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8. 넓고 깊지 않은 인간관계

퇴직 후 자연스럽게 親疎(친소) 관계가 정리되니 한편으로 다행이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사람이 궁해지면 친구도 적어지고 가문이 몰락하면 친구도 없어진다.’ 중국속담이다. 문구로만 보면 무서울 정도로 비정하기까지 하지만 중국속담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궁해진 주체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막역한 친구들 몇몇에게는 아무 때나 연락해 ‘막걸리 한잔사라.’ 해도 거리낄 것이 없다. 하지만 나머지 친구들에게는 막걸리 한잔 살 돈은 있어야 연락할 수 있다. 내 곁을 떠나는 친구도 있는 반면 내가 궁해졌기에 스스로 연락하기 꺼려지는 친구도 있다. 이렇게 연락이 뜸해지면 친구도 멀어지고 적어진다. 사실 궁해졌기에 연락이 멀어지는 친구는 오래 만나지 않아도 무방한 친구들이다. 섭섭해할 필요 없다.


중국속담이 아니더라도, 조직에 몸담고 있을 때 어울리는 회사 친구들 대부분은 ‘의리’보다 ‘실리’를 따른다. 당연하게도 내 지위가 높고 영향력이 클 때는 주위에 많은 친구들이 모인다. 물론 그들이 ‘의리’보다 ‘실리’를 찾아 모였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친분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조직 내 모든 사람과는 不可遠(불가원)의 관계가 구축되어야 내 조직도 굴러가니 ‘실리파’를 무조건 경원시할 필요는 없다. 언젠가는 돕고 때가 되면 도움을 받는 사이다.

조직에서는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터놓을 친구가 많지 않아도 주변은 항상 사람들로 넘쳐난다. 반대로 영향력이 적어지면 썰물같이 빠져나간다. 社內(사내) 친구들도 적어지지만 사업관계로 맺어진 회사 밖 친구들은 하나도 남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지나친 결벽증으로 인해 재직 중에도 사업관계로 맺어진 회사 밖 친구가 없었으니 썰물처럼 빠져나갈 친구도 없다. 섭섭함이 없어 다행이다.


혹자는 보직을 내려놓고 우울해졌다고 한다. 비서도 없고 권한도 없고 찾아오는 친구도 적어져 하루아침에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다. 퇴직하면 없어질 것이 더욱 많아진다. 이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쓸쓸함을 넘어 비참해질지도 모른다. 지나가야 할 통과의례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좋다.

우울해하는 친구들에게 한비자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썰물같이 빠져나가는 친구들 속에서 예전의 내 모습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인간관계의 넓고 깊음은 주관적 판단이지만, 업무로 만나는 사람은 많았어도 깊게 사귀었던 사람들은 드물었다. 속마음까지 털어놓을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 많지 않으니 넓거나 깊게 사귀지 못하는 거다.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가 천 개 넘어도 퇴직 후 연락하는 사람이 백 명도 안 된다.


퇴직 후 인간관계가 갑자기 좁아졌다. 코로나펜데믹과 건강을 위해 금주를 실천하려 의도적으로 만남을 멀리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매일매일을 복작거리며 살다가 가족 이외 외부인을 만나는 경우도 드물어졌다. 코로나 이후 대부분의 애경사까지 온라인으로 처리하니 사람보다 길냥이와 철마다 피어나는 꽃과 만나는 기회가 더 많아졌다.

재취업 이후에도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을 한동안 만나지 못했으며 외부인사 만나는 기회도 줄어들었다. 뜸하게 만나는 사람들도 이해관계가 없는 관계이니 신경 쓸 일도 없고 나쁜 머리를 소리 나게 굴릴 일도 없다. 정신건강에도 좋고 머리까지 맑아진다.


두 번째 퇴직 후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나만의 행복이다. 이처럼 넓고 깊지 않은 인간관계 덕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인간관계가 넓었다면 수시로 불려 다니며 술 마시고 마음에 없는 소리도 해야 하나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기 싫은 것을 꼽으라 하면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는 것과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 것이다. 전자는 입 다물고 있으면 가능하나 후자는 곤란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것조차 불편해 나도 모르게 가벼운 한숨을 내뱉는 경우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자와 후자가 겹치는 경우가 많으니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참석하는 모임일 경우에는 불참하면 된다. 그렇다고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는 은둔형 외톨이는 아니다. 성격이 원만하지 않아 그렇다는 것을 조금 친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퇴직 후 자연스럽게 親疎(친소) 관계가 정리되니 한편으로 다행이다. 내 오지랖으로는 많은 친구들 만나고 챙기는 것도 불가능해 오히려 손꼽을 정도의 친구가 남은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있다. 그런 삶을 이해하고 지켜봐 주며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만한 친구, 문득 보고 싶어지는 친구들이 아직도 곁에 남아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아니 소중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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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관계는 이기심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대부분 이기적이에요. 누구나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관계를 맺으려 합니다. 결혼 상대자를 고를 때도 경제력, 학벌, 신체조건, 성격등을 고려해 이익이 되는 사람을 선택해요. 부모자식 간에도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이기심이 작용해요. 부모를 좋아하는 것도 낳아주고 길러준 것뿐 아니라 부모만큼 자식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에요.

이기심을 갖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이기심을 갖고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이익을 따져 사람을 만나듯 상대방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이해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3을 주고 7을 받을 생각이었으면 상대방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면 서로 3밖에 받지 못하니 서로 실망하겠지요. 상대에게 불만스럽고 실망스러운 건 7을 기대했던 내 마음 때문이지 상대방의 잘못이 아니에요. 법륜 스님의 행복(1) (법륜著, 나무의 마음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