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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가에 앉는 마음 Apr 03. 2022

714. 이 風塵(풍진)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192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의 노래, 막걸리 한잔 놓고 들어야 제격이다.

 ‘코로나’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직전인 2019년 10월, 네 식구가 해외 나들이를 했다. 세상은 평화로웠고 톱니바퀴 들어맞듯 질서 있게 굴러갔다. 비행기도 일정에 맞춰 뜨고 내렸고 플라밍고 댄서의 스텝도 박자가 정확했으며 하몽샌드위치 파는 아저씨 수염꼬리도 날렵했다.  

 여행이 끝나자마자 코로나 발생소식을 들었지만 먼 나라 이야기이며 독감정도로 치부했다. 코로나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어도, 인구밀도 적은 청정도시 나주 일상은 커다란 변화가 없었다. 퇴직 후 본격적으로 놀기 위해 나주에 오피스텔을 얻었다. 전라남도는 붕어낚시 천국답게 저수지가 지천이고 자원도 많다. 그동안 가보지 못한 낚시터를 검색해 원 없이 낚시 가고, 책 보고, 잠자고 그야말로 밀린 숙제 한꺼번에 해치우듯 놀았다.

 어머님이 쓰러지셔서 잘 나가던 놀이에 급브레이크가 걸렸고 집으로 복귀했다. 코로나가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지만 우리나라는 확진자 100명 안팎으로 그런대로 선방하고 있었다. 대구 신천지교인들의 집단 감염에 이어 들불처럼 번졌고 2년여를 거치는 동안 우리나라 상황도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해졌다. 입원환자 면회가 금지되고 공공장소에 입장할 때는 방역패스 인증을 거쳐야 한다. 혼자 낚시 다니는 것을 즐기지만 수도권 유료낚시터에는 사람이 많아 낚시 가는 것도 잠시 쉬었다. 지인들과의 만남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코로나는 예전에 없었던 문화와 질서를 창조했고 인간이 오랫동안 그려놓은 문화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만남의 문화, 경조사 문화, 음주 문화, 놀이 문화..., 특히, 집단주의 고취를 위한 사회적 儀式(의식)들은 단 2년이란 짧은 기간에 파괴되었다.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공동체 일원임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한국인 속성은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농경사회와 씨족사회에서는 ‘나’보다 ‘우리’ 가치가 우선이고 개인 논리보다 조직 논리, 다수 논리가 우선했다. 이런 문화로 인해 해병전우회, 호남향우회, 고대 동문회라는 대한민국 3대 불가사의 조직도 만들어 졌다. 물론 불가사의 조직 내에서도 끊임없이 조직이 만들어진다. 호남향우회가 있음에도 강진, 여수, 영광향우회도 있다. 전우회와 동문회에도 기수별 모임과 조직이 만들어지고 전에 근무했던 직장에서는 고리, 영광, 울진, 월성원자력 근무자 모임이 있었다. 조직을 만들고 몸담는 것은 조직 내의 나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작업이다. 

 직장 내 회식문화, 경조사문화도 비슷한 맥락이다. 술을 좋아하든 아니든 회식에 빠지면 뒤통수가 따갑다. 같은 부서 식구들끼리 모여 커다란 맥주 피처에 폭탄주를 말아 한잔씩 들이키며 같은 배를 탔음에도 이를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경조사에 참석하는 것도 진정한 축하와 애도는 刹那(찰나)의 시간이며 조직속의 나를 확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조직폭력배는 아니지만 흩어졌던 조직원들은 애경사를 계기로 모이고 같은 식구임을 확인하며 안부를 묻는다. 물론 젊은 세대들이 선호하는 문화는 아니나 수백 수천 년을 이어온 전통이며 문화이자 놀이였다.


