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7. 어린 왕자(2)

앙투앙 드 생텍쥐페리著, 황현산옮김, 열린책들刊

by 물가에 앉는 마음

14. 아주 작은 별에는 가로등 하나와 가로등 켜는 사람이 있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별 위에 가로등과 가로등 켜는 사람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생각해 봤지만 끝내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사람도 엉터리일 거야 하지만 왕이나 술꾼 같은 엉터리들보다 낫지. 적어도 그가 하는 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어 그가 가로등에 불을 켜면 별 하나나 꽃 한 송이를 새로 태어나게 하는 것과 같은 거야. 그가 가로등을 끄면 꽃이나 별을 잠재우는 거야. 아주 재미있는 일인데, 재미있으니까 정말 유익한 것이지.’

‘나는 여기서 아주 끔찍한 일을 하고 있단다. 처음에는 아침에 불을 끄고 저녁에 불을 켰었어. 낮에 쉴 시간도 있었고 밤에 잠잘 시간도 있었지.’ ‘그럼 그 뒤로 명령이 바뀌었나요’ ‘명령은 바뀌지 않았어. 비극은 바로 그거야. 별은 해가 갈수록 점점 빨리 돌고 명령은 바뀌지 않고. 이제는 1분에 한 바퀴를 돌고 있으니 나는 단 1초도 쉴 시간도 없이 1분마다 한 번씩 불을 껐다 켰다 해야 해’


15. 지리학자가 사는 별에 도착했다. ‘지리학자가 뭔데요?' '어디에 바다, 강, 도시, 사막이 있는지 아는 학자를 말한단다.' '이 별에는 큰 바다도 있나요?' '알 수 없다.' '그럼 도시와 강과 사막은요?' '그것도 알 수 없다. 나는 탐험가가 아니다. 바다, 강, 도시, 사막을 세러 다니는 것은 지리학자가 아니란다. 지리학자는 너무나 중요한 사람이어서 나돌아 다닐 수가 없어.' '그러면 탐험가가 발견한 곳에 가보시나요?' '아니 탐험가에게 증거물을 요구하지.'

'네 별에 대해 이야기를 해다오!' '내 별은 별로 재미있는 별은 아니에요. 활화산이 두 개 사화산이 한 개 있어요. 꽃도 하나 있고요.' '꽃은 상관없단다.’ ‘왜요 제일 예쁜데!’ ‘우리는 영원한 것들을 기록한단다. 산이 자리를 옮기는 것은 아주 드물고, 바다의 물이 마른다는 것도 아주 드문 일이지 우리는 영원한 것들을 기록하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산이야.’ ‘내 꽃이 머지않아 사라질 위험이 있다고요?’ ‘물론이지’ ‘게다가 바깥세상으로부터 저를 보호한다는 게 네 개의 가시뿐이구나. 나는 그런 꽃을 내 별에 홀로 두고 왔구나.’


21.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장미들을 다시 보러 가봐. 네 꽃은 이 세상에 단 하나란 것을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이별인사를 하러 네가 다시 오면 선물로 비밀 하나를 알려줄게’ 어린 왕자는 장미들을 보러 가 말했다. ‘너희들은 내 장미를 전혀 닮지 않았어. 너희들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고 누구도 너희들을 길들이려 하지 않았고 너희들은 길들지 않았어. 너희들은 옛날 내 여우와 같아. 수많은 다른 여우들과 다를 바 없는 여우 한 마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친구가 되었고, 그래서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됐어.’

‘너희들은 아름다워. 그러나 너희들은 비워있어. 아무도 너희들을 위해 죽을 수는 없을 거야. 물론 멋모르는 행인들은 내 장미도 너희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거야. 그러니 그 꽃 하나만으로도 너희들 전부보다 소중해. 내가 물을 준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유리덮개를 씌워줬고, 바람막이로 바람을 막아줬으며, 벌레도 잡아준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불평, 허풍도 들어주고 때로는 침묵까지 들어준 꽃이기 때문이야. 그것이 내 장미이기 때문이야.’


그리고는 여우에게 돌아와 작별인사를 했다. ‘잘 있어.’

