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일에 만족하니 삶이 풍요로워졌다
roasting사부의 커피맛은 환상적이다. roasting 기술과 brewing 기술이 남다르다. 사부의 커피는 혀를 부드럽게 감싸는 실키한 맛이 일품이며 향도 뛰어나다. ‘나는 언제쯤 사부와 비슷한 맛을 낼까?’ 이런 것이 부럽지만 커다란 부러움은 아니다.
로스팅사부는 몇 배의 노력을 했으며 쌓아온 내공이 있으므로 쉽게 올라설 경지도 아니다. 취미로 삼은 로스팅은 내 입에 맞는 원두를 취향에 맞게 로스팅하여 집에서 신선한 상태로 마시고 싶은 것이 목적이다. 하다 보면 사부 실력에 가깝게 다가서는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멀어진다 해도 그리 샘나는 일도 아니다.
신간으로 나온 책은 무엇일까? 예전보다 신간에 대한 호기심이 줄었다. 시립도서관에 가면 아직도 읽지 못한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아 책을 구입하는 양도 줄었다. 또한 도서관은 한 달에 2권씩 희망도서를 구입해 준다. 급한 책이 아니면 도서관에 부탁한다.
가지런하게 또한 보기 좋게 분야별로 정리해 놓은 서가를 보면 괜히 부자 된 느낌이다. 내 서재는 아니지만 내 것처럼 생각하고 이용하고 있다. 도서관은 개인서재 못지않게 환경도 쾌적하고 조용하다.
낚시를 거의 60년 했다. 경력으로만 따지면 대한민국에서도 손을 꼽겠지만 낚시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신기술이라고 등장하는 채비들을 구태여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낚시라는 취미는 즐기는 것일 뿐 경쟁이 아니며 많이 잡아내는데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즈음 양어장에는 월척이상 붕어(향붕어라는 향어와 붕어 교잡종으로 잘 크고, 건강하고 힘도 좋다.)를 풀어놓기에 20마리 정도만 잡으면 손이 뻐근할 정도다. 누구는 100마리 잡았다며 사진을 올리지만 그렇게 부러운 일은 아니다. 그렇게 많이 잡으면 ‘테니스 엘보’처럼 근육통이 오므로 적당히 잡으면 된다.
얼마 전 사람이 먹는 식용글루텐을 구입했다. 미끼용이다. 시중에 미끼용 글루텐이 넘쳐나는데 굳이 식용글루텐을 구입한 이유는 성격 탓이다. MBTI INTJ-A유형 인간이 퇴직 후에도 몽상가적인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있다. 사람이 먹는 것을 잡식성인 붕어가 먹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바나나, 오징어, 짜장면도 먹는데, 취미와 재미로 하는 일이니 통념을 깨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삭힌 홍어는 미끼로 유용하지 않다. 해봤다.
세 번째 직장에 애착을 가져서 그런지 휴일에도 직장 생각을 한다. 솔직히 큰아이와 사위가 아픈지, 밥을 먹었는지 걱정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손녀가 잘 놀고 있는지는 궁금하다. 요즈음 주 5일 손녀를 보고 있지만 휴일이면 생각난다. 일어나며 잠투정하지 않았나? 밥은 잘 먹었나? 아프지 않은가?
아내와 손녀를 등,ˑ하원시키고 있다. 손녀는 가끔 엄마, 아빠가 하원시키러 가면 뒷걸음을 치기도 하고 울기도 한단다. 손녀는 모든 요구를 들어주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제일 좋아할 시기이며, 조부모도 손녀가 가장 사랑스러울 시기인듯하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말솜씨에 이제는 동화책 읽어달라면 동화책도 읽어준다. (한글을 알아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를 기억해 그림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아이들은 콩나물 자라듯 쑥쑥 자란다.
회사 재직 중 많은 부분을 내려놓고 살았지만, 퇴직하며 좋은 점은 더 많은 부분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것을 쥐고 사는 사람이나 내려놓고 사는 사람에게도 퇴직이란 제2의 삶을 재설계하기 위한 상당히 중요한 Turning Point다. 미래에 대해 생각 하고 싶지 않아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것인가?’ 자연스럽게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다.
가진 것에 집착하지 않고 성과에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된다. 싱겁게 먹어야 하고 가려야 하는 음식이 많아졌으니 먹는 것에 대한 욕심은 이미 버렸다. 경제권은 아내가 쥐고 있으므로 살림은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식들은 자기 갈 길을 가고 있고 손녀도 건강하니 걱정 없다. 관심사인 커피, 낚시, 독서, 손녀만 신경 쓰고 살아도 시간이 빠듯하다. 하루가 재미있고, 조그만 일에 만족하니 삶이 풍요로워졌다. 걱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걱정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짧다. 노년에는 명예와 욕심을 내려놓자. 그리고 취미나 종교생활, 또는 평소에 관심이 있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에 몰두하며 인생을 즐기자. 지금 이 글을 보는 순간부터 시작하면 늦지 않다. 우리 모두 늙는다. 멋지게 늙어가자.
행복은 저 끄트머리 목적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모든 과정이 행복 지점이요, 매 순간 그대가 서 있는 곳에 극락이 있다. - 법구경 마음공부 (정운著, 유노 콘텐츠그룹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