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8. 손에 힘을 빼고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움켜쥐려 하지 말고

by 물가에 앉는 마음

인간의 욕심은 어쩌면 본성이며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모른다. 하지만 절제를 모른다면 언젠가는 화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꿀 바른 칼날을 핥다가 혀가 끊어지는 것도 모르는 것이 인간이다. 혀에서 피가 나면 정신 차리고 멈춰야 하는데 ‘한 번만 더’하다가 혀가 끊어진다. 욕심은 연배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기에 사건 뒤를 들춰보면 물욕, 식욕, 성욕, 명예욕이 감춰져 있다.

‘무소유’ 법정스님이 존경스러운 것은 말과 글에 그치지 않고 청빈의 도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소유욕에는 한정도 휴일도 없기에 끊임없이 가지려 하고 종국에는 주객이 전도되어 욕망의 노예가 된다고 했다. 사람은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관과 수의도 준비하지 말라했던 법정은 투박한 솜씨로 만든 작은 나무의자를 남겼다.

청빈한 삶을 이야기할 때 김수환추기경님을 빼놓으면 안 된다. 장애아동이 그려준 초상화와 부러진 안경테가 유품이며 추기경의 지위와는 맞지 않았던 낡은 승용차를 타고 다니셨다. 추기경 서임 후 받은 고급 승용차 선물을 며칠 사용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귀족이 된 모습을 통렬히 반성하고 되돌려 보냈다. 청빈한 삶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분들이기에 대중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보살이나 성자반열에 오를 수준이 아닌 凡人(범인)이 소유하지 않음으로 인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凡人들은 욕심 사납게 가져도 보고, 그로 인해 불편함도 겪어봐야 비로소 깨닫는다. 주체할 수 없이 많이 갖는 것도 불편할 때가 있다는 것을, 모든 것은 그릇 크기보다 조금 적게 가져야 한다. 과하면 흘러넘쳐 주위를 지저분하게 만들고 그것을 치우느라 고생한다.

젊은 시절, 휩쓸리고 비교하며 사느라 욕심이 많았다. 낚시 장비도 필요이상 사모으고, 자동차도 필요이상 큰 것을 구입했다. 그리고서는 소유물의 노예가 되었다. 입사 후 근무지를 10번 이상 옮겼는데 이삿짐의 반 이상이 낚시짐이었다. 트렁크는 사시사철 낚시짐이 주인이었다. 이사 갈 때면 이불, 옷, 작은 냄비와 프라이팬 등 독신자의 짐을 승용차 뒷자리와 조수석에 욱여넣어야 했다. 트렁크 가득한 낚시장비는 버리지 못하고 다른 짐의 부피를 줄여야 했다.

요즈음은 양어장낚시만 다니는 이유도 있지만 나이 들어보니 모두 부질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낚싯대를 화구통에 2~3대만 넣고 다닌 지 오래되었다. 10대 들고 다닐 때와 비교해 아무런 불편이 없다. 먹지도 않는 붕어를 잡는데 뭔 욕심이 그리 많았었는지 모르겠다. 낚시장비 상당 부분을 퇴직하고서야 버렸다. 2~3년에 한 번 정도 사용하는 장비를 미련하게도 트렁크에 싣고 다녔다.


조물주가 인간을 아주 정교하게 설계했기에 힘 떨어지고 노화현상이 생기면서 욕심과 멀어지게 된다. 사실 지위에 대한 욕심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진해서 강등을 택하거나 보직을 내려놓는 것은 자의든 타의든 공기업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퇴직즈음 규정에 의거해 보직을 떼고 난 후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정년연장이 되며 공기업에서는 임금피크제가 도입되었으며, 58세가 되면 보직을 내려놓게 되며 임금은 줄어든다. 어떤 이는 보직을 내려놓는 것에 상실감을 느낀다고 하지만 나는 무거운 어깨가 가벼워지니 좋아라 한다. 조직을 대표하는 자리, 조직의 목표와 실적 그리고 안전과 인사에 대한 책임을 내려놓게 되니 콧노래가 나올 지경이었다.


직장 다닐 때는 일에 대한 욕심이 많았으나, 퇴직 후에는 ‘놀이와 취미’에 대한 욕심이 많아졌다. 일이나 놀이에서 ‘재미와 행복’이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직장 다닐 때는 이왕 하는 일이니 ‘일하는 재미와 성취의 행복’을 찾으려 노력했으나, 요즈음에는 노력하며 찾지 않아도 된다. 대부분의 ‘놀이와 취미’에는 ‘재미와 행복’이 있다.

그렇지만 너무 높은 수준의 기대는 금물이며 또 다른 욕심이다. 나이 들면 도파민 분비량도 젊은 시절의 50% 정도로 줄어든다. 같은 양의 자극에도 청년들은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어 기쁨과 활력이 넘치고, 노인들은 도파민 분비량이 적어 즐거움과 행복을 덜 느끼게 된다. 조물주가 만든 인간의 설계도가 그러하다.

나이 들수록 높은 수준이 아닌 낮은 수준의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야 한다. 평범한 ‘놀이와 취미’에는 자잘한 즐거움과 행복이 숨어있으며 찾아내는 사람이 주인이다. 분비되지 않는 도파민이 ‘뿜뿜’ 뿜어져 나오게 하려면 마약, 도박, 이성, 술, 담배에 손을 대야 한다. 도파민의 양도 ‘인생 총량의 법칙’에 해당되어 천천히 나눠 분비시키는 것이 좋다.


법정스님과 김수환추기경님 이전, 기원전 그리스 철학자인 에피쿠로스는 ‘적게 가지는 것이 가난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이 필요로 하는 것이 가난이다’라고 했다. 나이 들면 들수록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움켜쥐려 하지 말고 손에 힘을 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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