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5. 산마치전통거리의 양조장

달콤하고 향긋한 술향기에 이끌려 한잔했거나

by 물가에 앉는 마음

고다 미야가와 아침시장이 숙소에서 도보로 10분 거리다. 규모는 크지 않고 7시부터 12시까지만 운영하니 아침잠이 없는 부부에게는 안성맞춤 볼거리다. 게다가 시장구경을 좋아한다. 커피 내리고 아침 먹느라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작은아이가 일어났기에 장구경 나가기 전 커피를 내려주고 왔다. 1시간 반이 지나 장구경을 끝내고 들어왔는데도 화장과 샤워가 끝나지 않았다. 이럴 때 대비해 주역책을 갖고 왔지만 책을 펼치기 전 작은아이 꽃단장이 끝났다.

오늘은 리틀교토 전통거리를 구경한다. 아침에 다녀온 고다 미야가와 시장길로 가면 된다. 곤들메기 헤엄치는 미야가와강을 건너 왼쪽으로 가면 아침시장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리틀교토다. 전통거리에 들어서자마자 11시에 문을 여는 두부전문점을 찾았다. 일본 와서 불편한 것 중 하나가 맛있는 음식점을 찾는 것이다. 12시에 먹는다면 혼잡하거나 기다려야 하는데 ‘11시 아점’은 탁월한 선택이다.

‘두부전문점 노구치야’, 외국인관광객은 상대적으로 적고 내국인이 많다. 외국인들에게는 아직 두부음식이 낯선가 보다. 두부맛은 수준급으로 두부요리 종류가 많다. 두부포, 연두부, 튀김두부, 두부탕, 된장구이 등 다양하게 조리되어 나온다. 가격은 15~25000원 수준이다.


리틀 교토의 정식명칭은 산마치전통거리보존지구다. 에도시대(1603~1867, 봉건시대)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데 전통거리 구옥들 보존상태가 좋다. 거리도 상당히 길어 마치 과거로 회귀하여 1800년대 말이나 1900년대 초 일본 거리 풍경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가끔씩 인파를 헤치며 지나다니는 인력거는 거리 풍경과 궁합이 잘 맞는다.

교토 기온거리 전통가옥들도 보존상태가 좋아 보이지만 이곳이 더욱 일본 스러운 것 같다. 단점은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것이다. 오늘 날씨가 좋아서인지 바닥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 머리만 보인다. 흡사 서울 명동거리를 방불케 할 정도로 사람이 많아 사진 찍기 조차 어려울 정도다. 하긴 사람 많기는 교토도 마찬가지였다.

전통거리는 모두 상점이다. 주로 음식점, 카페, 기념품점이지만 그다음 많은 것은 양조장과 된장과 식초를 만들고 파는 장공장이다. 발효라는 측면에서 보면 술과 식초, 장과 절임류는 친척들이다. 일본 발효 식품들은 훌륭한 관광자원이자 볼거리, 먹을거리를 졔공한다. 전통을 지켜온 것에 대한 보상이다.


거리에도 관광객들이 넘치지만 관광객들이 가장 많은 곳은 양조장이다. 높은 천장의 양조장들은 더욱 고풍스럽고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양조장은 온도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천장이 높다. 온도가 일정해야 양질의 발효가 일어나고 발효를 관리하기 좋다.) 사케시음은 유료인 집도 있고 무료인 집도 있다. 禁酒(금주) 하지 않았다면 달콤하고 향긋한 술향기에 이끌려 한잔했거나 사케를 구입했을 것이다.

장을 판매하는 집에서도 시음행사를 한다. 미소시로라는 일본된장국을 종이컵에 퍼준다. 집에서 먹던 미소시로보다는 조금 깊은 맛이다. 일본된장은 발효가 덜되고 들적지근하며 가벼운 맛으로만 알았는데 여러 가지 장을 판매한다. 색이 다른 것으로 보아 숙성도에 따라 포장한 것 같다. 식초도 감칠맛이 돌 것 같은 향이 풍긴다.


발효하면 우리나라를 뺄 수 없다. 고추장과 된장. 막걸리와 홍어, 염장식품과 젓갈류 등 어쩌면 일본보다 다양할 수 있다. 어릴 적에는 집마다 장을 담가 먹었으며, 동네마다 양조장이 있었다. 끼니 때우기 어려운 집은 술 내리고 남은 찌꺼기인 술지게미를 먹었었다.

일본은 1905년 을사조약 후 주세법을 만들어 면허제를 도입했다. 집에서 술을 만들어 먹는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법이었다. 물론 세금을 징수하기 위함이다. 1910년 한일합방 후 주세령을 발표하여 일정규모이하 양조장을 도태시킨다. 이것도 세금징수 편의를 위한 조치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 강점기를 묘사한 소설들을 보면 가정집이나 소규모 주막에서 허가 없이 소위 밀주를 공공연하게 만들어 먹은 것 같다. 김유정 소설에도 밀주를 만들어 마시고 면에서는 단속을 나와 서로 밀고 당기는 장면들이 나온다.


광복 후에도 조세법은 유지되었으나 625 전쟁과 기근에 가까운 식량부족으로 술과 발효산업은 발전하지 못한다. 정부에서 혼식과 분식을 장려하던 어렸을 때 일이다. 1965년 쌀부족으로 쌀막걸리 만드는 것을 금지해 밀가루로 막걸리를 만들었다. 밀가루 막걸리 맛은 깔끔하지 못하고 텁텁했다. 정부는 통일벼 보급으로 쌀자급자족이 달성되자 1977년 막걸리제조에 쌀사용을 허용했다. 주당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아무튼 우리나라 발효주가 발전하지 못한 단초는 일본이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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