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노 세갈’의 의도된 연출이 아니었을까
용인 호암미술관에는 여러 번 갔으나 서울에 있어 접근성도 좋은 리움미술관은 처음 왔다. 이태원 하얏트호텔인근에 있어 교통편도 좋다. 리움미술관은 상설전시관과 특별전시관으로 구분되어 있다.
상설전시관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진귀한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무리 돈만 아는 재벌이라 욕해도 이병철, 이건희 컬렉션을 두고는 욕할 수 없다. 두 분이 아니었다면 국보급 문화재는 해외에 반출되었거나 양지가 아닌 음지에서 특정인만 감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특별전시관에는 티노 세갈(1976년 런던 출생) 전이 열리고 있다. 작가와 전시소개 내용이 난해하다. 예술적 소양이 부족해서인지 유료관람인 ‘티노 세갈’ 전은 흥미를 끌지 못했다. 무료관람인 상설전시만 관람하겠다고 미리 예약했다.
- 티노 세갈은 ‘물질적 대상이 없는 예술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를 질문하며, 어떠한 기록이나 물질적 오브제도 생산하지 않는 비물질적 작업을 전개합니다. 신체와 언어, 그리고 관계를 매개로 형성되는 그의 작품은 ‘구성된 상황(constructed situations)’이라 불리며, 노래하고 춤을 추거나 말을 건네는 ‘해석자(interpreters)’와 관객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구현됩니다. 리움 홈페이지 전시 소개에서 -
대중교통으로 한남동에 하차해 환승하면 미술관 앞에 내리지만 관람예약시간도 충분히 남아 이십여분을 걷기로 했다. 날이 맑고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라 그런지 한강과 남산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시원하고 공기내음도 좋다.
리움미술관 입구부터 웰컴 세리머니가 요란스럽다. 안내원복장을 한 스텝들이 약속된 동작을 하며 외친다. “This is so contemporary! contemporary!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 쑥스럽지만 손을 흔들어줬다.
관람을 마치고 커피숍 "camel"에서 “카멜 라테”를 마셨다. "camel"은 라테가 맛있다고 입소문이 난 커피숍이다. 아쉽게도 리움 "camel"은 take out 해서 로비에서 커피를 마셔야 한다. 아무리 맛있고 고급스러운 커피라고 해도 종이컵에 마시는 커피 맛은 좋을 리 없다. 비교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지만 내 입에는 %아라비카의 라테보다 못한 맛이다. 종이컵으로 인해 비교불가다. 기대를 잔뜩 했으나 실망스러웠다. 아내도 성수동과 현대백화점에서 마실 때보다 못한 맛이라고 한다.
로비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로비에서 공연이 펼쳐졌다. 4명이 떨어져 화음을 맞춰 소리를 낸다. 頭聲(두성)을 내는 사람도 있고 창을 하듯 높낮이 조절하며 음을 뽑아내는데 신기하게도 조화롭다.
4명은 모여 행위예술무대를 펼친다. 남자세명과 여자 한 명이 손끝을 연결하여 몸을 천천히 움직인다. 서로의 손끝은 복잡하게 엉키듯 연결되었고 각자는 독립적이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복합적이다. 바닥에 누웠다가 일어나며 공연이 끝났다.
공연이 끝나자 공연했던 한 명이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잘 생겼고 태도나 말투도 호감형이다. 나이는 이십대로 보였으나 추후 물어보니 30대라고 한다. 잠깐 “연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프리랜서 무용수로 이 무대에 서게 된 것도 우연한 연결이 있었다. 연락을 받고 셋이 모였는데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 한 명은 공연승낙을 했고 또 다른 한 명도 거의 승낙을 한 것처럼 이야기하기에 공연하신다는 말씀이네요 했더니 100%는 아니라고 한다. 딱 부러지는 약속을 좋아하는데 ‘거의 되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대답에 그날 신경이 곤두섰었다.” “과거 친한 친구와의 절연은 둘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친구가 확답을 하지 않아 자기 책임으로 하고 신뢰가 깨졌다 생각하고 친구와 인연을 끊었다. 맺고 끊기를 좋아하는 내 탓인 것 같다. 공연제안을 받았던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아내가 젊은이를 위해 커피를 한잔 뽑아왔다.
젊은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 성격과 비슷한 면이 많았기에 젊었을 적 내 이야기를 해줬다. “심하게 사추기를 앓고 난 40대 중반 이후의 일이다. 과거, 현재, 미래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과거를 복기하며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미래에 대해서도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해 가면서 까지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내 삶의 초점은 오늘에 맞춰져 있다. 그렇다고 완전히 과거와 단절된 것은 아니고 연결된 것이기에 세뇌교육을 하고 있다. 우리 뇌는 단순하고 무식해서 세뇌를 시키면 거짓도 진실로 받아들인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입구부터 스텝들이 약속된 동작으로 보여줬던 요란스러운 웰컴 세리머니와 젊은 무용수가 다가와 “연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은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티노 세갈’의 의도된 연출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티노 세갈은 어떠한 기록이나 물질적 오브제도 생산하지 않는 비물질적 작업을 전개한다고 하니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기록들은 티노 세갈의 의도와는 상반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대화를 나눴던 무용수에게 양해를 구했다.
“이 이야기를 써도 되나요?”
“네, 그럼요.”