 결혼문화는 따지고 보면 예부터 사회적 儀式이 강한 행사였다. 전쟁을 피하고자 또는 세력결집을 위한 부족 간, 정파 간 정략결혼 하는 역사는 동서양 모두 오래전부터 있었다. 결혼하는 두 젊은이 행복은 뒷전이고 조직의 일원임을 확인하고자 멀리 부산에서 서울까지 아까운 시간과 교통비를 들여 얇은 봉투를 전해주는 비생산적인 행위는 儀式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두 젊은이 앞날을 위해서라면 축의금에 왕복 교통비와 하루치 일당을 더해 주는 것이 살림에 보탬이 됨에도 불구하고 조직에 눈도장 찍는 儀式이 필요해서다. 

 장례식은 어떤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해도 죽은 자는 알 길이 없다. 명복을 기리는 시간은 고인에게 두 번 절하는 짧은 시간에 불과하며 조직 일원임을 확인하는 시간은 2박3일이다. 장례식장이 아닌 경우, 남정네들은 너른 공터에 텐트를 쳐야하고 전기도 끌어와 전등을 밝혀야 한다. 본인들이 편하게 놀기 위한 무대다. 온 동네 식탁을 징벌하며 아낙들은 노동으로 부조한다. 솥단지 걸고 돼지 잡고 하는 폼이 모두가 참여하는 마을잔치이자 문중모임 儀式이다.  


 상급자가 ‘오늘 회식’, 한마디만 하면 전 부서원이 일사분란하게 퇴근하여 폭탄주를 돌리며 모두가 하나임을 강조하고 조직의 일원임을 2차, 3차까지 되새김질해야 했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어찌 보면 일거에 신세대 사고에 맞게 사회가 변한 것이다. 나라에서 법으로 강제하고 처벌한다고 해도 정착시키기 어려운 것이 文化(문화)인데 장하게도 코로나는 단숨에 해냈다.

 수천 년 이어져 내려온 요란했던 경조사儀式은 친인척만 모이는 작은 결혼식과 가족장이 보편화된 문화로 자리 잡았다. 축, 조의금은 온라인송금이 대세며 답례선물은 기프티콘으로 대신한다. 회식문화도 바뀌어 젊은이들은 ‘국제적인 랜선 회식’을 한다. 도쿄에서 헤이그에서 파리에서 서울에서 잔을 맞대며 주종과 안주는 본인 취향대로 고르면 된다. 기업에서는 재택근무가 확산되고 있고 출장과 off line회의는 줄었다.

 코로나가 소비, 놀이, 생산방식 등 모든 분야에 변화를 초래했고 인간들은 변화에 맞춰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일상에서도 변화된 문화트렌드를 감안해야 하며 사업을 할 경우, 문화 흐름을 읽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게 되었다.


 단체보다 개인, 비대면 문화 확산으로 ‘조직 밖의 나’에 대한 고민은 늘어 날 것 같다. 집단 속에서 나를 찾아야 했던 동양권 문화는 특히 도전을 받을 것이다. 조직과 집단이 있어야 비로소 나의 존재감을 찾을 수 있던 문화는 빠르게 서구화되어 나를 중심으로 우리를 만들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산업화사회, 정보화 사회를 거쳐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겪으며 어지러워했던 고령층은 코로나로 인해 새로운 문화적 충격과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많아졌다. 아니 현실화 되었다. 키오스크(KIOSK)를 사용하지 못해 음식점에 가지 못하고 편의점 빵만 사먹었다는 고령층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우려했던 충격과 도전은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코로나가 들 쑤셔 놓은 이 風塵(풍진)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급속한 변화가 단기간에 일어나면 정신적 충격이 상당하다고 한다. 더불어 코로나 블루(Corona Blue)까지 감당해야 한다.

 오미크론이 우세종이 되어 급격히 확산하자 그토록 자랑하던 ‘K-방역’이란 단어는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는 오롯이 내 자신은 내가 지켜야 하는 상황이다. 만났던 지인의 자제가 PCR검사를 받는다 해서 오늘도 코를 찔렀다. ‘음성’이다.

그럼에도 미치지 않는 당신을 응원한다.  



희망가 

- 192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의 노래, 막걸리 한잔 놓고 들어야 제격이다. -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히 생각하니

세상 만사가 춘몽중에

또 다시 꿈 같도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희망이 족할까

담소화락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리

세상 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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