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테스 외 著, 서미석譯, 유유刊
들어가는 말: 2500년 전 철학이 지금 다시 소환되는 까닭은
이상주의, 금욕주의, 계몽주의 등 철학 분파를 일컫는 고상한 명칭가운데 불경스럽게도 ‘개 같다’라는 뜻의 犬儒(견유)주의가 있다. ‘냉소적이다’ 의미의 ‘시니컬하다’라는 말의 어원을 따라가면 만나게 되는 키니코스학파다. 키니코스는 고대 그리스어 ‘개’에서 파생된 ‘개 같다’에서 유래된 용어로 ‘견유학파’란 문자 그대로 ‘개처럼 사는 철학자’라는 뜻이다. 명칭만으로도 이들이 얼마나 반문명적으로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과 종교, 문화, 예절 등 인간 사회 관습을 부정해, 일 년 내내 빨지 않은 옷을 걸치고 먹을 것을 구걸하며 아무 곳에서 잠을 청하는 등 노숙자처럼 살았다.
견유학파를 대표하는 철학자는 평생을 항아리 속에서 살았다는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드로스대왕과의 일화로 유명하다. 대왕과의 극적인 만남은 가벼운 해프닝정도로 회자될 뿐 숨어있는 신묘한 뜻은 간과된다.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드로스를 조롱했을 뿐 아니라 거대한 문명 전체를 거부한 것이다. 부귀와 권력이라는 인간의 유한한 가치보다는 햇빛 같은 자연의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겠다는 뜻이 숨어 있다.
견유학파는 기원전 5세기 소크라테스 제자 안키스테네스에 이해 시작되었다. 안키스테네스는 플라톤, 크세노폰에 견줄 중요한 철학자로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윤리철학을 받아들이면서도 물질주의적 경향을 비판한 그는 인간의 행복은 외부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덕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안키스테네스는 행정권, 사유재산, 결혼 등 모든 제약을 거부하고 인위적인 쾌락추구를 경멸했다. 안키스테네스 제자인 디오게네스는 가장 널리 알려진 견유학파 철학자로 과도한 욕구와 물질적 소유를 버리고 사회 부조리와 권위에 맞서는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견유주의는 인간 본성이 본래 선하다고 믿으며 인간이 사회의 부패와 타락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질적 풍요보다 정신적 풍요를 추구했고 자연스러운 삶의 가치를 강조했다. 또한 관습과 권위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며 사회 부조리와 권위에 맞서는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사회의 계급, 부, 명예를 무의미하게 여기며 진정한 가치는 내면적인 덕에 있다고 주장했다.
세계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인간 본성에 따라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으므로 국가나 민족에 국한하지 많고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여겼다. 모든 사람이 자연법칙에 따라 살아야 하며 동물까지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견유주의의 극단적 금욕주의는 현실에서 실천하기 어렵다는 지적과 함께 사회 참여를 소홀히 여기며 개인의 고립을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특히 낭만주의와 르네상스시대에는 자연과 자유를 추구하는 견유주의 사상이 많은 예술작품과 문학작품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필요와 욕망을 구분함으로써 최대한 간소하게 생활하고 소박하고 절제된 식습관을 강조하며 국가의 이념과 사회관습을 거부하고 자연에 따라 살 것을 주장한 이들의 삶의 방식은 미니멀리즘, 지속가능한 생태적 삶, 물질주의 지양, 세계민주주의 등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여러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1. 개 같은 인생
디오게네스는 화폐변조 행위로 시노페에서 추방되었다. 아테네에 도착한 그는 안티스테네스를 찾아가 제자가 되기를 청했다. 몇 번의 거절 끝에 결국 제자가 된 디오게네스는 추방자 신분으로 검소한 삶을 살게 되었다. 어느 날 디오게네스는 쥐가 잠자리 걱정을 하지도, 어둠을 두려워하지도, 쾌락에 목매지도 않은 채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는데 필요한 임기응변의 재능을 깨우쳤다.
삶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장인이 반복적인 손동작을 통해 기술을 익히고, 악기연주자나 운동선수도 끊임없는 훈련으로 기량을 갈고닦는다. 신체훈련과 더불어 정신훈련도 병행한다면 노력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 주장했다. 디오게네스는 인생에서 무엇인가 이루려면 훈련이 필수이며 훈련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쾌락을 멀리하는 것도 습관이 되면 즐거움이 되며, 훈련된 사람들은 쾌락을 거부하는 데서 더 큰 만족을 얻기 때문이다.
견유학파는 논리학과 자연과학을 배제하고 오로지 윤리학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디오게네스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철학이론이 아니며 실제 삶에서 선과 악을 낳는 것이 무엇인지 식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견유학파는 스토아학파와 마찬가지로 덕에 따라 사는 것이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최소한의 소유로 만족하는 삶을 강조하며 소박한 식사를 하며 단벌만 걸쳤으며 부와 명예, 귀족출신을 경멸했다.
덕은 배울 수 있으며 한번 익히면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랑받을 가치가 있고, 나무랄 데 없으며 운에 의존하지 말아야 하며, 덕과 악 사이에 있는 것들은 도덕적으로 중립적이라고 믿었다.
개 같은 디오게네스
왜 사람들이 철학자에게는 돈을 주지 않으면서 거지에게는 주는지 묻자 디오게네스는 ‘언젠가는 자기도 절름발이나 장님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철학자가 될 거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니며 ‘나는 인간을 찾고 있다’라며 중얼거리곤 했으며, 무슨 짓을 하고 다니기에 사람들에게 개라고 불리는지 묻자 ‘베푸는 사람에겐 꼬리를 흔들고, 인색한 사람에게는 짖어대며, 나쁜 놈은 물어버리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만찬회에서 사람들이 개를 다루듯 그에게 뼈다귀를 계속 던지자, 디오게네스는 개처럼 그들에게 오줌을 갈기고 떠나버렸다.
6 철학자의 모범, 내 친구 데메트리오스
견유주의자 데메트리오스는 내가 보기에 위대한 인물이며,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과 비교해도 손색없다. 그는 늘 이런 중요한 말을 했다. ‘철학에서 많은 이론을 배웠으나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몇 가지 핵심적인 가르침을 익혀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는 편이 더 유익하다. 레슬링을 잘하는 사람이란 수많은 기술을 익히고도 실전에서 거의 쓰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몇 가지 기술을 철저히 연마해 적절한 순간에 이를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승리하기에 충분한 기술을 갖고 있느냐다, 철학도 마찬가지로 많은 주제가 흥미를 끌 수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우리를 승리로 이끄는 것은 몇 가지뿐이다.’ - 세네카의 ‘자선론’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