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6.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

제3자가 짧은 시간에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by 물가에 앉는 마음

속담이나 격언은 수백 년 동안 사람들과 같이 살아 숨 쉬며 전해 내려오고 있기에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가 없다. 만약 현실과 어긋났다면 생명력을 잃고 자연스럽게 소멸되었을 것이므로, 아직까지 살아남았다면 속담이나 격언은 진리에 가깝다.

속담이나 격언을 호출하는 것은 ‘살아보니 옛말이 맞더라’하며 후회하거나,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를 꺼내 꼰대의 잔소리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조상님 때부터 내려왔던 이야기들이고 현대를 살아봐도 맞는 말인데 사람들은 아직까지 믿으려 하지 않고 실수를 반복한다.


다녔던 직장은 원자력발전소, 화력발전소 등 모든 발전소를 정비하는 회사다. 로봇이나 대학병원에서 사용하는 첨단 장비보다 성능 좋은 것도 사용하지만 많은 업무는 숙련된 기술자의 손으로 처리한다. 기술자의 수작업에 의존하게 된 첫 번째 원인은 발전소 구조가 복잡한 것이다. 두 번째는 기종의 다양성이다. 중진국 시기에는 차관공여국 제작사가 납품하므로 같은 발전기가 없다. 우리나라는 발전소의 만국박람회장으로 불렸다.

발전소 기종의 다양성은 기술의 국산화, 표준화, 자동화에 치명적이었다. 물론 지난한 시간을 거친 후 세계 모든 발전소를 정비할 수 있게 되어 기술의 해외수출에 크게 이바지한 것은 아이러니한 반대급부다. 아무튼 로봇이나 첨단장비도 기술자의 역량에 따라 결과물의 품질이 좌우되니 결국에는 사람이 중요한 직장이었다.

노동집약적이며 사람이 중요한 직장이니 크고 작은 일은 사람 문제에서 파생된다. 또한 유능한 기술자를 서로 확보하려는 조직 간 경쟁도 치열하다. 기술과 인성까지 좋다면 금상첨화겠으나 그런 기술자가 드물다는 것은 여느 회사와 다를 바 없었다.

‘기술은 최곤데 성격이 좋지 않아’

‘협동심만 갖춘다면 나무랄 구석이 없는데...’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을 때 몇 번의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믿게 되었다. 후보자들의 인사자력카드를 참조하여 자력을 보지만 결국에는 인성에 대한 평판을 중요시했다. 자력이 아무리 좋아도 평판이 좋지 않다면 택하지 않았다. 후천적 능력인 업무능력은 교육훈련을 통해 배양시킬 수 있으나, 선천적 능력인 인성은 변화시키거나 배양할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린 맹수들을 키워 자연에 방사한 후 다시 재회하는 동영상들이 있다. 사나운 맹수가 어린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리며 어릴 적 키워준 사람과 재회한다. 감동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장담할 수 없다. 언제 야성을 드러낼지 모르니 성체가 되면 서로의 안녕을 위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며 맹수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도 않은 듯하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본성은 고칠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업무능력보다는 인성을 중시한 전략이 성공했는지 여부는 주위에서 판단하는 것이지 내 몫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시 구성원들이 같이 협력하여 행복하게 성과를 창출했던 시기였다고 판단했다면 커다란 성공이었다.


왜 사람 본성은 고쳐지지 않을까?

맹자의 성선설은 인간 본성은 원래 선하나 세파에 물들며 악해진다는 것이며,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본성은 원래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이라 교육과 법으로 통제하여 도덕적 삶을 살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선설이나 성악설이나 인간 본성은 타고나는 것이라 한다.

인간 본성이 선악과 무관하게 백지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영국 대처수상 아버지 말씀이 맞을 수 있다. 대처에게 늘 이 말을 해주었다고 한다."생각을 조심해라. 생각은 말이 된다."말을 조심해라. 말은 행동이 된다."행동을 조심해라. 행동은 습관이 된다."습관을 조심해라. 습관은 성격이 된다."성격을 조심해라. 성격은 운명이 된다. “

타고난 본성 또는 자라고 배우고 생각하고 행동한 결과인 가치관, 습관과 성격을 제3자가 짧은 시간에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가치관, 성격, 습관은 그 사람의 존재의 의미이자 정체성이기에 그것을 고치려 들다가는 반감만 살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왜 고쳐 쓰려하는지?

상대방을 사랑해서, 사람 만들어 보려고...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고쳐 쓰려는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을 고쳐 쓰려하면 고쳐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으니 내 마음만 다친다.

조직의 리더에게는 여러 가지 권한이 부여된다. 지시와 인사, 상벌 등의 권한에 조직원들이 순응하는 것을 보고 전지전능하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은 트러블을 만들고 싶지 않을 뿐 정체성을 바꾼 것은 아니다. 물론 고쳐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상대방의 고치고자 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가능하며 내가 고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고친 것이다.

이 세상 많고 많은 사람, 그 사람 아니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마음이 맞지 않으면 적당한 거리를 두면 된다. 굳이 그 사람 인생에 개입해 인성까지 고치려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반감만 살 뿐이며 그 정도로 정성을 쏟았는데 고쳐지지도 않으면 배신당한 것 같고 마음만 다친다.

그러려니 하고 만나다가 마음이 맞지 않아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적당한 거리를 두거나 연을 끊는 것이 현명하다. 아니면 상대방을 고치려 하지 말고 본인을 고쳐보는 것이 어떨까? 상대방을 고치는 것보다 자신을 고치는 것이 더 쉬운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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