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열심히, 행복하게 살도록 노력해야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농담이나 자조적으로 ‘이번 생은 이렇게 살다 죽을래’하는 사람이 있다. ‘과연 다음 생이 있을까?’ ‘다음 생에는 일이 잘 풀리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단언하건대 다음 생은 없다. 불교와 윤회설을 폄하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불교신자라 해도 다음 생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물론 윤회설은 사람이 태어나 늙고 병들었다가 죽기를 반복하는 것이 수레바퀴 돌아가듯 한다고 하여 붙인 것이다. 생명이 있는 것은 죽어도 다시 태어나 생이 반복된다고 하는 불교 사상이다. 바르고 선한 일을 하면 다음에 존귀한 신분으로 태어나고, 나쁜 짓을 하면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여기서 신분이란 인간계급뿐 아니라 소나 돼지 같은 가축으로도 태어난다는 것이다.
윤회의 주기는 모르겠지만 불교에서는 흔히 劫(겁)이라는 시간 개념을 사용한다. 옷깃만 스치는 인연을 500劫의 인연이라 하는데 500劫은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劫이란 셀 수 없는 무한한 시간을 표현한 것으로 속세의 시간으로 따지면 4억 3200만 년이다. 속세의 시간으로 표현했으나 여전히 머리로는 가늠이 되지 않는 단위가 劫이다. 아무튼 劫이란
o 사방 40리의 성에 겨자씨를 가득 넣고 100년에 한 알씩 꺼내어 겨자씨가 없어지는 시간을 1劫
o 또 다른 표현으로는 백 년에 한 번씩 내려오는 선녀의 옷자락이 사방 40리의 바위를 닳아 없어지게 하는 시간을 1劫
o 천년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숫물이 집채만 한 바위를 없애는데 필요한 시간을 1劫이라 하기도 한다.
劫이란 추상적인 시간이라 사람에 따라 정의하는 것이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법정스님께서 정리하신 것을 커닝해 보면
o 같은 나라에 태어나는 인연은 천 劫
o 하루길을 동행하는 인연은 이천 劫
o 하룻밤을 한집에서 자는 것은 삼천 劫
o 같은 민족으로 태어나는 것은 사천 劫
o 한마을에 사는 것은 오천 劫
o 하룻밤의 동침은 육천 劫
o 부부의 연은 칠천 劫
o 부모와 자식은 팔천 劫
o 형제의 연은 구천 劫
o 스승과 제자 사이는 만 劫의 인연이 있다고 한다.
살아생전 좋은 일만 행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해도 무한대에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부처님께서 어여삐 여기셔서 1劫만에 다시 태어났다 하더라도 느긋한 충청도 사람이라면 몰라도 성미 급한 경상도사람들은 제풀에 죽을 수밖에 없다.
1劫이라면 기다리느라 눈이 빠지고 목이 빠져 죽을 만한 시간도 넘는다. 초기 인류의 출현은 불과 250만 년 전이다. 인류가 존재하지 않고 공룡들만 살았던 중생대는 2억 5,100만 년 전에서 6,550만 년 전이다. 부처님께서 보우하사 1劫만에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공룡시대보다 더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다 지쳐 죽을만한 시간보다 더 오랜, 무한의 시간에 가까운 시간이므로 기다리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윤회설을 믿는다 해도 다음 생을 기대하는 것보다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열심히, 행복하게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열심히, 행복하게’는 저절로 손에 쥐어주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자기 암시도 필요하며 매사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특히 뒤를 돌아보는 습관을 버려야 행복하다. 뒤를 돌아보며 ‘이렇게 했다면...’이라는 후회는 정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후회는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으며 불행을 불러올 뿐이다.
‘열심히, 행복하게’는 현재 이 순간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열심히’ 현재를 살아야 하며, 현재가 ‘행복하게’ 느껴져야 한다.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하게’를 위해 현재의 시간과 노력과 정열 등 너무 많은 것을 ‘열심히’ 희생할 필요는 없다. 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라는 말은 로마시대부터 전해 내려 와 요즈음에도 통용되는 문구로 格言(격언)이나 金言(금언)에 해당되는 문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