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읽고 쓰기

1146. 언어의 온도(1) (이기주著, 말글터刊)

"아빠, 옷 젖었어? " "아니……. "거짓말이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책이 발간된 지 10년 지난 묵은 책이다. 첫 번째 직장 퇴직 전 바빴던 시기였었나 보다. 이런 秀作(수작)을 아직까지 읽지 못했다니...


말과 글은

머리에만 남겨지는 게 아닙니다.

가슴에도 새겨집니다.


가슴 깊숙이 꽂힌 언어는

지지 않는 꽃입니다.


우린 그 꽃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말의 무덤, 言塚(언총)

그런 날이 있다. 입을 닫을 수 없고 혀를 감추지 못하는 날, 입술 근육을 좀 풀어줘야 직성이 풀리는 날. 그런 날이면 마음 한구석에서 교만이 독사처럼 꿈틀거린다. 내가 뱉은 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보태게 되고 남의 말꼬리를 잡거나 말허리를 자르는 빈도가 높아진다.

필요이상으로 말이 많아지는 다언증이 도질 때면 경북 예천에 있는 言塚(언총)이라는 ‘말 무덤’을 떠올리곤 한다. 언총은 한마디로 침묵의 상징이다. 마을이 흉흉한 일에 휩싸일 때마다 문중 사람들이 언총에 모여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 "그쪽 걱정돼서 하는 얘기인데요. " 처럼 이웃을 함부로 비난하는 말을 모아 구덩이에 파묻는다. 말 장례를 치르면 신기하게도 다툼과 언쟁이 수그러들었다 한다.


우리는 무엇을 말하느냐에 정신이 팔린 채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풍요하고,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입을 닫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잘 말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내 언어의 총량에 대해 고민한다. 다언이 실언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물어본다. 말 무덤에 묻어야 할 말을 소중한 사람의 가슴에 묻으며 사는 건 아닌지...


그냥 한번 걸어봤다.

"아비다. 잘 지내? 한번 걸어봤다. " 자식과 멀리 떨어져 사는 부모는 "한번 걸어봤다. " 는 인사말로 통화를 시작한다. 일상이 지루해서? 그럴 리 없다. 정상적인 부모가 자식에게 취하는 행동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자식의 일상을 방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염려 때문에 "한번 걸어봤다. " 는 상투적인 멘트를 꺼내는 것은 아닐까? 행여 "회사일로 전화받기 곤란해요. " 라고 말하더라도 "괜찮아 그냥 걸어본 거니까. " 하며 아쉬움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전화를 끊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한번 걸어봤다. " 는 말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고 표현의 온도는 자못 따뜻하다. 말속에는 "안 본 지 오래됐구나. 주말에 집에 들르렴. " "보고 싶구나. 사랑한다. "같은 뜻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한번 걸어봤다. "는 말로 자식에게 전화하고, 연인들은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라며 사랑을 전한다. " 그냥 "이란 말은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걸 의미하지만, 굳이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당신은 5월을 닮았군요

5월이 되면 곡식도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하고, 사람의 감정도 충만해진다. 몇 해 전 5월, 한 여인을 향해 내 안에 숨어 있던 수줍은 목소리를 끄집어냈다. 그 고백은 햇빛이 못 미치는 우물 속 깊은 곳에서 순수한 수맥을 퍼 올리는 일처럼 조심스러웠다.

난 은밀하게, 섬세하게 감정을 전달하고 싶었다. 표현을 고르고 고른 끝에 "사랑해요, " "좋아해요. " 대신 "당신 정말이지 5월을 닮았군요. "하고 마른침을 삼키며 고백했다.


사랑이란 감정은 은유와 무척 닮았다. 사랑이 싹트면 목석같은 사람도 ’ 내 마음은 호수요 ‘식의 은유적 문장을 습관적으로 동원한다. 그래서 몇몇 작가들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사랑은 메타포로 시작된다.”


不在(부재)의 存在(존재)

나이들 수록 유독 맛보고 싶은 음식이 있다. 대학시절 학교 쪽문에서 호호 불어가며 먹던 칼제비의 푸짐함이 그립고 할머니가 만들어준 콩국수의 맛도 잊을 수 없다. 돌이켜보면 그런 음식 곁엔 특정한 사람과 특정한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음식을 맛보며 과거를 떠올린다는 건, 그 음식 자체가 그리운 게 아니라 함께 먹었던 사람과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운 맛은 그리운 기억을 호출한다.


몇 해 전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친구 녀석이 최근 술자리에서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며칠 뒤 식구들이 모여 외식을 했어. 밑반찬으로 나온 멸치볶음을 보자마자 모두 눈물을 쏟았어. 아버지가 생전에 멸치볶음을 정말 좋아하셨거든. " "멸치볶음만 있으면 앉은자리에서 밥 한 공기 뚝딱 비우셨던 생각이 나서. 손을 뻗으면 만져질 것 같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자꾸 떠올라서. "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사람들

비 오는 날, 어린 자녀와 부모가 운산을 맞잡은 모습을 보면 부모라는 존재의 역할과 숙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부모는 아들딸이 비 맞지 않도록 우산을 자식 쪽으로 가져간다. 그러면 아이는 부모를 올려다보며 묻는다.

"아빠, 옷 젖었어? "

"아니……. "

거짓말이다. 부모의 한쪽 어깨는 이미 흠뻑 젖어있다. 자식이 풍파를 겪을수록 빗줄기는 굵어지고 축축한 옷은 납처럼 무거워진다. 그러는 사이 부모는 우산 밖으로 밀려난다. 조금씩 조금씩, 어쩔 수 없이.


한 해의 마지막 날

라디오에선 “해가 저무는 끝자락에선 지난 일 년을 돌아보는 게 어떨까요...”라는 멘트로 끝을 맺을 것이 분명하다. 철저한 자기반성도 피가 되고 살이 되지만 지나친 자기 비하나 부정은 희망의 싹을 잘라 버릴 수 있다. 이 정도면 애썼다고, 잘 버티고 무너지지 않아 다행이라 하며 슬쩍 한해를 음미하고 새해를 맞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으리라.

어느 선배가 술자리에서 농담처럼 남긴 말이 떠오른다. “인생은 말이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어찌 보면 간단해. 산타클로스를 믿다가, 믿지 않다가, 결국에는 본인이 산타 할아버지가 되는 거야 그게 인생이야”


愛之欲其生(애지욕기생)

일산국립암센터 정류장에서 40대 후반쯤 되는 여성과 버스를 같이 탔다. 양손에는 병원에서 오랫동안 지낸 흔적이 보였다. 아마도 환자의 가족인 듯하다. 몇 분 지나자 그녀는 남편과 통화를 했고 그녀가 읊조린 한마디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요. 당신이 곁에 있어 참 다행인 것 같아요. 나도 당신 덕분에 잘 버티고 있나 봐요.” 환자의 보호자가 환자 때문에 버틴다니 무슨 말이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번쩍하며 스치는 글귀가 있었다. 愛之欲其生(애지욕기생) “사랑은 사람을 살아가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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