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9. 거리두기論者(론자)

혼자 놀기 좋아하는 나는 태생적 거리두기 論者(론자)

by 물가에 앉는 마음

코로나가 전 세계를 휘몰아치자 최고 예방책은 거리 두기였으며, 비대면 방식 소통방법이 예절이자 덕목이었다. '거리두기'는 생활습관과 질서, 관습을 일거에 변화시켰다. 스몰웨딩과 가족장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 유행 초기는 코로나에 대해 무지했기에 대처매뉴얼이 엉성했다. 과민반응을 보이며 감염자와 접촉자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았다. 3차 접촉자였던 나는 보건소 격리가 아닌 회사 격리를 경험했다. 아무 증상이 없었고 혼자 놀기 좋아하는 성격이라 좁은 오피스텔에서 혼자 지내는 상황인데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법적 격리 대상자가 아니며 회사에서 생존키트를 제공하지 않았으므로 붐빌 때를 피해 숙소에서 멀리 있는 맛집을 찾아다녔다.


어찌 보면 혼자 놀기 좋아하는 나는 태생적 거리두기 論者(론자)다. 타인과 일정거리를 유지해야 마음이 편하며, 편해야 관계가 오래 지속된다. 운전 중 깜빡이도 켜지 않고 훅 들어오는 사람으로 인해 가슴을 쓸어내리듯, 마찬가지로 예고 없이 훅 들어오는 인간관계를 낯설어하며 당황해한다.

예전 직속상급자인 김 박사가 부임한 직후 선임차장이던 나와 막걸리 한잔 나눴다. 막걸리 한잔 마시더니 김 박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형, 동생 합시다'

생각하지도 않고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왜요? 직장에서 무슨 형, 동생을...'

서로 깊숙이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또한 직급관계가 우선인 직장에서,

형제관계를 맺자니

삼국지 도원결의도 아니고

매우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김 박사 역시 예상치 못한 거절에 당황하고 머쓱해했다.

추후 알게 된 것이지만

김 박사 고향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최고의 호감 표시가

'이제부터 형, 동생 합시다'란다.

서울 문화는 그렇지 않았으며

태생적 거리두기論者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이었다.


너무 가까워지면

불에 타거나 얼어버리고 만다.

거리를 두지 않으면

걸러지지 않은 언행이 상대방을 아프게 할 수 있으며

보이고 싶지 않은 치부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때로는 원하지 않게 보게 된다.

물론 서서히 가까워져서

같은 온도가 될 때는

뜨겁고 차가움에 대한 충격도 없다.

스스로 치부를 보여줄 때도 마찬가지다.


웬만해선 지인들과 전화도 하지 않는다.

아무리 친해도 전화는 '용건만 간단히'다.

좋아하는 교신방법은 메시지나 편지다.

오래전부터

편지를 보내면 봐주는 친구들이 있다.

편지를 봐주면

'잘 지내는구나' 생각한다.

상대방도 나를 그 정도로 생각해 주면 족하다.

매우 건조하고 소극적이다.

정감 넘치는 안부인사보다야 당연히 못하지만

시끄럽고 입에 발린 인사치레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1136.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