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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3. 군주론

군주론(니콜로 마키아벨리著 이시연譯, 더스토리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지명, 인명 등이 어려워 서양철학을 좋아하지 않지만 최근 서양철학서적 몇 권을 구입했다. 첫발부터 질리지 않게 얇은 책으로... 동양의 한비자, 서양의 마키아벨리라고 할 정도로 둘의 철학은 유사성이 있다고 한다.

한비자 철학은 법치주의로 '인의'가 아니라 '법'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하며, 인간을 이기적인 동물로 간주해, 군주는 백성의 생각에 휘둘리지 말고 군림해야 한다고 했다. “인간의 본성은 악하며, 선한 부분은 교육에 의한 후천적인 것이다"라며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의 제자가 한비자이므로 한비자 철학의 밑바탕을 짐작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즘은 “국가를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는 국가 지상주의적 정치사상” 으로 이기적인 국민을 국가통치를 위한 도구로 간주했다. 한비자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지만, 더욱 비인간적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판단이다.

진나라 재상 상앙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으로 국가 기강을 잡았다. 단 예외도 있었다. 태자가 법을 어기자 스승에게 죄를 물어 얼굴에 문신을 했고, 재차 법을 어기자 스승의 코를 베었다. 왕이 될 태자를 직접 처벌하지 못했으나 당시로서는 상당한 처벌이었으며, 군주에게 무한한 면책권을 부여한 마키아벨리즘보다는 인간적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국가철학은 시대를 반영한다. 한비자는 전국시대, 마키아벨리도 이탈리아의 혼란기를 살았으므로 당시 상황에 맞는 국가경영 철학을 제시한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악하게 봤고 ‘사랑’보다는 ‘엄격’하게 통치해야 한다고 했으나 역설적으로 백성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1453년 이후 이탈리아는 밀라노 공국, 베네치아 공화국, 피렌체 공화국, 나폴리 왕국, 교황령 등 5대 강국의 각축장이었다. 1494년부터 프랑스, 에스파냐, 신성로마제국이 이탈리아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수차례 침입했다. 교황청이나 나폴리로 내려가는 길목이 피렌체였으며, 부유하나 군대가 없기에 만만했고 강력한 지도자가 부재했기에 피렌체가 가장 많이 시달렸다. 그 시점에 피렌체를 살려내려고 강대국사이를 필사적으로 오갔던 외교관이 마키아벨리였다.

마키아벨리는 외세에 시달리는 이탈리아인으로서 강력한 군주가 나와주기를 바라며 ‘군주론’을 썼다. 피렌체의 운명을 밝게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충정을 담았음은 물론이고, 자신의 앞날까지 밝게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소망까지 담았다.


헌사: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위대한 로렌초 데 메디치 전하께 올리는 글

군주의 총애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가장 귀중한 것이나 군주가 기뻐할 것이라 여기는 것을 가지고 군주를 뵙는 것이 관례입니다. 저 또한 충성심의 표시로 무엇인가 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가진 것 중에서는 동시대에 일어난 사건들과 관련해 쌓인 지식, 고대사를 연구해 깨달은 위인들의 업적에 대한 지식이 가장 소중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한 권의 작은 책자로 정리하여 전하께 바치려고 합니다.

전하께 바치기는 많이 부족한 책이나 최고의 선물로 받아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이 글을 꾸미지 않았습니다. 과장된 구절이나 고상하고 화려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다양한 사례와 진지한 내용으로 구성될 때만 돋보이고 존중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풍경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산맥과 고지대의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 낮은 곳으로 가고, 평원을 살펴보려면 산꼭대기로 올라갑니다. 마찬가지로 백성의 성격을 파악하려면 군주가 되어야 하고 군주의 본성을 이해하려면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저의 뜻을 헤아려 이 책을 꼼꼼하게 dfr고 깊이 성찰하신다면, 전하께서 운명과 탁월한 자질로 위대한 과업을 성취해내셔야 한다는 저의 간절한 소망을 헤아리게 되실 겁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때때로 이 낮은 곳에 눈을 돌리신다면 제가 계속되는 불운으로 인해 부당한 고통을 겪고 있음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제15 장 사람들, 특히 군주가 칭송받거나 비난받는 행동들

‘인간이 실제 어떻게 사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인간사에서 보통 행해지는 것을 행하지 않고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하겠다고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잃고 말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나 선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사람은 선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곧 몰락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주가 자신을 보존하고자 한다면 상황에 따라 선하지 않게 행동하는 법을 배워서, 필요에 따라 그것을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꼭 필요하다면, 악덕을 행하고 나쁜 평판에 개의치 마라

군주가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성품들을 모두 갖추면 바람직하고 칭송받을 일이지만 이는 불가능하고 현실 상황은 그런 성품을 발휘할 수 있는 삶을 용납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군주는 지위를 잃게 할 정도의 나쁜 평판만은 피하도록 신중해야 합니다. 또 정치적으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악덕일지라도 가급적 피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정치적으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악덕은 별다른 불안을 느끼지 않아도 됩니다. 더 나아가 그러한 악덕 없이는 지위를 유지할 수 없다면 그 악행으로 인해 나쁜 평판이 발생하는 것도 개의치 말아야 합니다.


