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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화 Feb 11. 2019

겨울 독서의 맛.

 겨울이 좋은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는 거실에 들어오는 햇빛의 양이다.
 아무 말 없이 남의 집 거실 깊은 곳 까지 들어오는 겨울의 햇빛과 햇볕은 무례하기보다는 친근하고 다정하다.
 햇빛 덕분에 전등을 켜지 않아도 되고 햇볕 덕분에 보일러를 돌리지 않아도 되니 그 또한 고마운 역할이다.

 그녀의 책을 처음 읽은 건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은 "박하"였다.
그리고 여러해가 지나 우연히 눈에 띄어 읽은 이 책은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친구라고 하기엔 그녀와 나의 나이차가 많긴 하지만..
아담하게 앉아서 조곤조곤 말을 건네는 지긋한 그녀의 모습과 잘 어울리는 글들,
가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그녀의 독일 동네에 대한 이야기들은 흥미롭다.
책을 구입하면 그 즉시 겉을 감싸고 있는 종이들을 바로 벗겨내어 버려버리는 습관이지만 이 책의 겉 종이는 그녀의 동네를 한눈에 보여주는 정겨운 지도이기도 함으로 분리수거함 대신 책장에 고이 모신다.

 햇빛이 길게 드리워진
한겨울 일요일 오후의 거실 소파에 누워 책을 읽다가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졌고
그 곳은 그녀가 살고있는 작은 마을 뮌스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허수경 작가의 별세 소식.

그녀가 떠났다.
작은 그녀의 몸은 그녀가 살던 독일 뮌스터의 어느 나무 아래로 돌아갔다 한다.
 글을 쓰는 작가의 죽음은 한 인간의 소멸을 넘어 그 죽음이 없었다면 세상에 존재했을 문학적 즐거움들이 영원히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이 세상 모든 죽음은 슬프지 않은 것이 없지만 이런 의미에서 내게는 그녀의 죽음이 조금 더 슬프고 아프다.

 그녀가 가는 길에 먼곳에서나마 작은 명복하나 살포시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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