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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읽고 쓰기

1095. 이어령의 말(3) (이어령著, 세계사刊)

빈곤에 만족하고 사는 생활철학이 빈곤을 이겨내는 생활경제학보다 우선

by 물가에 앉는 마음

7. 종교: 신과의 대화

의지해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것이 불가능할 때 인간은 신을 찾는다.


중간자

신과 생물의 중간자로 인간이 있기에, 인간은 슬픈 존재고 교만한 존재지. 양극을 갖고 있기에 모순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어.


원죄

부족한 인간이 마치 전능한 신처럼 지식과 지혜를 갖고 선악을 판단하려고 하는 그것이 바로 원죄예요. 원죄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없어요. 우리는 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지혜를 가졌다고 생각하며, 남을 심판하려 하니까요.


십자가

인간으로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을 인간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오만이 생긴다. 인간의 힘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내가 네가 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으로서는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즉 인간의 한계를 알 때 우리는 각자의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게 된다.


영성

과학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며, 예술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합니다. 종교는 설명해서는 안 되는 것을 설명합니다. 종교적 현상은 체험할 수 있을 뿐이며 그것이 영성입니다.


8. 우리: 너 누구니

연가

한국인이 노래 부른 사랑은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절망이 아니라, 또 자기를 버린 임에 대한 증오가 아니다. 끝내 이루지 못한 그 사랑의 집념이며 미련이다. 희망도 절망도, 그리고 복수도 용서도 아닌 그 중간 지점에서 어렴풋이 떠오르는 아지랑이, 그것이 바로 애를 끊는 원한이며 한국인들이 부른 연가의 가락들이다.


무덤

흙을 쌓아 올린 한국 무덤의 그 봉분은 세월 속에서 차츰 내려앉아 평지의 레벨과 가까워진다. 그러니까 무덤 역시 한국에서는 조금씩 죽어가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차츰 잊혀지고 발길이 뜸해질 무렵 그래서 비석마저 풍화되어 버리면 무덤은 그냥 흙으로 돌아가 사라져 버린다. 무덤이 사라져 완전히 지면으로 돌아가는 데 한 백 년 넘어 걸린다. 살아 백 년, 죽어 백 년, 한국인은 이렇게 두 번 죽는다.


김장

사랑도 인생도, 죽음도 김장 담그듯이 담가놓고 기다린다. 절로 뜰 때까지 참고 기다린다. 침묵의 시간 속에서 밀폐된 어두운 김장독에서 익어가는 사상. 김장은 한국인의 마음과 생활방식을 상징하는 생의 의식이요, 잔치이다.


떡은 밥만 먹고사는 사람들의 권태를 없애기 위해서 만들어진 구제의 음식이다. 떡 그것은 일상성의 거부다.


풍류

귀양살이만이 아니다. 가난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초가삼간을 궁궐처럼 큰 집으로 만들기 위해 고생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노력한 것은 초가삼간 속에서도 어떻게 즐길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으며, 또 가난 속에서도 어떠한 삶의 보람을 얻느냐 하는 데 있었다. 말하자면 빈곤에 만족하고 사는 생활철학이 빈곤을 이겨내는 생활경제학보다 우선하는 세계였다. 귀양살이가 관광이 되듯 빈곤은 멋이 된다.


입은 가장 완고해서 외국 생활과 쉽사리 악수하려 들지 않는다.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말이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음식이다. 이 ‘말’과 ‘음식’은 國粹主義(국수주의)적인 색채를 버리지 않는다.


9. 창조: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

빈칸

빈칸이 있어야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생겨요. 빈칸 없이 정확하게 말하면 끌어들이는 힘을 못 가져요. 사용설명서나 안내문을 봐요. 상상력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지.


향수

향수는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아름답게 보인다. 먼 데서 쳐다봐야 한층 더 붉게 보이는 단풍과도 같다.


나눔

예술적인 공감은 나눌수록 커지지만, 돈이나 권력이나 물질은 함께 나눌수록 자기 몫이 적어져요. ‘이익’을 나누는 세계가 소비의 세계라면 공감을 나누는 세계는 창조의 세계예요.


관습

만인이 납득하는 아이디어는 아이디어가 아니지. 낡은 생각이라는 증거니까.


데이터

데이터가 아무리 많아도 유효한 것을 끌어내려면 항상 촉을 세우고 있어야 해. 그래서 빅데이터 연구에 인문학이 중요한 것이지. 관심이 많아야 하고 또 잡스러워야 돼. 잡담이나 잡학이니 하는 것처럼 사람이 약간 잡스러워야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과 접할 수 있어.


시야

우리는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생각한 대로 생각하지 않고, 행 하는 대로 행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거짓과 잘못된 옷을 입고 있는 거예요.


사고

사고, 관찰 그리고 관계. 인문학을 문사철이라고 하지만 모든 지적 프로세스는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종교든 정치든, 바로 그 세 가지야.


21세기

하드웨어의 시대에서 소프트웨어의 시대로, 그리고 다시 소프트웨어의 시대가 드림웨어의 시대로 옮아가고 있는 새로운 21세기를 맞게 되었다.


리스크

리스크는 이태리 고대어로 ‘용기를 갖고 앞으로 나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즉 진취적이고 용감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른 삶은 안전하게 돌아가지만, 용기 있는 사람은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마인드로 모험을 한다. 그래서 경영학자들이 말하는 리스크에는 모험 없는 곳에 이익 없다는 뜻도 담겨있다.


지식인

꽃들은 봄이 되면 앞다투어 핀다. 지금으로 치면 예언자가 아니라 시세에 편승하는 자들이고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같은 것이 시류에 편승하는 것이다. 봄이 되니 서로 잘났다며 시끄럽게 피지만 매화는 가장 추울 때, 누구도 봄이 온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때 홀로 피면서 ‘얘들아, 앞으로 봄이 온다’라고 예언자적인 모습을 보이는 꽃이다. 이게 지식인이고 지성인이다. 지금 눈앞에서 봄을 누리는 자가 아니라 봄을 예고하고 봄의 뜻을 먼저 전해주는 사람이 바로 지식인인 것이다.


편집을 마치며: 유언 같은 최후의 책

‘이어령의 말’은 선생님의 오랜 뜻이었다. 유언 같은 최후의 책, 암 발병 이후인 작고하기 7년 전부터 ‘이어령 어록집’을 내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내비치셨다. 수백 권의 책 중에서 ‘이어령의 언어’로 재정의한 부분을 추리고 추려 한 권의 사전으로 엮어내길 바라신다는 것이었다. “그 한 권을 통해 후대의 독자들이 내가 평생 해온 지적탐험을 쉽게 이해하면 좋겠다.”는 취지였다.


‘이어령의 말’은 어록집의 형태를 띠지만 내용은 고매한 지성이 건네는 ‘생의 지침서’라고 봐도 무방하다. 삶이란 무엇이며 인간의 생명, 사랑과 어머니, 정치, 자연, 문화, 예술의 속성은 무엇인지를 한 올 힌 올 풀어내는 이어령식 정의는 밋밋한 세상을 4차원의 입체로 보게 하는 신비의 렌즈를 손에 쥐어준다. 그 렌즈는 시대와 사회가 부여한 틀과 고정관념 너머의 순수하고 맑은 영혼들이 사는 진짜 인간다운 세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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