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숨긴 사람들, 왕씨 후손의 이야기
한반도의 성씨는 단순한 호칭을 넘어, 정체성과 뿌리를 담은 상징이다. 그 가운데 '왕씨(王氏)'는 유독 무거운 의미를 지닌다.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은 오늘날 개성 왕씨의 시조로, 고려 왕실은 약 500년 동안 한 왕조의 중심을 이루었다. 왕씨는 군주의 이름이자, 한 시대의 정통성을 대변하는 성씨였다.
하지만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며 고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왕씨라는 이름도 함께 퇴장해야 했다. 새 왕조는 고려의 흔적을 지우며 정통성을 세우려 했고, 왕씨라는 성은 더 이상 자랑이 아닌 정치적 부담이 되었다. 고려 왕실의 이름은 권위에서 추방의 상징으로 바뀌었고, 후손들은 생존을 위해 그 이름을 감추어야 했다.
왕씨의 후손들은 조선 왕조의 등장과 함께 생존의 기로에 놓였다. 새로운 지배층에게 왕씨는 단순한 구 왕조의 잔재가 아니라, 반역의 명분이 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이었다. 고려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조선의 눈에는 의심과 감시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조선 초기, 고려 왕실과 가까운 왕씨 인물들 중 일부는 유배되거나 처형당했다. 직접적인 정치적 연관이 없었던 이들조차도 관직에 나설 수 없거나, 지속적인 감시 속에서 살아야 했다. 이름 하나만으로 정치적 부담을 감당해야 했던 시대 속, 왕씨 후손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법을 배워야 했다.
정통성을 새롭게 세우려는 조선은 백성들에게 "우리가 진짜 왕조다"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켜야 했고, 그 과정에서 왕씨의 존재는 불편한 그림자였다.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침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름을 지운다는 것은 곧 뿌리를 숨기는 일이다. 일부 왕씨 후손들은 아예 성씨를 바꾸는 길을 선택했다. 김씨, 박씨, 이씨, 안씨, 최씨 등 조선 사회에서 널리 쓰이던 성씨로 갈아탔다는 전승이 전해진다. 그렇게 하면 정치적 의심을 피하고, 사회 속에 조용히 섞여 살아갈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생존 전략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 정체성과의 단절을 감수한 결단이었다. 이름만 바꿨을 뿐이지만, 그 안에는 삶 전체를 다시 세워야 했던 두려움과 슬픔이 담겨 있다. 일부는 족보를 새로 만들거나 본래 가문과의 연을 의도적으로 감추기도 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는 왕씨 후손이 지방으로 흩어져 신분을 바꾸고 은둔 속에 삶을 이어갔다는 전승도 있다. 조선의 질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려의 이름은 그렇게 지워졌다.
성씨를 완전히 바꾸는 대신, 글자 하나에 변형을 가하는 방식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옥(玉)' 자다. 왕(王) 자에 점 하나를 더하면 완성되는 옥(玉) 자는 겉보기엔 전혀 다른 성씨처럼 보이지만, 자형 속에는 왕씨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부 옥씨 가문은 자신들이 왕씨의 후손이라 전하며, 성을 바꾼 연유를 족보나 구전으로 전하고 있다. 이는 외형은 감췄지만 정체성을 완전히 끊지 않으려는, 기억을 지우지 않기 위한 조용한 시도였다. 글자 하나를 바꾸는 일은 단순한 위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역사의 파도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동시에, 과거를 완전히 버리지 않으려는 절묘한 타협이었다.
오늘날 '왕씨'는 한국에서 흔하지 않은 성씨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박씨, 김씨, 이씨, 안씨, 옥씨, 최씨 속 어딘가에는 고려 왕조의 피를 이은 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그 혈맥은 여전히 이 땅을 흐르고 있다.
성씨는 단지 부르는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이며, 기억이며, 망각되지 않으려는 흔적이다. 그리고 어떤 이름은, 비록 숨겨졌을지라도 언젠가 다시 돌아와 자신을 말하게 된다. 권력을 잃은 이름, 역사에서 지워질 뻔했으나 끝내 기억 속에 살아남은 이름. 왕씨는 바로 그런 이름이었다.
이러한 전승들은 모두 역사적 사실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족보, 구전, 지역 전통을 통해 전해지며, 학계에서도 그 진위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하지만 문서로 남은 것만이 역사는 아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이야기 또한 하나의 역사로 기능할 수 있다. 고려 왕실의 왕씨가 어떤 방식으로든 조선이라는 시대를 통과해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전승들은 의미가 있다. 누군가가 기억했기 때문에, 그 이름은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