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무지개를 바라볼 사람이 있는가
마음의 주인’, ‘보편의 단어’, ‘말의 품격’, ‘글의 품격’. ‘한때 소중했던 것들’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다’ 이기주작가의 ‘언어의 온도’를 읽은 후 도서관에서 이 작가 책을 몇 권 빌렸다. ‘언어의 온도’가 마음에 와닿은 이유도 있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 읽는 습관 때문이다.
작가는 읽고 쓰며 살아가고 서점을 산책하며 책을 읽는 소소한 자유를 오롯이 누리고 싶어 TV출연이나 기업강연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책을 건네며: 마음이라는 숲에서 길을 잃은 당신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새벽 어머니는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주야, 넌 크게 자라야 한다. 다만 천천히 자라주렴. 알았지?”
그날 오후, 병원에 있던 아버지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다. 노을이 지고 어둠이 깔릴 때까지 어머니는 떼굴떼굴 뒹굴며 울었고 난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쏟았다.
세월이 흘러 우리의 울음소리가 아득해질 때쯤 어렴풋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어머니의 입술을 비집고 나온 짧은 당부가 어느새 내 마음에 뿌리내려 삶을 떠받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는 것을...
그날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억이라는 장작불로 데워진 감정은 머리까지 치받쳐 올라와 ‘마음’에 관한 숱한 질문을 남긴 뒤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도대체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마음은 왜 시시때때로 흔들리는가? 삶의 많은 문제가 마음을 잃어버리는 데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을 쓰는 일은,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기도 했다. 마음을 향해 떠난 여정에서 나는 딱 떨어지는 정답에 다가가지 않았다.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면서 나만의 답을 주워 담았다. 그렇게 끌어모은 마음에 관한 생각을 책 곳곳에 심어놓았다.
혹시 마음이라는 숲에서 길을 잃은 어둠 속을 헤매고 있다면, 이 책을 나침반 삼아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는 훤한 곳으로 다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책 속의 길을 거니는 동안 스스로 마음을 들여다보고 돌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음 때문에 힘겨워하는 당신에게, 진심을 담아 이 책을 건넨다.
눈물이 실어 나르는 것
흔히 정화로 번역되는 카타르시스 katharsis는 비극적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마음에 쌓인 어두운 감정을 해소하는 걸 의미하는데, 어원은 ‘배출’, ‘배설’등의 단어와 만난다. 그래서인지 눈물을 쏟아내면 마음이 홀가분해질 때가 있다.
젊은 시절 남편을 먼저 보낸 어머니는 가슴에 묻어둔 원통함과 서러움이 목젖까지 차오르는 날이면 남몰래 강가로 달려가곤 했다. 강둑의 나물을 뜯는 척하며 찰싸닥대는 강물소리에 울음소리를 파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린 종종 눈물 덕분에 세월을 견뎌낸다. 눈물은, 눈물의 주인을 삶의 하류로 실어 나른다.
함께 무지개를 바라볼 사람이 있는가
옛날 어느 마을에 살고 있는 선비가 스승에게 편지를 보냈다. “스승님, 비가 그치고 구름이 물러나면 하늘에 무지개가 펼쳐집니다. 어쩌다 마주하는 이런 아름다운 풍경이 섬광처럼 제 마음을 가로지를 때가 있습니다. 붙잡을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그런 고귀한 풍경과 순간을 제가 어떤 사람과 나눠야 하나요?” 며칠 뒤 도착한 답장에는 짝막한 문장이 있었다.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는가. 함께 비를 맞은 사람과 무지개를 바라봐야지. 둘만의 시간 속에서.”
마음의 날씨
사랑의 대상은 대체될 수 없다. 다른 인물로 대체될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대체되지 않는 존재는 특별하다. 특별하기 때문에 궁금하다. 지금 그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상대의 마음에 비가 오는지, 햇볕이 내려 쬐는지, 바람이 부는지, 파도가 몰아치는지 세세히 살핀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날씨’를 보고 듣고 느끼고 염려하는 사랑의 관찰자가 된다.
질문은 부모와 자식을 연결하는 교각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가깝고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알지만 그런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크고 작은 오해로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기 마련이고 누적된 감정의 앙금으로 잦은 다툼으로 이어지면 남보다 못한 사이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게다가 세월의 강물은 시간이 흐를수록 폭이 넓어지고 유속도 빨라져 부모와 자식 사이를 점점 더 갈라놓는 법이다. 관계를 유지하려면 사소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는 방법이야말로 부모와 자식을 연결하는 훌륭한 매개가 될 수 있다.
국외로 떠나는 여행과 사랑의 유사점
어떤 면에서 사랑은 국외로 떠나는 여행과 닮았다. 시작은 황홀하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둘만의 꽃으로 뛰어들 듯 들뜬 기분으로 낯선 나라를 향해 출국장을 나선다. 그렇게 사랑이 달아준 날개를 퍼덕이며 미지의 대륙을 날아다닌다. 하지만 어느새 설렘이 사라지고 오해와 다툼이 잦아지면 ‘계속 함께 여행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에 휩싸이게 되고 끝 내 서로의 간극을 좁히지 못할 경우 중도에 여행을 포기하게 된다. 결국 따로따로 입국해서 각자 공항을 빠져나가는 순간, 함께 겪었던 여행의 추억은 서로의 기억 속에서 다르게 저장되고 그 씁쓸한 너머로 서늘한 생각이 밀려오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