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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읽고 쓰기

1094. 이어령의 말(2) (이어령著, 세계사刊)

인간이 부패한 것은 호화로운 생활의 향수 냄새로 알 수 있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책을 읽으며 중요 대목을 서머리한다. 읽은 후 1~2편으로 나눠 편집하지만, 편집해서 잘라버리기 아까운 내용들이다. 3편으로 나누려 한다.


3 문명: 불완전한 동물들

나무 심기

중국의 나무 심기는 한자의 休(휴) 자처럼 쉬는 데 있고 미국의 그것은 먹는 데 있다. 나무에서 그늘을 찾으려는 것은 마음의 풍요를 위한 것이고 나무에서 열매를 얻으려는 것은 물질적 풍요를 얻기 위해서다. 중국의 나무 심기 정신은 비생산적인 게으름으로 보이기 쉽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무것고도 하지 않고 쉰다는 것, 마음을 비우고 자유로운 시간을 갖는다는 것, 인간에게 중대한 전기를 마련해 준 것은 대개가 다 이런 나무 그늘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혜

지식이 문명을 해결한다 해도 영적 존재인 인간의 마음은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것을 해결하는 게 지혜입니다. 지혜가 문화를 낳고 지식이 문명을 낳습니다. 우리는 지금 달나라까지 갈 수 있는 지식을 쌓았지만 지혜에 관한 것은 깜깜한 것이죠.


자유

인간이 만든 여러 가지 제도 중에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이유는 그것이 비록 결함이 많고 비능률적이며 또 완전하지는 않을지라도, 자기모순을 발견하고 끝없이 고쳐갈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부패

부패는 생명의 적이다. 부패를 막기 위한 투쟁, 그것이 인생의 전 생활이었는지 모른다. 생선이 부패한 것은 썩은 냄새로 알 수 있고, 인간이 부패한 것은 호화로운 생활의 향수 냄새로 알 수 있다. 인간을 부패하게 하는 세균은 권력과 돈 그리고 명성이다.


진실

그리스어로 진실의 반대말은 허위나 거짓이 아닌 망각이에요. 거짓된 것은 망각 속에 다 묻히니 살아남은 기억만 진실한 것이란 뜻이지.


21세기

21세기가 지난 세기와 가장 다른 점은 모든 생명이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하나의 생명은 반드시 다른 생명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4 사물: 일상의 재발견

窓(창)

창, 영어의 window는 ‘바람의 눈 wind+eye’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집에 창이 있다는 것은 영혼에 눈이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는 똑같은 바람의 눈, 영혼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배웁니다. 왜 학교를 배움의 창, 學窓(학창)이라고 하고, 왜 옛 친구를 同窓(동창)이라 불렀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비석

비석에 쓰인 글자를 지우는 것은 비바람이 아니라 망각을 잘하는 인간들의 마음이다.


맛은 설명할 수 없을 때 더욱 맛있다.


모자

모자는 권위주의의 상징이다. 인간은 모자를 발견한 순간부터 권위의 노예가 되었다.


모기

작기 때문에 큰 것을 이기는 역설이 있다. 소처럼 덩치가 큰 짐승들을 잡아먹고사는 것이 인간이지만 자로 그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것은 작은 모기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과잉대응하는 어리석음에 대해 ‘모기보고 칼 뽑는다’고 하는 속담도 마찬가지다. 모기는 작은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칼로 대적할 수 없는 상대이다.


천국

서로 사랑하고, 자기가 먹을 거 자기가 벌고, 서로 나눠 먹고, 이런 참된 의미가 있는 곳이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천국이지요.


카메라

카메라의 셔터 소리는 시간이 정지하는 소리이다. 시간을 하나의 공간 속에 가두어두는 장치, 그것이 카메라다.


목동

목동은 양을 치는 것이 아니라 꿈을 친다. 목동이란 것이 없었다면 서양의 동화는 반 이상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목동이 동화의 주인공이 된 것은 양 때를 몰며 항상 그 눈이 지평선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동화 자체가 아니겠는가.


모이다

팔만대장경은 한 글자가 모여서 진리의 말이 된 것이고, 은하수는 별 한 개가 모여서 하늘의 빛이 된 것이다. 한 걸음이 천 리가 되듯 1초의 작은 시간들이 겹치고 쌓이고 되풀이되면서 영겁의 세월을 이루니 누가 감히 작은 것을 작은 것이라 하며, 큰 것을 큰 것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5. 언어: 환상의 도서관

백지

에이하브 선장이 흰고래 모비딕을 죽이기 위해 평생 목숨 걸고 쫓아다니는 것은 작가가 원고지의 흰 공백을 죽이기 위해 평생 동안 글을 써나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평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예리한 펜의 창으로도 그 흰 공백의 심장을 꿰뚫을 수 없었기에 나는 매일 공일의 그 바다에서 익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글 쓰는 문필가들만의 일이겠습니까. 흰 공백을 죽이기 위해 화필을 들고 온갖 색채로 여백을 메워갔던 그 많은 화가들의 이름도 생각해 봅니다. 벨라스케스, 다빈치, 렘브란트, 솔거, 신윤복, 피카소, 마티스, 이중섭... 이 모든 사람이 흰 화폭의 바다에서 익사한 사람들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말을 찾는 거야. 만드는 게 아니라 찾는 거야.


모든 것은 환해야 보이지만 별은 어두워져야만 잘 보인다. 밤의 시대에 태어난 우리는 ‘별의 언어’ 역설의 언어를 만날 수밖에 없다.


6. 예술: 진리와 아름다움

추락

알베르 카뮈의 ‘전락, La Chute’에서처럼 떨어지는 세계에 사는 것이 인간입니다. 떨어져 보지 않고서는 상승하지 못합니다. 지렛대는 한쪽이 아래로 내려가야 다른 쪽이 올라갑니다.


고전

무엇을 어떻게 읽느냐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우선 고전부터 읽으라고 권유하고 싶다. 고전이란 단순히 옛날 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내용은 변함없지만 언제나 새로운 자양을 공급해 주는 것, 몇 세기를 두고 마르지 않는 샘처럼 새로운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고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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