여우가 말했다. ‘내 비밀은 이거야.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보인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린 왕자는 기억해 두려 되풀이했다.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히 만든 건 네가 장미에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잃어버렸어. 하지만 너는 잊으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너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너는 네 장미에게 책임이 있어...’

‘나는 내 장미에게 책임이 있어.’ 어린 왕자는 기억해 두려고 되풀이했다.


23. 목마름을 달래주는 최신 개량 알약을 파는 장사꾼과 만났다. 일주일에 한 알만 먹으면 다시 목이 마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저씨는 왜 이런 것을 팔죠?’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지. 일주일에 53분이 절약된단다,’ ‘그럼 53분으로 뭘 하지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지...’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내가 그 53분을 써야 한다면 아주 천천히 샘터로 걸어가겠다.’


어른들을 위한 ‘어린 왕자’ 해설: 뱀과 여우

이 해설은 어른들을 위한 것이다. 어린이들은 보아뱀의 겉모습을 보고 그 속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이런 해설이 필요 없다. 그래서 이 해설은 우둔한 어른이 다른 우둔한 어른들을 생각하며 쓴 것이다.

뒷날 비행사가 되고 어린 왕자를 만나게 될 이 소설의 화자는 6살 소년이었을 때 보아뱀이 맹수를 삼키는 그림을 보고 감명을 받아 그림을 그린다. 코끼리를 삼키고 불룩해진 보아뱀이었다.

이 걸작 속에서 모자밖에 다른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위해 ‘속이 보이는 보아뱀’을 다시 그려야 했다. 이 두 그림이 그의 운명을 결정했다. 그는 자신의 첫 번째 그림을 이해하는 어른들을 만나고 싶어 했지만 만날 수 없었고, 늘 두 번째 그림이 필요했다. 보아뱀의 속을 체험만으로는 투시할 줄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그는 외롭게 살아야 했던 것이다.

어린 왕자는 그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 두 번째 그림이 필요 없었던 유일한 사람이다. 다른 별에서 온 이아이는 단순한 선에서 뱀을 알아보고, 그 속을 뚫고 들어가 코끼리를 발견한다.


세상의 물정을 깊이 알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는 여우는 현자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자기가 공들여 일구고 가꾼 것들과만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이 관계를 통해서만 자기 존재를 확장할 수 있다. 1만 사람을 알고, 1만 가지 물건을 소유하고 있어도 자신의 마음과 노력을 부어 길들인 것이 아니라면 그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구에게, 어느 물건에도 자기가 살아온 삶의 시간을 새겨 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1만 사람은 그 사람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며, 1만 가지 물건은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어린 왕자가 지구에 도착하기 전 만난 사람들은 모두 이에 해당된다. 왕은 세상 만물을 명령하는 자신과 명령받는 타자로 구분한다. 세상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는다. 허영쟁이에게는 자신을 찬양하는 사람만 존재한다. 술꾼도 자기 아닌 모든 것에 무관심하다. 사업가는 소유관계로만 세상을 파악하며 자기가 소유한 것에 한 번도 정성을 쏟아본 적이 없다. 지리학자에게는 모든 만물이 지식의 대상이지만 직접 대면해 본 적은 없다. 그저 알뿐 사랑하지 않는다.

여우가 말하는 ‘길들인다’는 것은 자기 아닌 것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을 그것의 삶 속에, 그것을 자신의 삶 속에 있게 하는 일이다. 존재가 세상에 진정한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은 권력이나 소유나 명성이 아니라 ‘길들임’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어린 왕자는 별에서 만났던 왕, 허영쟁이, 학자들이 어떻게 소외되어 있는지를 알게 되었지만 그 자신도 더 이상 천진난만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요청되는 사막이며 그 사랑은 긴 시간을 거쳐 공들여 만들어져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긴 여행 끝에 순진함을 지불하고 얻은 소득이다. 이미 세상 물정을 알아버린 어린 왕자에게 불확실한 목가적 여행수단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다. 어린 왕자는 극단적으로 과격하게 귀향방법으로 뱀에 물리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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