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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새해 Aug 28. 2020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운전을 생각하면 무섭다. 너무 무섭다.  초보시절에 있었던  인사사고  때문이다.  경미한 사고였고 잘 수습되었지만  심리적 충격은 매우 크고 집요했다.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마땅히 가져야 할 경각심을 넘어 공포로 다가왔고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극도의 긴장감을 견디지 못해 일찌감치 운전을 포기했지만  미련 남아있다. 특히 요즈음 코로나19로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해지면서 운전을 다시 시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제 아침에도 오늘 아침에도 갈등을 했다.


늦잠을 자거나 짐이 있을 때는 택시를 타고 야근을 할땐 후배 신세를 지고 웬만하면 걷거나 버스를 이용한다.  운전을 못한다는 건 아주 가끔  대단히 불편할 뿐다. 버스에서 브런치를 읽거나 책을 읽기도 하고 퇴근길엔 일부러  몇 정거장씩  일찍 내려 운동 삼아 걷기도 한다. 저녁 어스름 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온종일  내게 묶여 있던 생각이 문득 비워지고 길가의 가로수, 길가의 장미가 처음처럼 다가오기도 하 시끌시끌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얻어듣기도 한다. 저 느티나무는 몇 살이나 되었을까? 저 분홍색 담장은 누가 칠했을까? 저 훵한 카페는 전기세나 나올까?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전기세를 걱정하고  낡은 미용실 앞을 지나며  가물가물 시 한편 떠올리기도 다.


늦은 귀가에 골목길을 오르다 보면

입구의 파리바게트 다음으로 조이 미용실 불빛이

훤하다 주인 홀로 바닥을

쓸거나 손님용 의자에 앉아 졸고 있어서

셔터로 가둬야 할 하루를 서성거리게 만드는

저 미용실은 어떤 손님이 예약했기에

짙은 분 냄새 같은 형광불빛을 밤늦도록

매달아 놓는가  - 김명인/ 조이 미용실(부분) -


    

ⓒ새해


쌩쌩 전력질주하는 것 사이를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운전이 한 번씩  커다란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건  내가 운전을 결핍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 안 되는 것.


결핍으로 느끼지 않으면 결핍은 결핍이 아니다. 어떤 지인은 앞으로 쭉 가면 그만인 운전을 왜 어려워하냐고 나를 답답해한다. 누군가에 밥처럼 간단한  일이 나에겐 물고기가 날개를 다는 일처럼 어렵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일이든 관계든 두려움이든  내 능력 밖의 것들이 아주 많다는 걸 하루하루 깨닫는  일이다. 그 생각이 어떤 날은  답답하고 어떤 날은 간편하고 또 어떤 날은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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