나는 아이의 좋은 특성과 어른의 좋은 특성을 알 뿐이다. 그것을 내 것으로 가져와 때로는 아이처럼 유연하고 탄력 있게, 때로는 어른처럼 단단하게 사람들과 대면하려 한다. 무엇보다 잘못된 행동을 하는 이에게 "안 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두루뭉술하고 선한 열 마디 말보다 "그러면 안 된다."라는 한마디가 더 어렵고 힘들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른으로 사는 것을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어른처럼 산다는 것이 아이처럼 산다는 말의 반대말은 아니다. 그러니 평소에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지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내 안의 아이를, 때로는 어른을 꺼내고 싶다.
p.131
며칠 뒤 다시 들판을 찾았을 땐, 베어진 풀 사이로 새 풀이 자라고 있었다. 실망하고 의기소침했던 건 나뿐. 그 사이 풀들은 생명력을 뽐내며 묵묵히 그 자리에 다시 자라고 있었다. 뽑아도 다시 나고, 베어도 다시 자란다. 삶에 죽음이 있는 것처럼, 죽음에서도 삶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p.161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해 본 사람은 안다. 일어서서 나아가고자 한다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