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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새해 Apr 27. 2020

오기가미 나오코

고양이를 빌려 드립니다   




어려서부터 졸졸 따라오는 남자는 없어도 졸졸 따라오는 고양이는 많았다는 주인공 사요코는 할머니와 살던 집에서  지금은  고양이와 가족처럼 살고 있다.  주인공은  작은 리어카에 고양이를 싣고  '렌~~ 타 네코'를 외치며 다닌다. 외로운 사람들에게 고양이를 빌려 준단다. 아무에게나  빌려주는 건 아니고 고양이를 잘 보살필 수 있는지 심사를 한다. 고양이를 빌리고 싶어 하는 사람의 집을 방문해서 그들의 사연을 듣는다. 씩씩하지만 어찌 보면 그들보다 더 외로워 보이기도 하는 사요코가  고양이가 아닌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방식이기도 하다.  고양이를 빌리려는 외로운 세 사람의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등장한다.



십몇 년 전 ,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안경'이라는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대체 이게 무슨 영화야? 하면서 신기하게  봤던 기억이 있다. 한적한 바다 마을 민박집에 안경 낀 사람들이 모여있다. 바다를 보며 맥주를 마시거나 빙수를 먹으며 한가하게  앉아 다. 그들은  사색을 특기나 재능이라 부른다.  가족도 관계도 불분명한 사람들이 매일 아침  함께 메르시 체조를 하고 함께 밥을 먹고 툭, 툭, 선문답 같은 대화를 나눈다. 그게 전부인 영화. 그날부터   오기가미 나오코는 나의 관심 감독이  되었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앞에는 슬로 라이프라던가 힐링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개인적으로 힐링이라는 단어의 흔한 사용을  좋아하지 않지만 바쁘고 지친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잠시 현실을 벗어나는 판타지를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라 짐작한다. 그의 판타지는 공상 과학이 아니라 공상 현실이다.  


그의 공상 현실엔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일상의 근심이나 고통, 관계의 갈등이 없다. 먹고사니즘의 피로가 없다. 영화 속 인물들은 장사보다 추억과 인연이 중요한 사람이고 (카모메 식당/2006),  손님이 많이 올까 봐 민박집 간판을 작게 다는 사람이고(안경/2007), 생활보다 사람들의 외로움을 더 신경 쓰는 사람이다(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2012). 영화 속 주인공들은 천천히, 욕심 없이, 남들과는 다른 자기 방식의 삶을 살면서 고립되지 않고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직업은 있되 고달픔과 야망은 없고 인간관계는 있되 집착도 오해도 상처도 없다. 기승전결도 없고 위기 결말 도 없다.

                                             



그의 영화가 흥미로운 건 그 모든 드라마틱 요소를 빼고도  할 얘기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얘기를 2시간 동안 뚝심 있게  끌어간다. 엉뚱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황당하지만 저렇게 살면 왜 안돼? 부자유를 건들기도 한다. 감독은 영화 안팎에서 '하고 싶지 않은 걸 하지 않을 자유'에 관해  자주 이야기한다. 삶의 고통이나 비루함은 어쩌면  너무 연해서 영화에서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요즈음은 힐링 무비가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감독은  조금 색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었을 뿐 힐링 무비를 의도한 적이 없고 오히려 그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만든 영화가  최근작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2017)인데  이번에도 사람들은 위안받았다고 한다고.


인터뷰를 보며 웃었다. 원래 상처나 위로는 누가 작정하고 주는 게 아니라 사람들 마음대로 받는 거니까. 의도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는 건 그가 좋은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얘길 것이다.   


어제 '고양이를 빌려 줍니다'를 보며 처음 '안경'을 보았을 때가 생각났다. 뭐야? 이걸로 영화가 돼? 물론 영화가 됐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있지도 않은  고양이를 무릎 위에 두고 볕 좋은 툇마루에 앉아 멍 때리는 기분이었다. 왜, 이런 영화를 만들지? 어떻게 만들지? 그 낯섦이 좋다. .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외로운 사람이 많다. 구원받지 못한 슬픔이 많다. 그래서 오늘도 외로운 사람에게 고양이를 빌려준다. 마음속 구멍을 채우기 위해  
-고양이를 빌려 드립니다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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