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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롭게 Jun 03. 2021

출산 후 맨발로 쫓겨났던 그날 ①

내 마음을 지져버린 인두가 되어


자의의 맨발과 타의의 맨발




기억의 조각들을 더듬어보았다. 해변가를 거닐거나 계곡가에 발을 담그는 등, 내 '자의'로 맨발이 되었던 적은 있다. 그것은 당시 내가 머물렀던 각 장소에 낭만적인 기억을 더해주는 소소한 행위였다. 하지만 '타의'에 의해 강제로,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 여겼던 내 집에서, 몸과 마음이 가장 쇠약해져 있던 시기에, 맨발인 채로 쫓겨났던 날이 있다. 처음엔 살의를, 그다음엔 자살 충동을 느꼈던 그날은, 평생의 상처로 남게 되었다.




쾅!!!!!!



감정이 고갈되어 파충류가 되어 버린 한 여자와 이성의 끈을 놓은 지 오래된 한 남자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몸싸움을 벌였다. 온갖 욕지거리와 고성이 오가는 중간중간,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딸아이의 울음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현관 밖으로 밀려난 여자가 뒤돈 그 순간, 남자는 재빨리 문을 닫았고 여자는 얼마 남지 않은 문 틈 사이로 왼손 손가락을 넣었다. 


찌잉 - 누군가 내 손을 조몰락거리며 전기 놀이를 하는 것처럼, 손가락 끝에서 시작된 찌릿하던 느낌은 순식간에 끔찍한 고통을 몰고 왔다. 몸뚱이의 왼쪽 절반을 누군가 쥐어짜는 듯한 극렬한 아릿함에 나는 잠시 얼어붙고 말았다. 뭔가 비명이라도 지를 타이밍이었던 것 같은데 조용해진 나를 보고 남편은 주춤했다. 그러나 이내 현관문 안 쪽의 안전장치인 걸쇠를 걸어 잠갔다.








순간, 노랫소리가 들렸다




영화와 한국어판 뮤지컬, 원어 뮤지컬까지 다 챙겨봤던 '시카고' - 애인이나 남편을 죽이고 수감된 여섯 살인범의 공연 '셀 블락 탱고(Cell Block Tango)'의 노랫구절이 들렸던 것이다. 그녀들이 한 때 사랑했던 이들을 죽였던 이유는 남들이 보기에 사소해 보이거나, 혹은 사람에 따라 공감(?)할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내가 그 장면을 떠올렸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파충류 자아를 가장한 자기 합리화였을 수도.   




He had it coming

he had it coming

He only had himself to blame!

If you'd have been there 

if you don't have seen it

I betcha you would have done the same



그놈 잘못이야

그놈이 자초한 거야

전부 걔탓이라니까!

너도 거기 있었다면 

너도 그걸 봤다면

너도 분명 나처럼 똑같이 했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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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1VVB_9nCmg

ⓒ Youtube (Chicago, 'Cell Block Ta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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