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투앙 드 생텍쥐페리著, 황현산옮김, 열린책들刊
모두 한 번씩 읽었을법한 ‘어린 왕자’를 구입했다. 손녀 마음을 조금 더 잘 알기 위해서다. 시립도서관에서 대출받아도 되지만 한 권 갖고 싶었다. 예전 읽었던 책에 헌사가 있었는지 기억할 수는 없어도 “어른들도 처음엔 다 어린이였다.” 이 한 문장을 읽고 구입하기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어린아이와 나이 든 사람이 친한지 알겠다. 단순한 진리인 “어른들도 처음엔 다 어린이였다.” 이 문장이 마음에 닿을 때는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다. 생텍쥐페리는 1900년 출생, 1944년 실종, ‘어린 왕자’는 1943년 발표했다. 어떻게 젊은 나이에 단순하고 평범하지만 깨닫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진리를 어떻게 깨달았을까? 나만 늦된가?
레옹 베르트에게
나는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친 데 대해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빈다. 내게 그런 사정이 있는데, 내가 이 세상에서 사귄 가장 훌륭한 친구가 비로 이 어른이라는 점이다. 또 다른 사정은 이 어른은 어린이들을 위해 쓴 책까지도 이해할 줄 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사정은 이 어른은 현재 프랑스에 굶주리며 추위에 떨고 있기에 그를 위로해 주어야 한다. 이 모든 사정으로도 부족하다면, 이 어른의 예전 어린아이에게 이 책을 바치고 싶다. 어른들도 처음엔 다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들은 별로 없다) 그래서 나는 헌사를 이렇게 고친다.
어린이였을 때의 레옹 베르트에게
1. 여섯 살 적에 보아뱀 한 마리가 맹수를 삼키는 멋진 그림을 봤다. 그 책에는 “보아 뱀은 먹이를 씹지 않고 통째로 삼킨다. 그러고 나면 몸을 움직 일수가 없어 먹이가 소화될 때까지 여섯 달 동안 잠을 잔다.”
나는 그 그림을 보고 나의 첫 그림을 용케 그렸다. 내 걸작을 어른들에게 보여 주며 무섭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어른들은 “아니 모자가 왜 무서워?” 나는 모자를 그린 것이 아니라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 뱀을 그린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른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보아뱀의 속을 그렸다. 어른들은 항상 설명을 해줘야만 한다.
어른들은 그런 그림 따위는 집어치우고 지리, 역사, 산수, 문법에 재미를 붙여 보라고 충고했다. 나는 이렇게 여섯 살 때 화가라는 멋있는 직업을 포기했다. 나는 1, 2호 그림 실패로 기가 죽었다. 어른들은 자기들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그때마다 설명을 해주자니 어린이에게는 힘겨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직업을 골라야 했고 비행기 조종을 배웠다. 세계 여러 나라를 날아다녔으며 지리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눈길 한 번에 중국과 애리조나를 구별할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다면 아주 유익하다.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진지한 사람들과 접촉했다. 오랫동안 어른들과 함께 살며 가까이서 보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 대한 내 의견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좀 똑똑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1호 그림을 꺼내 그를 시험해 보곤 했다. 정말 이해력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늘 “모자로구먼”이란 대답만 들었다. 나는 보아뱀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트럼프, 골프, 정치, 넥타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 그 어른들은 분별 있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고 흐뭇해했다.
2. 이야기할 사람도 없이 혼자 살아오다 6년 전 사하라사막에서 비행기 사고를 만났다. 비행기를 고쳐줄 기관사 없이 혼자였으며 일주일 동안 마실 물밖에 없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였다. 첫날저녁 사람 사는 곳에서 수만리 떨어진 사막에서 잠이 들었다. 해 뜰 무렵 작은 소리가 들렸다. “저... 양 한 마리만 그려줘” 벼락이라도 맞은 듯 벌떡 일어났다. 신기한 꼬마아이가 엄숙하게 나를 바라보는 아이는 길을 잃은 모습은 아니었다.
“넌 여기서 뭐 하고 있니?”
“저... 양 한 마리만 그려줘”
종이와 만년필을 꺼냈지만 내가 공부한 것은 고작 지리, 역사, 산수, 문법이었기에 꼬마에게 그림을 그릴줄 모른다고 했더니
“괜찮아 양 한 마리만 그려줘”
나는 한 번도 양을 그려본 적이 없기에 오직 그릴 수 있는 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뱀 그림을 그려주었다.
놀랍게도 꼬마아이가 대답했다. “아니 난 보아뱀 뱃속에 있는 코끼리는 싫어. 보아뱀은 위험하고 코끼리는 거추장스러워. 내가 사는 곳은 아주 작아서 양을 갖고 싶어”
그래서 나는 양을 그렸다.
“아니 이것은 병들었는 걸”
“아이참 이건 숫양이야. 뿔이 돋고..”
“이건 너무 늙었어 나는 오래 살 수 있는 양이 필요해”
나는 비행기를 고치는 것이 급해 상자 그림을 그려주었다.
“이건 상자야. 네가 갖고 싶어 하는 양은 그 안에 들어 있어”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내가 원하는 건 바로 이거야! 양을 먹이려면 풀도 있어야 할까? 내가 사는 곳은 아주 작아서...”
“내가 그려준 양은 아주 조그만 양이라 괜찮을 거야”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작지도 않은데... 이것 봐! 잠이 들었어”
나는 이렇게 어린 왕자를 알게 되었다.
12. 술꾼이 사는 별에 도착했다. 빈병 한 무더기와 가득 찬 병 한 무더기를 앞에 놓고 말없이 앉아있는 술꾼에게 어린 왕자가 물었다. ‘거기서 뭘 하고 계시죠?’ 술꾼은 침울하게 데꾸했다. ‘마시고 있다.’
‘왜 마셔요?’
‘내가 부끄러운 놈이라는 걸 잊으려고’
‘뭐가 부끄러운데요?’
‘마신다는 게 부끄러워’
어린 왕자는 어쩔 줄 몰라 그 별을 떠났다.
‘어른들은 아무리 봐도 아주아주 이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