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지어 꽃말은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
30초 이상 손 씻기, 알코올성 손 소독제 사용, 마스크 착용으로 얼굴에 마스크 자국이 생기고 손가락 지문은 희미해졌다. 마스크로 인해 휴대전화 안면인식이 어려워지고, 희미해진 지문으로는 휴대전화를 열기 어려워져 겨우 패턴인식으로 이를 극복하고 있다. 코로나 19가 가져온 가장 밀접한 변화와 극복이다.
사무실 내에서 모든 직원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근무하고 회의한다. 어색하고 잘 들리지 않았지만, 곧 적응했고 참석자들이 듣기 위해 집중하니 효율은 높아진 듯하다. 식당 의자는 마주 보던 좌석 배치에서 한 방향 좌석 배치로, 시차제 배식을 통해 접촉시간을 줄였다. 식사시간 중 대화도 눈에 띄게 줄어 식당 내부는 정적이 맴돌 정도다. 식사하며 대화도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앞만 보며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려니 어색하고 인간미 없어 보이지만 앞에 앉은 동료 뒤통수가 이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확진자/접촉 발생으로 직장 폐쇄로 인한 업무중단을 막기 위해 재택근무와 사무실 분산으로 비상상황에 대비했다. 외부인 출입은 금지되었고 출장도 가지 않는다. 퇴근 후 회식과 소모임이 중단되었으므로 오랜만에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나 같은 기러기 아빠들은 대략 난감한 상황이다. 떡, 누룽지, 김밥같이 혼자 간편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간편식을 마련했다. 역시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게 마련이다.
마스크 별명이 금스크라는데 맞는 말이다. 마스크 보급제가 시행되어 제때 구매한다 해도 마스크 한 개로 3~4일을 사용해야 한다. 마스크의 기능적 수명은 3~4일 일지 몰라도 음식 냄새로 인해 체감적 수명은 2일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페브리지도 뿌려봤지만, 김치와 마늘 냄새는 좀처럼 제거하기 어렵다. 나 자신에게 나는 냄새도 없애지 못하면서 향내 나는 삶을 살기 원했으니 어불성설에 언감생심인 삶을 살았다. 확실히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휴일, 낚시터에 가면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 미세먼지도 줄어 맨입으로 숨 쉰다는 것이 이렇게 상쾌한 것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좋아하는 낚시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기쁨보다 맑은 공기가 주는 행복이 컸다. 코로나 19가 없었다면 몰랐을 행복이다.
때가 때인 만큼 집에 가는 것은 마음 편치 않지만 연로하신 어머니와 집사람 얼굴을 보지 않는 것 또한 마음 편치 않다. 집에 가려면 회사 셔틀버스로 4시간, 내려서 시내버스 20분을 타던가. SRT 2시간, 지하철 30분, 마을버스 10분을 이용해야 한다. 기차를 이용하면 빠르기야 하지만 불특정 다수와 좁은 공간에서 숨을 쉰다는 것이 불편하다. 그래도 안전한 것은 검증된 사람들만 타는 회사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아무리 밉상이라 해도 생판 모르는 사람보다 안전하고 믿음이 간다.
자가격리했을 때 욕실 청소를 부지런히 했다고 했는데 미국에 사는 누나도 갇혀 있으면서 농사짓고 음식을 만든다고 한다. 네덜란드도 예외 없이 Corona가 번지기 시작했으나 초기에는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아 작은아이는 불안해서 외부로 나가지 못하겠다며 꼼짝없이 좁은 방에 갇혀 있어야 했다. 갇혀 있던 경험이 있었으므로 Corona Blue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청소, 독서, 운동 등 시간표를 짜서 생활해야 한다고 조언해줬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건강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Corona도 문제지만 Corona Blue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뉴스를 보니 Corona Blue로 인한 문제점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낫을 들고 약국에 들어가 마스크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사람도 등장했고 병원을 탈출한 환자도 생겼다. 동료들 간에도 의심병이 생겨 A가 기침하는데 혹시, B의 처가가 대구로 알고 있는데 혹시, C는 기독교 신자인데 혹시…. Corona로 인해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탓이다.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피지컬한 체력증진도 필요하지만 코로나 노이로제를 이겨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메르스 감염환자를 1년간 추적 조사하니 53.8%가 만성피로 증후군, 트라우마, 우울증, 불면증, 불안증 그중 2%는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었으니 바이러스보다 더욱 오랜 기간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MERS Blue, Corona Blue다.
아주 옛날 양창선 씨가 구봉광산에 갇힌 채 보름을 견뎠듯. 심리적 불안과 우울증을 이겨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희망을 가져야 하고 주변 동료들의 도움, 동료에 대한 도움, 역지사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나부터 동료들을 평가하는 예리하고 뾰족한 감정들을 둥글둥글하게 갈아내야 한다. Corona와 Corona Blue는 이길 수 있고 정복된다.
최근 읽은 책에서 나온 문장을 소개한다.
일은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으로 가장 쉽게는 급여노동을 떠올려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는 거죠. 그럼 돈이란 무엇인가? 일본 대지진 때는 돈이 있어도 생수 한 병 사 먹을 수 없었어요. 그때는 서로 돕는 네트워크 즉 사회관계 자본이 돈보다 중요했어요. 머지않아 사회관계 자본이 돈과 상품 경제보다 중요한 시기가 올 거예요. 행복과 풍요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어 500만엔 월급쟁이가 200만 엔 월급쟁이보다 행복할 거라는 단순비교 시대는 끝났습니다. 자본주의사회는 돈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조차 돈으로 표현하는 사회예요. 어쩌면 그 무지막지함에 맞서는 힘이 인문학이지요.
-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김지수 인터뷰, a certain book 刊), 재일 정치학자 강상중과의 인터뷰에서 -
노란 프리지어 두 다발을 벽에 걸었다. 지역 화훼농가를 돕기 위함도 있고 스트레스받는 직원들을 위한 CEO 선물이다. 프리지어 꽃말은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이기에 신부 부케에 많이 쓰이지만, ‘코로나 19로 인한 변화와 극복’을 시작한 당신을 응원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노란 프리지어 포장에 좋아하는 詩人의 詩가 수줍게 달려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 -
● 네덜란드에 취업하러 갔던 작은 아이가 코로나를 피해 귀국했다. 보름간 자가 격리 해야 하니 덩달아 나주에 갇혀 있었다. 집에 다녀온 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밀린 일 처리하러 휴가 내고 집에 다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