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뿌리, 다른 언어의 풍경
한국과 북한, 대만과 중국. 이 네 사회는 오랜 시간 언어와 문화를 공유해 왔다. 모두 한자문화권이라는 공통의 뿌리 속에서 성장했고, 언어의 구조나 어휘에서도 적지 않은 유사성을 지닌다. 그럼에도 외래어를 대하는 방식만큼은 극명하게 갈린다. 어떤 사회는 외래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어떤 사회는 이를 철저히 걸러내거나 바꾸어 쓴다. 이 차이는 단순한 말의 선택이 아니라, 그 사회가 외부 세계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외래어는 단지 외부에서 들어온 말이 아니라, 언어를 통제하거나 열어두는 방식이며, 세계와 관계를 맺는 태도를 드러내는 문화적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외래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각 사회가 어떤 세계관을 갖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외래어라는 작은 언어 요소를 통해,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네 사회가 왜 이렇게 다른 길을 걷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한국과 대만은 외래어를 수용하는 데 있어 유연하고 개방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메일(E-mail)", "앱(App)", "유튜브(YouTube)", "넷플릭스(Netflix)" 같은 단어들은 원어 형태에 가까운 모습으로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았으며, 특히 기술, 유행, 글로벌 브랜드와 관련된 외래어는 빠르게 정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수용 방식은 두 사회가 실용성과 개방성을 중시하는 언어문화를 갖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길고 낯선 순화어보다 간결하고 익숙한 외래어를 선호하며, 새로운 개념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외래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두 사회에서 새로움과 개방성을 상징하는 언어적 표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두 나라의 정치적 환경도 이러한 언어 태도에 영향을 준다.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언어 사용은 국가의 통제보다는 개인의 선택에 가깝고, 외래어 역시 규제보다는 활용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공공기관에서 순화를 시도하기도 하지만, 실제 언어의 흐름은 대중의 생활과 감각에 따라 움직인다. 언어는 국가가 관리하는 규범이기보다는,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문화에 더 가깝다.
북한과 중국은 외래어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제한적이고 통제적인 태도를 보인다. 두 사회 모두 외래어를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체제의 안정과 이념적 정체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로 간주한다. 따라서 외래어는 그대로 수용되기보다 자국어 체계에 맞춰 순화하거나 변형되어 사용된다. 예를 들어, "컴퓨터"는 북한에서 "전자계산기"로, "코카콜라"는 중국에서 "可口可樂(입에 맞고 즐겁다)"처럼 의역 또는 음차 된 한자어로 대체된다.
이러한 언어 정책은 각 체제가 지향하는 이념과 질서를 반영한다. 북한에서는 외래어가 사대주의의 잔재로 간주되며, 주체사상에 기반한 '순수한 우리말' 사용이 강조된다. 외래어 사용은 단순한 언어 문제가 아니라 사상과 태도의 문제로 연결되며, 국가 차원의 철저한 순화 작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중국 또한 외래어를 엄격하게 관리한다. 지역과 계층 간 언어 차이를 조정하고 통일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외래어는 한자 체계 안에서 음차 되거나 의역된 형태로 수용된다. 무분별한 외래어 사용은 언론이나 정책 차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며, 언어는 체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북한과 중국에서 외래어는 자율적인 언어 변화의 결과라기보다, 국가가 설정한 기준에 따라 선별되고 조정되는 대상이다. 표현에 대한 결정 권한은 개인이 아니라 체제에 있으며, 언어는 통제 가능한 질서로서 사회를 조직하는 데 활용된다.
외래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단순한 언어 선택이 아니라, 사회가 외부 세계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내부 질서를 어떻게 유지하려 하는지를 보여준다. 한국과 대만은 외래어를 열린 태도로 수용하며, 실용성과 개방성을 중시하는 언어문화를 형성해 왔다. 표현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창조와 선택의 영역에 가까우며, 외래어는 사회 변화에 발맞춰 언어를 확장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반면 북한과 중국은 외래어를 일정한 기준 아래 관리하고 통제한다. 외래어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국가가 허용한 틀 안에서 순화되거나 변형된다. 언어는 체제의 질서를 유지하고 이념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언어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며, 외래어는 그 사회가 세계를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어디에서 선을 긋는지를 가장 민감하게 드러내는 지점이다. 말의 경계는 곧 체제의 경계다. 같은 외래어 앞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 네 사회는, 각자 어떤 세계를 향해 문을 열고, 또 어디에 벽을 세울지를 스스로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