제17 장 인자함과 잔인함: 사랑받을 것인가, 두려움의 대상이 될 것인가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군주에게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 중에서 어느 편이 더 나은가’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둘 다 느끼게 하고 싶겠지만 거의 불가능하므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럽고, 위선적이며 기만에 능하며, 비겁해서 위험을 회피하려고만 하고, 이익에 눈이 어두운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군주가 은혜를 베푸는 동안에는 군주에게 충성합니다. 하지만 군주를 위해 피를 흘리며 재산을 바칠 것 같이 행동하다가도 군주가 그러한 것들이 필요 해질 때 등을 돌립니다. 그들의 약속만 믿고 그 약속을 권력의 기반으로 삼아 다른 대책 마련에 소홀한 군주는 몰락합니다.


인간은 사랑을 베푸는 자를 해칠 때보다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를 해칠 때 더 주저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랑을 저버릴 수 있으나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가 유지되며 이는 결코 실패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군주는 자신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어서 사랑받지는 못하더라도 미움받는 일만은 피해야 합니다. 미움받지 않으면서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가능합니다. 백성과 신하들의 재산과 그들의 부녀자들에게 손을 대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유지가능합니다.

또한 군주는 군대를 통솔하고 많은 병력을 지휘할 때는 잔인하다는 평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잔인하다는 평판이 없다면 군대의 단결을 유지하거나 군사작전을 적합하게 준비시킬 수 없습니다.


제18장 약속을 지키는 방법

술책이 진실을 이긴다

군주가 신임을 지키며 남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야 말로 칭송받을 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업적을 이룬 군주들은 신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기만을 통해 사람들을 혼란시키는 데에 능숙했습니다. 그들은 신의를 지키는 자들을 제압하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므로 싸움을 하는 데에는 인간에게 어울리는 법에 의지하는 것과 짐승에게 어울리는 힘에 의지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군주는 짐승의 방법과 인간의 방법을 고루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작품해설: 16세기의 금서, 21세기의 필독서

“군주는 나라를 통치할 때 미덕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야 합니다. 나라를 통치할 때는 배신도 해야 하고, 때로는 잔인해야 합니다.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고, 신앙심을 저버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군주는 자신이 처한 운명과 환경이 달라지면 그에 맞는 임기응변이 필요합니다. 할 수 있다면 착해지되 필요할 때는 사악해져야 합니다.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는 일입니다. 일단 그렇게만 하면 군주가 무슨 짓을 했든 칭송받고 위대한 군주로 추앙받을 것입니다.”

마키아벨리즘이라고 하면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열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도덕적 견지에서 그를 악마의 대변자로 비난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나라를 번영시키는 일에 선악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선한 마음으로 행동해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겠다는 것은 욕심이다. 마키아벨리는 둘 다 얻는 것을 불가능하고 나라를 지키는 것을 우선시했다. 신앙심을 버려야 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것이 마키아벨리의 최우선 과제였고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가 죽은 후 오랫동안 마키아벨리는 위대한 이름이 되지 못했다. 1559년 교황청은 마키아벨리 책들을 금서로 지정했고 종교개혁 당시의 개혁자들도 가톨릭의 악행을 성토할 때 ‘마키아벨리 같은 악마의 책을 읽은 자들이라 그렇다’고 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방법론을 간결하게 서술했다. 당시 바쁜 생활로 인해 책 읽을 시간이 많지 않았던 군주인 로렌초 데 메디치를 위해 썼기 때문이다. 이전의 사상가들과 달리 군주의 도덕성을 전혀 강조하지 않았고 오히려 필요하다면 도덕에 반하게 행동하라고 했다.

‘나쁜 짓을 하고도 벌을 면할 수 있다. 파렴치한 범죄자란 승리하지 못한 실패자일 뿐이다.’ 과정이 중요치 않고 권력쟁취나 유지에 성공했냐는 결과를 중요시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단정 지을 수 없는 최근의 정치상황과도 매우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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