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4. 너무 많은 것을 들고

아직도 많은 것을 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미니멀리즘이 대세인가? 큰아이는 출가하고 작은아이는 외국생활을 하니 아이들이 사용하던 살림살이들이 공간만 차지하고 불편해졌다. 피아노, 가전, 가구, 옷가지 등을 버리니 집이 휑해졌다. 좁게 느껴졌던 집이 넓어졌고 눈도 시원해졌다. 덕분에 커피 로스팅공간도 생겼다.

비우고 내려놓고 살려고 하지만 아직도 많은 것을 들고 있다. 창고에 가면 사용하지 않는 낚시장비가 많이 있다. 솔직히 언제 사용할지도 모를 장비들이다. 얼마 전 노지에서만 사용하는 장비인 파라솔과 텐트를 버렸다. 나주를 떠난 근 5년 동안 사용한 적이 없었다. 사실 나주에서도 일 년에 한두 번 사용하던 장비였다.

창고에는 많은 장비들이 있지만 이러저러한 사유로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선친이 사용하던 낚싯대는 구식이라 무거워서 사용하지 않지만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하나둘씩 사모은 장비들도 분명 사용가능한 장비들이지만 요즘은 같은 양어장만 다니다 보니 사용빈도가 줄어들었다.

커피로스팅을 무작정 시작하며 장만한 장비는 초보자용이었다. 요즈음 고가 장비에 눈길이 가고 있으나 참고 있다. 저가인 초보자용 장비로도 그럭저럭 로스팅을 하고 있지만 높은 품질의 원두를 만드는데 한계가 있기에 고가장비에 욕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 달에 1.5Kg 정도 소비하니 많이 볶는 것도 아니기에 커다란 불편을 느끼지는 않지만 욕심에 고가 장비에 눈이 가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바로 구입했을 텐데 요즈음은 한 박자 쉬고 생각한다. 한 박자 쉬고 정말 필요한 것인가를 따져보면 구입하고 싶은 욕구가 신기하게도 사그라든다.


풍족함을 누릴 수 있음에도 비우고 산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경제력만 뒷받침된다면 움켜쥐고 채우며 살아가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풍족함을 경험하고도 비우고 산다는 것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 번이라도 달콤함을 맛봤다면 웬만해서는 내려오기 어려운 것이 생활수준이다. 그만큼 욕망과 욕심은 내려놓기 어렵다. 미국의 길거리철학자 에릭 호퍼도 이야기했다. “한번 밟고 지나간 욕망의 길은 몇 번이고 다시 찾게 된다는 것이 진리이다.”

비우며 산다는 것은 물리적인 것만 비운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물리적으로 비워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한다면 비움으로 인한 불편과 부족함을 마음에서 감내한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한다. 또한 지위나 권력도 휘두르는 것이 아닌 섬김의 도구로 사용한다면 ‘비움의 도’를 얻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김수환추기경님이나 법정스님 같은 분들이 존경받는 것은 마음의 감내를 넘어서 일상화된 생활을 실천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보직을 내려놓고 퇴직대기 중인 후배의 고민이다. ‘퇴직을 앞둔 또는 퇴직한 선배들이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고 해서 마음이 급하기도 하고 막막하고 불안하다.’며 질문을 던졌다. ‘선배님은 퇴직 후 제2의 직장을 가지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요즈음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회사를 놀이터로, 업무를 놀이라 생각했었다. 회사 안에서 조차 놀던 사람에게 어떤 일을 하냐고 물어보니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읽고, 쓰고, 낚시, 손녀돌보기..., 다양한 놀거리 들과 본격적으로 놀기 작정한 사람에게 어떤 일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대답하기 곤란하다. 또한 말을 짧게 하는 언변도 부족하다.


후배에게 미리 밑밥을 깔았다. “요즈음 ‘전업 손녀돌보미’를 하고 있고 충분히 행복하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라고 하니 후배가 신기해한다. 물론 후배가 원하던 답이 아니었다. “근 35년을 한 직장에서 일하고, 게다가 보직 없이 2년을 일하다 다시 현역생활을 한다고 생각해 봐라. 우선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쉽지 않다. 또한, 천만 원 받으면 천만 원어치 고민거리가 생기고 백만 원 받으면 백만 원어치 고민거리가 생긴다. 돈보다는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할까를 생각해라. 그리고 그 생각도 놀고 싶을 때까지 논 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공기업에서 35년 정도 근무하다 정년퇴직을 했다면 당분간 굶어 죽을 일은 없다. 놀만큼 쉬고 난 다음 고민해도 늦지 않다. 그동안 무거운 책임, 욕심을 등에 지고 힘들게 살았으나, 이제는 월급은 적지만 책임이 가벼운 직장이 좋을 것이다. 또한 오랜 기러기생활을 했을 것이니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집 근처 직장을 구해봐라. 이제는 가족들에게 봉사도 하고 해보고 싶었던 일을 찾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직도 많은 것을 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것을 들고 있으면서 가볍게 살 것을 운운하는 것은 낯 뜨거운 립싱크인지 모른다. 그리고 특별하지도 않은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들려준 것 같아 후배가 실망했을 수도 있지만 원래 상식은 특별하지 않고 평범하다.

많은 것을 들고 있으면서도 위쪽만을 쳐다보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그동안 쳐다보지 않았던 아래를 쳐다본다면 과도하게 많이 갖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상하를 번갈아 쳐다보되 아래쪽 보는 시간을 많이 갖고 좌우도 살펴보며 살았으면 한다.

쉽고 편하게 많이 가지려는 것은 특별하기에 희귀하며, 눈에 보이지 않기에 차지하기도 어렵다. 상식이므로 마음에 새겨두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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