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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0. 미니멀리즘적 쾌락주의(2)

에피쿠로스原著, 제이한著 리프레시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 불필요한 욕망을 줄이고, 마음의 평온을 얻는 삶 -


2장 고통을 피하는 것이 먼저다.

에피쿠로스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바로‘쾌락은 고통의 부재다’라는 정의다. “쾌락은 몸에 고통이 없고, 영혼이 평온한 상태에 있다.” 에피쿠로스는 ‘불안’을 인간이 자초한 고통이라고 보았다. 대부분의 불안은 실제 현실이 아니라 가상의 미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며 그 가능성중 가장 나쁜 시나리오를 마음속에서 시뮬레이션한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큰 고통 중의 하나는 비교다. 누군가의 성공, 외모, 재산, 인간관계를 보고스스로를 축소한다. 비교는 쾌락의 가장 큰 적으로, 현재의 만족을 무효화시킨다. “남이 가진 것을 갈망하는 한, 평온은 없다.”


4장 덜어내야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덜어내는 삶’을 두려워한다 혹시 ‘빈곤하게 사는 것’이나 ‘쓸쓸하고 축소된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적게 가지는 것이 가난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이 필요로 하는 것이 가난이다.”

자유는 많은 것을 가질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적게 필요로 할 때 생겨난다. ‘더 큰 집, 더 좋은 차, 더 다양한 경험’이 내 것이 된다면 자유롭다고 믿는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가진 것이 적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다.”

명예가 높아지면 더 많은 기대를 받아야 하고, 재산이 많아지면 지켜야 할 것이 늘어나고, 지위가 높아질수록 자유로운 발언은 줄어든다. 고유는 때때로 우리를 가두는 감옥이 된다.


6장 함께 나누는 쾌락, 우정

에피쿠로스는 우정을 이렇게 정의한다. ‘욕망을 절제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울이자, 고통을 견디게 해주는 버팀목이며, 삶의 평온을 지속시키는 가장 현실적인 조건이다.’

에피쿠로스는 혈연, 관습, 이해관계로 연결된 관계를 진정한 우정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에게 우정이란 함께 있는 그 자체를 기뻐하는 관계였다. 비교하지 않고, 지적하지 않으며, 조언보다는 들어주고, 변화시키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기반이다.


우리 사회는 ‘좋은 사람’,‘괜찮은 사람’을 만나라고 하지만 그 관계가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에피쿠로스는 관계를 평가할 때 도덕이나 이상이 아니라 감정의 반응을 기준으로 보았다. “함께 있을 때 마음이 흔들리는가, 가라앉는가?”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들이 실은 불안, 죄책감, 기대, 경계심 위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된다.

군중 속에서의 관계는 쉽게 스쳐 지나가지만 진짜 우정은 시간을 견디며 남는다. “우정이란 수가 많다고 해서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 사람의 깊은 우정이 수많은 인연을 이긴다.”


우정은 서로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는 관계라기보다, 서로의 삶을 지켜봐 주는 동행이다. 존재만으로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삶을 묵묵히 바라봐주는 태도가 우정의 본질이다. 그런 관계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당신은 이미 충분히 풍요로운 사람이다. “좋은 우정은 계산이 아니라 기억으로 유지된다. 손익이 아니라 사유로 이어진다.”


7장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

죽음은 가장 두려운 미지의 영역이다.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을 두려워하며 가장 알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누구도 경험해 이야기해 줄 수 없으며 한 번 다가오면 돌이킬 수 없다. 에피쿠로스는 이 두려움의 정체를 정확히 분석했다. 그는 죽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 상상하는 방식’이 우리를 괴롭힌다고 보았다.

에피쿠로스는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살아있을 때 죽음은 없다. 그리고 죽음이 찾아왔을 땐 우리는 없다. 그렇다면 죽음은 우리 ‘밖에’ 있는 것이다.” “죽음이 나에게 오기 전까진 걱정할 이유가 없고, 죽음이 왔을 땐 걱정할 주체가 사라진다.”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하는 삶은 결코 현재에 집중할 수 없기에, 그 두려움은 매 순간을 불완전하게 만들고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더 빨리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조급함을 만든다. 그러나 에피쿠로스는 정반대의 접근을 제안한다.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삶을 간결하고 깊게 살 수 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데, 왜 피할 수 없는 것 때문에 지금을 망치는가?”

죽음을 외면한 삶은 늘 어딘가를 향해 쫓기지만 죽음을 받아들인 삶은 시간과 욕망에서 자유로워지니 초조하지 않다. “가장 행복한 삶은, 죽음을 걱정하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내일을 준비하느라 오늘을 잃는다.

- 언젠가는 여유가 생기면

- 조금만 더 성공하면

- 나중에 시간이 나면 제대로 쉬자

하지만 그 ‘언젠가’는 종종 오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현재를 끊임없이 유예하며 삶을 ‘준비의 시간’으로만 채우게 된다. 에피쿠로스는 말한다. “삶의 기쁨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지금 여기에 있다. 그것을 느끼는 능력이 곧 지혜다.”


8장 단순한 삶이 주는 기쁨

삶이 복잡할수록 우리는 중요한 것을 놓친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내 마음은 흐려지고, 욕망이 많아질수록 만족은 줄어든다. 그러나 무언가를 비워낸 순간 우리는 그동안 가려져있던 것과 마주하게 된다. 에피쿠로스는 그 감각을 삶의 회복이라 불렀다.

“검소한 삶은 단순한 삶이 아니라 본질에 닿는 삶이다.” “무엇이 나에게 필요한지를 아는 사람만이, 무엇을 버려야 할지도 알게 된다.”

복잡함 속에서는 본질이 보이지 않으며 현대인은 매 순간 선택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많은 이들이 자유롭게 일하고, 사랑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를 ‘갖는 것’에서 찾으려 한다. 더 많은 돈, 더 넓은 집, 더 높은 자리, 이것들이 자유를 줄 것이라 믿는다. 에피쿠로스는 이 믿음에 대해 단호하게 말한다. “갖는 것으로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덜 필요로 할 때에만 자유로워진다.”

욕망이 많을수록 우리는 선택하기 어렵다. 욕망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고, 기대에 끌려다니며, 타인의 시선에 흔들린다. 그 결과 우리는 ‘해야만 하는 삶’을 살게 된다.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더 인정받아야 하고, 더 이루어야만 한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 중 많은 부분은 불필요한 기대, 과도한 경쟁, 끊임없는 비교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고통은 우리 삶에 침투해 어느새 익숙한 배경처럼 자리 잡는다. 그러나 그것은 본래 삶의 일부가 아니었다. 삶은 그것보다 훨씬 단순하고, 조용하고, 가벼울 수 있다.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고통 중에서 가장 끈질기고 해로운 세 가지를 꼽았다. 불안, 두려움, 그리고 비교에서 비롯된 마음의 흔들림, 이 세 가지가 쾌락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며 삶을 왜곡하는 심리적 근원이라고 보았다. 그가 말하는 쾌락은 단지 자극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조용히 머물 수 있는 상태였다. “쾌락의 핵심은 아타락시아(ataraxia), 즉 영혼의 평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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