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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롭게 May 27. 2021

당신은 그저 느꼈을 뿐인데,

나와 감정의 '분리'


"한의원에 갔더니 화병이라더라?"

"........."




갓 엄마가 된 나를 돌봐주러 오신 엄마의 말이었다. 즉각적으로 눈물이 핑 돌았다. 침 맞고 한동안 약을 복용했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시는 엄마를 한동안 대수롭게 쳐다봤다. 그게 침으로 낫는 병이야? 아빠는 뭐래? 지금은 괜찮아? 약은 또 뭐고? 온갖 질문들로 가득 찬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나를 보시더니 엄마는 슬몃 웃으셨다. 괜찮다고, 다 지난 일이라고 하셨다.








나는 또 한 명의 '82년생 김지영'이다. 나의 엄마는 나의 아빠가 첫 남자였다. 외할머니는 7남매 중 막내로 곱게 자란 엄마를 종갓집 장손인 아빠에게 시집보내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그런 엄마를 뒤로 한 채 나의 엄마는 아빠와 야간 도주를 했고 언니를 임신했다. 불 같았던 두 사람의 사랑이 가져온 현실은 혹독했다. 나의 엄마는 시할머님까지 모시며 한 달에 한 번 이상 제사를 지냈고 숨 막히는 신혼생활을 보냈다.


엄마에게 부정적인 감정의 표현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뭐든지 당신이 참고 견디며 삼켰다. 부정적인 감정은 불화의 씨앗이므로 마음속에 키우면 안 된다고 여겼다. 당신만 가만히 있으면 잘 넘어갈 거라고 스스로의 감정을 외면했다. 그렇게 30년도 훨씬 지난 지금, 나의 엄마는 곪아 문드러진 본인의 마음을 마주했다. 썩을 대로 썩어 무뎌져 버린 감정, 그 마음 앞에서 나의 엄마는 또다시 괜찮다며 웃는다.








부모님은 우리 삼 남매 앞에서 싸우신 적이 없다. 주로 싸우신 후 두 분 사이에 흐르는 냉기를 감지하는 게 전부였다. 두 분의 싸움은 어디서 시작된 건지, 갈등을 어떻게 다루는지, 어떤 방식으로 협의점에 다다르는지 보고 자란 게 없었다. 단지 아빠가 엄마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표정이 풀릴 때까지 성가시게 하거나, 엄마가 아빠 주변을 맴돌며 아빠가 말할 때까지 애교 부렸던 기억은 있다. 


두 분 중 한 분이 날 앉혀놓고 가르치신 적은 없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품어선 안 되는 걸로 학습해버렸다. 긍정적인 감정을 품는 나는 좋은 거고, 부정적인 감정을 품는 나는 나쁜 거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내 감정을 대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긍정적인 감정을 나 자신과 일치시키려 했고, 부정적인 감정을 품으면 크나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양 나 자신과 분리시키지 못했다. 








모든 감정은 옳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건 잘못된 게 아니다. 마음에 품고 있어도 괜찮다. 한 시간을 품고 있든 그 이상이 되었든 내 마음이다. 내 마음이 보여주는 다채로운 감정의 색깔을 선택적으로 취하지 말자. 감정과 나 자신을 분리해야 한다. 나는 나고 감정은 감정이다. 괜찮은 게 아니었던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의 모든 감정은 옳은 것이었다고, 어떻게 보듬어줘야 하는지 몰랐던 것뿐이라고 말이다.






나는 나, 감정은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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