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좋은 대학은 서울에만 있을까?

수도권에 몰린 교육, 지방의 침묵

by 온기록 Warmnote

서울은 거대한 자석 같다. 상위권 대학, 청년 인재, 교육 자원 모두를 빨아들이며 다른 지역을 비워간다. 입시를 준비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수도권에 몰리고, 이른 나이에 서울로 떠난 청년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서울에 있는 대학은 곧 '좋은 대학'이라는 인식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고, 지방 대학은 점점 더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풍경은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다른 선진국들에서는 상위권 대학이 한 도시에 몰려 있지 않다. 미국은 하버드, 스탠퍼드, 시카고대학교 등 주요 대학이 동부와 서부, 중서부 등 전국에 분산되어 있고, 영국 역시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가 런던 밖에 자리하고 있다. 일본은 도쿄 외에도 교토대, 오사카대, 규슈대 등 지역 거점 대학들이 뚜렷한 위상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대학 간 서열이 뚜렷하지 않고, 학생들은 '유명한 대학'보다는 '집에서 가까운 대학'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독일 전역에 국립대학이 고르게 분포해 있고, 어디서 공부하든 교육의 질과 사회적 대우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대학의 이름보다 전공과 진로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수도 한 곳에 모든 것이 몰리지 않는다. 교육이 경쟁의 출발선이 아니라, 각자의 삶이 시작되는 자리라는 인식이 이미 정착되어 있는 것이다.


서울이 교육의 중심이 된 시간들


그렇다면 왜 한국은 이토록 수도에 대학이 몰리는 구조가 되었을까? 이는 단순한 교육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성장과 수도 집중이 맞물린 한국 특유의 발전 방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


1960~70년대 고도성장기 시절,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서울은 정치와 경제, 행정의 중심지로 빠르게 성장했다. 기업과 인구가 몰리고 교통, 정보, 자본까지 집중되면서 교육 자원 또한 자연스럽게 서울로 향했다. 이 시기, 서울대학교는 '국가 대표 대학'이라는 상징성을 얻게 되었고, 연세대학교나 고려대학교 같은 사립 명문 대학들도 모두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은 대학'으로 여겨지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고, 그 위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단순한 교육 기관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를 결정짓는 중요한 통로로 기능해 왔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가 곧 이력서에서의 경쟁력으로 작용했고, 그 중심에는 늘 서울의 상위권 대학들이 있었다. 입시와 취업, 그리고 서울에 대한 집중이 서로 연결되면서, 학생과 학부모는 더더욱 서울로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지역에도 국립대학들이 존재했지만, '서울보다 못하다'는 인식은 좀처럼 깨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수도권 대학 중심의 구조는 단단히 고착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좋은 대학 = 서울'이라는 공식이 한국 교육의 기본값처럼 작동하고 있다.


지역 대학, 끝없는 내리막길


수도권에 대학이 몰린 구조는 결국 지역 사회 전반의 쇠퇴로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이 '좋은 대학'을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면서, 지방 대학은 학생을 확보하지 못해 정원 미달 사태를 반복하고 있다. 이는 지역 인재의 유출로 이어지고, 결국 지역 인구 감소와 지역 경제 침체로까지 연결된다. 지방대학의 위기는 단순한 교육 문제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존립과 직결된 사안으로 번지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을 막기 위해 정부도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 지역인재전형 확대, 지방대학육성정책, 혁신도시와의 연계 등 여러 노력이 있었지만, 학생들의 선택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인서울 대학의 '브랜드 가치'는 여전히 압도적이고, 여전히 수도권 대학 출신이 기업 채용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방대학이 아무리 교육의 질을 높여도, 졸업 이후의 기회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다면, 학생들이 수도권을 선호하는 흐름을 바꾸기는 어렵다.


정책은 있었지만, 그 정책이 작동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과 문화가 부족했던 셈이다. 결국 수도권 중심의 대학 구조는 여전히 강화되고 있고, 지방 대학은 생존을 걱정해야 할 만큼 위기에 몰려 있다.


좋은 대학은 꼭 서울에 있어야 할까?


우리는 오랫동안 좋은 대학은 서울에 있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결국, 대학을 따라 사람도, 기회도 서울로만 몰리게 만들었다. 그 결과 지역은 점점 더 비워지고 있다.


대학은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다. 청년들이 머물고, 일자리를 찾고, 지역에서 삶을 꾸릴 수 있게 해주는 출발점이다. 교육의 질뿐 아니라, 대학이 어디에 있느냐도 지역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서울에만 대학이 집중되는 지금의 구조는 단기적으로는 편리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큰 균형의 붕괴를 불러올 수 있다. 대학이 사라지는 지역은 사람도, 활기도 함께 잃는다. 반대로 지역에 튼튼한 대학이 자리하면, 청년은 머무르고 지역은 살아난다.


좋은 대학은 정말 수도에만 있어야 할까? 이 질문을 외면하는 한, 서울의 번쩍이는 불빛 아래에서, 우리는 점점 더 짙어지는 지역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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