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오랫동안 해왔던 습관을 바꾸곤 한다. 그 종종이 언제냐면 내가 남의 습관으로 인해 불쾌감을 느꼈을 때다. 그리고 그 습관은 대부분 사소한 말 표현이다. 그러니까 내가 남에게 들은 말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면 반대로 내가 그 말을 했을 때 누군가도 기분이 상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말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는 것이다.
친구가 물건을 하나 샀다고 말한다. 그 물건은 나의 관심사에 있는 그래서 내가 꽤 잘 알고 있는 분야의 물건이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그 물건보다 여러모로 더 좋은 물건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친구에게 말하지 않고 일단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한다. 그 물건을 완전히 산 건지. 취소나 환불은 불가능한지. 그 사실에 따라 나의 답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만약 아직 고민 중이거나 구매가 뒤집어질 가능성이 있다면 내가 알고 있는 물건에 대한 평가를 부드럽게 전달해서 더 나은 구매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이미 구매가 완료되었다면 두말할 것 없이 전적으로 그 구매에 긍정을 보낸다. "와 좋다. 잘 샀네!"
이미 끝나버린 일. 도저히 바뀔 가능성이 없는 일에 굳이 찜찜한 기분을 남길만한 말을 덧붙이지 않기 위해서다.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보다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더 멋진 일이니까.
추석이 다가왔다. 명절이 늘 그러하듯 화목한 가정과 오가는 정을 이야기하며 웃음꽃이 집집마다 피어날 예정이지만 동시에 이런저런 갈등들도 알게 모르게 이 집 저 집을 누비고 다닐 예정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명절의 대표적인 갈등 하면 역시 잔소리를 빼놓을 수 없다.
"너 살쪘구나?" "결혼 언제 할 거야?" "아직 소식 없니? 얼른 아기 가져야지." "둘째 아기는 아직 소식 없고?"
"요즘은 공부 잘하니? 몇 등이나 해?" "취직은 아직이야? 아이고 참 큰일이다."
자 대표적인 잔소리들을 나열해봤다. 이 잔소리들 중에 현실을 바꿀만한 능력을 가진 말이 당신의 눈에 보이는가? 살찐 사람에게, 결혼 못 한 사람에게, 임신이 어려운 사람에게, 공부 못하는 사람에게, 취직 못 해서 힘든 사람에게 저 말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마음에 생채기만 남길뿐이다. 저 잔소리를 듣고 열정이 불타올라 살을 빼고 결혼을 하고 전교 1등을 하고 취업에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된다. 저 잔소리들의 유일한 효용은 저 소리를 하는 사람의 즐거움뿐이다. 진심 어린 조언과 위로와 응원을 했다는 뿌듯함. 나보다 부족한 존재를 향해 애정을 가장한 우월함의 표현. 이런 감정이 때로는 개인적인 즐거움이 될 수 있지만 절대로 누군가의 상처를 동반해서는 안 된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한테 그 정도 소리도 못 하나?" "다 애정이 있어서 하는 소리고 그게 가족 간의 정情이지."
가족 간의 정은 예나 지금이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가치다. 다만 좋은 형태로 선을 적절히 지켰을 때 그렇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존중받아야 할 프라이버시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프라이버시는 남녀노소를 초월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기본적인 권리다. 프라이버시 영역은 아예 언급하지 않는 것이 배려이고 아예 관심을 끊는 것은 더 높은 수준의 배려다. 그리고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것은 갈등을 방지하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근황을 묻지 않는 것을 차갑디 차가운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히려 타인의 민감한 부분을 애써 모른척해주거나 관심을 끊는 것은 그 무엇보다 따뜻한 인간적인 배려와 존중이다.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주는 사람은 멋지다 못해 고맙기까지 하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이 이루지 못한,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언급은 넣어두자. 본인도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다. 굳이 남의 입을 통해서 자신의 부족함을 재확인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것도 다른 친척들 앞에서.
대신 그가 이룬 것, 가진 것에 대한 칭찬을 해보자. 자세히 살펴보면 사소한 몇 가지라도 분명 있을 거다. 정말 만에 하나 아무것도 칭찬할 것이 없다면 그냥 날씨 이야기를 하자. 음식 이야기를 하고 취미를 묻자. 과거의 행복했던 추억들을 얘기하자. 아무도 상처 받지 않을 그런 이야기를 나누자.
명절 동안 잠시 만나고 헤어질 친척들을 위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선 넘는 잔소리 대신 들으면 기분 좋을 칭찬과 덕담을 선물로 챙겨가자.
매너강사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